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가 만든 스타 이야기 부산에서 첫 ‘맞짱’
박중훈, 하정우
<톱스타>는 박중훈이 연예계 스타로 살아오며 겪은 경험과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연예계의 속살을 누구보다 가까이 지켜본 그는 그 경험들을 영화 안에 녹여 넣었다. 개봉에 앞서 박중훈은 “연예계에 있으면서 수많은 흥과 망을 지켜봐왔다”며 “(연예인이) 잘됐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태도나 마음가짐, 생각이 달라지는 걸 봐왔다”고 밝혔다. 늘 주위에 봐 왔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누구보다 내가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톱스타를 만들고 싶어졌다”고도 했다.
박중훈이 연출한 <톱스타> 포스터.
이야기도 눈길을 끌지만 박중훈은 배우 출신 감독답게 촬영 현장에서 누구보다 출연 배우들을 세심하게 배려해준 것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이른바 ‘할리우드 촬영 시스템’을 도입해 하루에 촬영할 시간을 정확히 정해두고,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이 같은 배려에는 이유가 있다. 박중훈은 2000년대 초반 미국 영화 <찰리의 진실> 등에 출연하며 할리우드 현장을 일찍부터 경험했다. 당시의 촬영 시스템을 잊지 않고 있던 그는 자신의 첫 연출 영화의 현장에서도 이를 도입해 배우와 스태프들이 최선의 컨디션을 낼 수 있도록 도운 셈이다.
하정우의 감독 데뷔도 박중훈 못지않게 화려하다. <톱스타>보다 한 주 앞서 10월 17일 개봉하는 하정우의 연출 데뷔작 <롤러코스터>는 한류 스타가 일본행 비행기에 오른 뒤 기상악화를 만나 겪는 상황을 그렸다. 하정우는 박중훈과 마찬가지로 연예계 스타를 극중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욕쟁이 한류스타’라는 독특한 인물을 창조해 비행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황당한 사건을 유쾌하게 담았다. 밀폐된 공간에서 스타를 발견하고 놀라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보이는 엉뚱한 모습들은 하정우가 비슷한 상황에서 겪은 실제 경험에 상상을 덧붙여 완성했다.
하정우가 연출한 <롤러코스터> 포스터.
박중훈과 하정우는 감독으로 데뷔하며 평소 ‘연예계 마당발’로 인정받았던 주위의 인맥도 십분 활용했다. <톱스타>와 <롤러코스터>가 관객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는 이유다.
<톱스타>에는 박중훈의 ‘단짝’인 배우 안성기와 엄정화가 카메오로 참여했다. 또한 배우 장동건과 현빈, 신현준, 김수로, 주진모 등이 <톱스타> 촬영장을 찾아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진짜 톱스타들’의 단체 카메오 출연 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롤러코스터> 주연을 맡은 배우 정경호는 하정우의 절친한 대학(중앙대) 후배다. 10년 넘게 이어온 신뢰에 힘입어 정경호는 ‘욕쟁이 한류스타’라는 독특한 인물에 과감하게 도전해 작정하고 망가졌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지만 <톱스타>와 <롤러코스터>는 박중훈과 하정우가 갖고 있는 서로 다른 매력만큼이나 장르도, 이야기도 다르다. 박중훈은 평소 관심을 기울여 왔던 ‘울림이 있는 드라마 장르’를 택했다. 하정우는 영화에 참여할 때 늘 고민을 한다는 ‘재미있는 영화’를 목표로 <롤러코스터>를 완성했다. 물론 두 배우의 감독 도전은 이 한편으로 끝나지 않는다.
차기 연출 영화를 먼저 결정한 사람은 하정우다. 내년 초 촬영을 시작하는 <허삼관 매혈기>를 통해 하정우는 상업영화의 감독으로 데뷔한다. 영화는 중국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던 <허삼관 매혈기>가 중국이 아닌 한국에서 먼저 영화화될 수 있던 건 하정우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원작 소설을 쓴 위화 작가는 “하정우가 나오는 모든 영화를 봤고 신뢰가 생겼다”는 말로, 영화 제작을 허락했다. 하정우는 연출은 물론 영화 주연까지 맡았다. 박중훈의 ‘감독 활동’도 장기전에 돌입했다. 다만 <톱스타> 이후 관객의 반응을 살피면서 신중하게 준비하겠다는 입장이다.
박중훈과 하정우는 10월 3일 개막하는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도 나란히 참석한다. 첫 연출 영화들이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받으면서 올해는 배우가 아닌 감독 자격으로 초청받았다. ‘신인감독’으로서는 쉽게 얻기 어려운 기회이지만 스타 배우의 후광에 힘입어 특별한 선택을 받은 셈이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