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의 저울은 이미 한쪽으로 기울었다
법무부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헌법재판소에 요청할지를 놓고 막바지 고심을 하고 있다. 사진은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자신의 체포동의안 표결 후 이정희 대표와 손을 꼭 잡고 취재진들 앞에 서 있는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법무부는 이석기 의원 등 내란음모 혐의 재판 일정과는 상관없이 자체적으로 결론을 낼 방침이다. 내년 6월께 지방선거가 실시된다는 점과 정당해산심판 청구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최장 180일 정도 걸리는 점을 고려해 늦어도 11월 초까지는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하겠다는 것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지방선거 100일 전에 헌법재판소가 결정을 내려줘야 하기 때문에 정당해산심판 청구는 신속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법무부는 이 의원 등이 RO를 조직해 국가주요시설 파괴 등을 모의한 것이 내란음모·선동에 해당하는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주의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헌법 제8조 4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해 해산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무부가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법무부가 청구하게 되면 헌법재판소는 180일 이내에 해산 여부를 최종 결정하게 된다. 헌법재판관 7인 이상이 참여해 6인 이상이 찬성하면 정당해산이 결정된다. 정당 등록 말소와 국고 귀속 등 후속절차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진행한다.
또한 정당해산심판 청구가 접수되면 통합진보당의 활동은 헌법재판소 결정이 있을 때까지 중지될 가능성이 높다. 헌법재판소법 제57조는 “헌재는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받은 때에 청구의 신청 또는 직권으로 종국 결정의 선고시까지 피청구인의 활동을 중지하는 가처분 결정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했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 결정이 내려지기 위해서는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최근까지의 활동과 목적이 민주주의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는 점이 가려져야 한다. 법무부 역시 통합진보당 시절 활동과 목적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 시절까지 광범위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상태다.
통합진보당은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에 당원 상당수가 연루됐고 북한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과 이 당의 통일 강령이 일치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정당의 활동과 목적이 민주주의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는 결론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법무부는 당원들의 내란음모 혐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례,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의 부정선거 시비로 인한 비민주성 등을 근거로 내세울 전망이다. 법무부는 내란음모 수사과정에서 확보한 RO 회합 녹취록이 정당의 비민주성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에 대해 최종적으로 해산 결정이 내려질 경우 통합진보당은 해산결정을 선고받은 직후부터 불법조직이 된다. 통합진보당의 강령, 기본정책 등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정당은 창당할 수 없게 된다. 또 국고보조금 등은 모두 국고로 귀속된다.
다만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들이 의원직을 상실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일 전망이다. 현행 법률은 정당해산 시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 처리 문제에 대한 규정이 없다. 우선 정당해산 결정이 내려지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권해석을 통해 의원직이 상실된다는 의견을 내놓을 수 있다. 의원직 상실을 피하기 위해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들이 대거 탈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헌법재판소는 직권으로 통합진보당 활동을 정지시킬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법률학자들은 정당해산 시 의원직이 당연히 상실된다는 의견과 법률에 규정이 없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불합리에도 불구하고 의원직은 유지된다는 의견으로 나뉘는 상황이다. 관련 법률이 없는 만큼 정치적으로 해결될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결정이 내려지고 헌법재판소에 의해 활동이 정지된 상태에서 소속 국회의원들의 탈당을 막는 최소한의 장치만 마련한 뒤 국회에서 의원자격 심사를 진행하는 방안이다. 국회가 자격심사를 통해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들에 대한 의원직을 강제로 박탈시키는 방향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법무부의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면서 정부와 학계는 해외 사례를 다시 주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독일 사례다. 제2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원흉국’으로 지목된 독일은 나치당의 후계자인 사회주의제국당(SRP)을 1952년 독일연방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해산시켰다. 독일공산당(KPD) 역시 1956년에 해산됐다.
이에 반해 일각에서는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지 않고 제도권 내에 존속시킬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가인 독일의 경우 역사적 반성이라는 명분을 실현시키기 위해 나치당과 유사한 정당을 해산시켰지만 우리의 경우 통합진보당 해산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면 정치적 역풍을 맞닥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정치적인 논란을 감수하고 정당을 해산시키기보다는 현 상태를 유지시키면서 자연 도태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8일 진행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국정감사에서는 통합진보당 해산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됐다. 해산 청구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여야는 저마다의 셈법에 따라 의견을 쏟아낸 상황이다. 실제로 해산 청구가 있게 되면 정국은 다시 한번 요동칠 전망이다.
이날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통진당 강령의 민중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완전히 다르다. 일하는 사람만을 국민으로 생각하는 것”이라며 “지배집단을 제외하고 노동자·농민만 국민으로 생각하는 것인데, 우리 헌법 1조와 합치되지 않는다. 통진당은 종북정당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김학용 의원은 “통진당 정당해산 심판청구에 대해 국민들의 악에 받친 목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며 “창당 이후 통진당에 95억 5000만 원의 국고가 지원됐는데,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고 전복하려고 하는 세력이 있는 집단에 국민들 세금을 지원하는 것은 대명천지에 있어선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정당해산에 대한 결론은 법과 여론의 합일된 초점이 맞춰질 경우 헌정사상 최초로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승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