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문서인데 여당무죄 야당유죄
지난 2008년 7월 19일 새벽 국가기록원 직원들이 봉하마을 이지원 사본을 대통령 기록관 보관실로 옮기는 모습. 연합뉴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검사 김광수)는 지난 2일 국가기록원 압수수색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지난 8월 국가기록원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했고 검찰 수사 역사상 최장 기간인 50여 일 동안 국가기록원 내 기록물에 대한 이미징·열람 작업을 벌였다.
검찰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은 반드시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돼야 할 자료이지만 이관대상 기록으로 분류되지 않은 상태에서 삭제됐다는 결과를 내놨다. 또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봉하마을로 가져간 이지원 복사본(봉하이지원)에서 대화록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지원에서 삭제됐다가 수사과정에서 복구한 대화록과 봉하 이지원, 국정원 보관 기록이 모두 동일한 내용이라고 발표했다. 검찰 관계자는 “참여정부가 이관한 문서 755만 건을 모두 확인했지만 정식으로 이관된 기록물 중에는 대화록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참여정부 청와대 시스템인 이지원에서 대화록이 삭제됐고 국가기록원에 있어야 할 기록물이 봉하마을로 가져간 복사본에서 발견된 배경에 노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기록물 관리·이관에 관여한 민주당 측 인사 30여 명을 7일부터 소환조사한다.
새누리당은 파상공세를 펼치고 있다. 유일호 새누리당 대변인(58)은 현안 브리핑에서 “약 두 달여간에 걸친 검찰 수사가 결국 사초(史草) 실종이라는 국기문란 사건으로 결론 내려진 것에 허탈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다”며 “이제는 대화록이 왜 정상적으로 이관되지 않았는지 그 진실 규명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검찰의 발표에 대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김관영 민주당 수석대변인(44)은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당시 정상회담 회의록 작성 및 보관에 참여한 참여정부 주요 관계자들이 검찰의 수사에 성실하게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갑작스럽게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한 것은 최근의 잇단 국정난맥상의 국면전환용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김 수석대변인은 또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 대선캠프 인사들의 대화록 사전유출설과 국가정보원의 대화록 공개 사전기획설을 거론하며 “이 모든 일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신속하고도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검찰 수사결과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국가기록원 직원이 1대1로 붙어서 감독했고 CCTV까지 가동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이날 발표 내용은 관련자의 진술을 청취한 것이 아니라 자료 분석 결과를 내놓은 것이어서 과학적인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은 민주당 관계자들을 소환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국가기록원에 이관되지 않은 경위와 청와대 이지원 시스템에서 삭제한 것이 노 전 대통령의 지시였는지 등을 확인할 방침이다.
이와는 별도로 남재준 국정원장(69)의 지시로 새누리당 소속 국회 정보위 의원들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열람한 사건에 대한 수사도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검사 최성남)에서 진행 중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62)이 지난 대선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당시 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는 취지로 언급한 사건 역시 의혹의 대상이다.
검찰 수사에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대통령기록관에 없었던 사실이 밝혀졌는데 그렇다면 김 의원이 지난 대선 당시 대화록 내용을 입수한 경위가 문제되기 때문이다. 봉하 이지원은 노 전 대통령이 반납해 국가기록원에서 보관 중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김 의원이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루트는 국정원밖에 없다. 국정원이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도움을 줄 목적으로 김 의원에게 대화록 내용을 건넸다면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이 불거질 수 있다.
대화록이 국가기록원에 이관됐다고 주장하는 문재인 의원(왼쪽)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지 않았다’는 검찰 수사와 관련해 새누리당 측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일요신문 DB
이에 대해 검찰은 2008년 수사의 중점은 대화록이 아니라 기록 전체가 유출됐는지 여부와 경위 등에 맞춰져 있어 지금처럼 세밀한 분석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데이터 용량 등을 비교하면 이관 기록물 중 누락된 것이 있는지의 차이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두 수사결과가 모순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과 관련해 문건의 성격을 대통령기록물로 볼 것인지, 공공기록물로 볼 것인지를 놓고도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검사 김광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봉하마을로 가져갔던 봉하 이지원에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삭제된 것을 발견해 복구했고, 이와 별도로 또 다른 버전의 대화록을 발견했다. 따라서 국정원에서 보관하고 있는 대화록, 봉하 이지원에 남아있던 대화록, 검찰이 봉하 이지원에서 복구한 대화록까지 총 3개의 대화록이 존재하는 셈이다. 이 문건들의 성격을 ‘대통령기록물’ 또는 ‘공공기록물’로 분류하는 것에 따라 그 정치적 파장도 다를 전망이다.
검찰은 봉하 이지원에서 발견된 회의록은 대통령기록물로, 국정원에서 보관 중인 회의록은 공공기록물로 보고 있다. 봉하 이지원에서 발견된 두 건의 회의록은 청와대가 생산해 이지원에 들어갔으니 대통령기록물이라는 것이다. 반면 국정원 보관본은 국정원의 녹취본을 토대로 만들고, 국정원장의 결재를 받아 생산, 접수, 관리했기 때문에 공공기록물이라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회의록이 대통령기록물이냐, 공공기록물이냐에 따라 법적 판단과 처벌도 달라진다. 공공기록물은 공공기관에서 직무 수행에 필요할 때 제한적으로 열람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기록물은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해 보관해야 한다. 특히 ‘대통령지정기록물’인 경우 15년까지 비공개로 보존된다.
검찰은 국정원이 보관하고 있던 회의록 발췌본을 공공기록물로 규정했다. 지난 2월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발언과 관련한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하면서다. 국정원은 이를 토대로 지난 6월 회의록을 일반 문서로 다시 분류한 뒤 전문을 공개했다.
국정원이 보관하던 대화록이 공공기록물이라면, 민주당이 지난 6월 대화록 무단 열람·공개 혐의로 고발한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과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 남재준 국정원장 등 7명은 무혐의 처분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또 지난해 대선 전에 대화록을 무단 유출한 혐의로 고발당한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권영세 주중대사 등에 대한 처벌 수위도 애매해질 가능성이 크다.
반면 ‘봉하 이지원’에서 발견된 회의록을 대통령기록물로 규정함에 따라 참여정부 인사들은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많다. 한 검찰 관계자는 “대화록은 반드시 이관돼야 할 것이고 안 됐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삭제됐다면 더 큰 문제가 있다”며 “(참여정부가 이관대상으로 분류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일부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참여정부 책임자에 대해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검찰이 정상회담 회의록 논란에 얽힌 여권 고위 관계자들에게는 사실상 면죄부를, 야권 관계자들은 엄중처벌 의지를 밝힘으로써 정치적 중립을 잃어버렸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야권에서는 이번 검찰의 판단을 채동욱 체제 이후 박근혜 정부의 검찰 통제력에 대한 시금석으로까지 생각하고 있다. 향후 검찰의 법 적용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또한 검찰이 사실상 동일한 생산 과정을 거친 문서를 상황에 따라 다르게 판단하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도 일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같은 문건을 놓고 검찰이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며 “검찰이 명확한 근거를 밝히지 않는다면 논란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희 언론인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