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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권력자들의 이면에서는 어찌 보면 ‘너무도 인간적인’ 면모들이 발견된다.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오른쪽부터). | ||
〈한국의 이너서클〉은 서두에서 고위관료, 정치인, 언론인, 재벌 관계자들과 현장 기자의 증언을 통해 ‘비공개적이었던 만큼 상대적으로 진실에 접근해있는’기록을 담았다고 밝힌다. 40년 가까이 현장을 누빈 한 대기자가 수첩 속에 감추어 놓았던 비화들을 들춰내 보도록 한다.
역대 대통령들에 관한 일화
지난 96년 경상수지 적자가 사상최고인 2백36억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YS는 OECD 가입을 목표로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을 위해 원화환율을 인위적으로 고평가했다고 이 책은 소개한다. 정주영 회장이 갈파한 대로 YS는 ‘광치는 일’에만 관심있었다는 것이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C모 건설장관에게 “강원도 모처에 기념할 만한 돌이 있으니 잘 관리해주시오”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자신이 외무부 출신이라 그런지 상공부 각료들에게 “거기 외무부 출신들이 많은데 잘 좀 봐주시오”라 밝히기도 했단다.
전두환 전 대통령측은 12·12 당시를 회상하며 “최규하 대통령이 ‘이제 전 장군이 나라를 맡으시오’라 해서 고민하다 집권 시나리오가 시작됐다”고 밝혔다고 한다. 대통령으로서 내뱉는 말에 대한 책임을 묻는 대목이다.
뭐니뭐니 해도 역대 대통령들 중 가장 많이 일화를 만들어낸 것은 역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만큼 아랫사람들에게도 무척 스트레스를 주었던 모양이다.
한국외환은행법이 제정될 당시 야당이 반대하자 황종률 당시 재무장관은 야당 중진 고흥문 의원 집을 찾아가 사정하다가 그만 실신하는 일이 생겼다고 한다. 이후 외환은행법은 통과됐고 이후 “대통령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황 장관이 쓰러졌다”는 말이 나돌았다.
‘체력이 인사의 잣대’로 여겨진 적도 있었다. K장관은 박 대통령이 급히 불러 정책자료를 챙겨서 달려갔는데 박 대통령은 “쉬어가면서 일하라”며 보는 앞에서 턱걸이를 하라고 했단다. 격무를 이겨낼 장관이라면 체력도 강해야한다는 말과 함께였다.
K장관은 몸이 말을 듣지 않았지만 개각 명단에 오를지 모른다는 생각에 억지로 한 개를 했다고 한다. 이후 C수석비서관에게도 물구나무를 시켰다는 이야기가 돌자 각료들 사이에서 체력 단련 붐이 일어났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을 둘러싼 여성편력 소문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곤 한다. 인기절정의 민요가수였던 K씨가 박 대통령의 밤파트너가 됐다는 소문이 나돈 후 K씨가 음주운전으로 교통순경에게 단속 당한 적이 있었다. 인기 연예인을 단속한 순경과 동료들 사이에 말들이 많아지자 보다못한 K씨는 순경에게 “국모를 이렇게 대할 수가 있어”라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조선시대 임금이 내린 ‘성은’정도로 생각한 것일까.
인기여배우 J양과 스캔들이 양산되던 밤, 박 대통령이 H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J양과 함께 서있는 장면이 한 여성에게 목격됐다고 이 책은 전한다. 당황한 경호원이 목격자에게 “뒤돌아보지 마시오”라 소리질렀다고 한다. 다음날 목격자는 경호원으로부터 “어제 밤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으며 남편 직장이 어디인지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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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책은 비록 과거의 일이지만‘금기의 영역’을 파헤쳤다. | ||
신군부의 쿠데타로 분위기가 삼엄하던 지난 80년 3월 삼성 현대 간에 언론을 매개로 한 전쟁이 붙었다. 삼성 계열사였던 〈중앙일보〉가 현대건설의 부실공사를 문제 삼자, 이에 발끈한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각 신문사에 이병철 삼성 회장과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의 과거 비리를 폭로하는 광고를 실으려 하면서 촉발된 것. 그러나 실상은 신군부와 삼성의 유착으로 소외에 대한 위기감을 느낀 정 회장이 이 싸움의 불을 댕긴 것이라고 이 책은 전한다.
몇해전 작고한 S그룹의 S회장은 여자를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계열사 사장에게 소위 ‘채홍사’역할을 맡겨 각지를 돌며 괜찮은 여자 발굴하는 작업까지 시킨 것이다. 결국 S회장은 후처를 들이게 되는데 본부인이 살아있을 때 후처를 집안으로 들여 “나를 보살펴 줄 사람”이라 해 가족들의 입을 막았다고 한다. 이에 부인은 울화병이 도졌다가 유명을 달리 하기도 했다고.
‘권력과의 불화’ 에피소드
박정희 대통령 시절 갈천문이라는 청와대 출입기자는 키는 작았지만 배포가 좋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육영수 여사 작고 후 회식자리에서 박 대통령 옆자리에 앉은 갈 기자는 당시 경호실장 부임 초기였던 차지철 실장에게 “거기 총잡이도 이리 와 앉지”라 말했다. 그러나 갈 기자의 ‘호연지기’는 차 실장의 분노를 샀고 결국 청와대 출입정지를 당하게 됐다고 한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환경처 차관이었던 L씨는 전 대통령이 사사건건 참견을 하자 술자리에서 “자기가 뭘 안다고 참견이야”라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이 그만 전 대통령 귀에 들어갔고 안기부가 동원돼 L씨의 집안을 다 뒤졌지만 지폐 몇장만 나오더란다. 보고를 받은 전 대통령은 “공무원 치고 괜찮은 친구로군”이라며 없던 일로 처리했다고 한다.
언론사주 관련 비화
전두환 대통령 시절 홍석현 현 〈중앙일보〉 회장은 당시 청와대 근무를 하다가 전 대통령에 의해 KDI(한국개발연구원)으로 가게 됐다. 경제관료로 성장하고 싶었던 홍 회장을 대신해 전 대통령과 친분이 두텁던 아버지 홍진기씨가 나섰지만 결국 ‘재벌쪽 비서관을 데리고 있으면 남보기 좋지 않다’는 이유로 홍 회장은 청와대를 떠나야했다. 하지만 이후 이병철 삼성회장이 작고하고 이건희 회장이 부임하면서 “그래도 처남밖에 없다”며 키워준 것이 오늘날 〈중앙일보〉 회장에 오른 계기가 됐다.
지난 94년 김상만 당시 〈동아일보〉 명예회장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장남인 김병관 전 명예회장이 ‘옥좌’를 물려받게 됐다. 사실 김상만 회장은 애주가에 화통하기만 한 김병관 회장보다 차남인 병건씨를 의중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후계구도에 대한 언급 없이 김상만 회장이 급사하자 옥좌는 장자인 김병관 회장에게 승계됐다. 그리고 YS가 언론사 세무조사를 단행하자 김병관 회장은 그동안 경영에 깊숙이 관여한 병건씨와 그 측근들에게 모든 책임을 물어 쫓아내고 친정체제를 구축하게 됐다. 하지만 다음 정권의 언론사 세무조사로 인해 자신이 옷을 벗게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