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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은 전국적으로 15곳 정도의 카파라치 조직이 활동하 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태윤 기자 | ||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남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것을 나쁜 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지난해 3월 시행된 ‘교통법규위반 신고 보상금 제도’를 계기로 ‘고자쟁이’가 하나의 직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회정의’도 실현하고 보상금도 듬뿍 받아 고소득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런 ‘당근정책’을 통해 우리 사회에 뿌리깊이 박힌 불법행위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문제는 전문적으로 보상금만을 노리는 보상금 사냥꾼 때문에 이런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웃들의 잘못을 깨우쳐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배 불리기에 혈안이 된 ‘신고보상업’의 세계를 조명해본다.
“찰칵 찰칵!”
지난 7월3일 서울 강남의 한 거리. 김영배씨(가명ㆍ37)가 불법 유턴하는 차량들을 향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옷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다리는 저려오지만 그래도 괜찮다. 가끔씩 지나가는 운전자들에게 들켜 욕과 주먹세례를 받기도 하지만 그 치욕을 돈과 바꿀 수는 없다. 오늘도 잘만 하면 ‘앉은 자리’에서 30만원은 거뜬하게 벌 수 있다. 그는 ‘명당’을 알아보는 남다른 기술과 인내심 그리고 전직 사진사의 3박자를 살려 이 세계에선 꽤 유명한 사냥꾼이 되었다.
김씨와 같은 ‘카파라치’(교통법규 위반현장만을 촬영해 신고하는 사람)는 전국에 약 2천4백여 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숫자는 보상금 제도가 시행된 지난해 3월부터 1년 동안 1백만원 이상의 신고보상금을 받은 사람을 기준으로 했다.
1백만원은 일반 시민이라면 한두 번 촬영으로 엄두도 못낼 액수지만 프로들에겐 ‘새발의 피’다. 지난 1년 동안 지급된 보상금 총액 84억4천여만원 중 한달에 1천만원 이상의 고소득을 올린 사람만 63명에 달한다. ‘최고의 프로’ 김아무개씨는 지난해 11월부터 6개월간 7천5백17만원을 벌어들였다.
이 제도 초기 ‘프로’들은 자신들의 영역에서 나홀로 활동을 했다. 하지만 점점 목 좋은 곳의 자리싸움이 치열해지고 ‘꾼’들이 늘어나 경쟁이 심해지면서 혼자서는 활동하기가 힘들어졌다. 특히 시간당 수십만원어치의 신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로 알려진 ‘명당’들은 여러 신고꾼들이 몰리기 때문에 확실히 영역을 조율해야 한다. 그래서 서로 ‘조직’을 만들어 나름의 구역을 정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경찰청은 전국에 15개 정도의 신고보상금 조직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곳에선 팀장급의 경우 한 달에 약 5백여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전문신고꾼끼리 벤처회사를 차려 버젓이 활동하기도 한다.
이들 조직은 다른 신고꾼들이 나타나면 경호조까지 만들어 그들을 쫓아낸다고 한다. 또한 촬영조, 사진현상조, 신고접수조 등으로 철저히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각에선 조직폭력배들까지도 가세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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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배꽁초 투기도 사냥꾼들의 촬영메뉴에 들어있다. | ||
또한 보상금 사냥꾼이 몰리는 위험지역에 대해 경찰이 신호체계를 정비하는 등 사고예방에도 한몫하고 있다. 그리고 자율이든 타율이든 간에 시민들의 교통법규 준수의식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포상금만을 노리는 ‘사냥꾼’들이 기승을 부려 이 제도의 취지를 흐리게 하고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신고의식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탕주의만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제도가 단순히 시민들끼리 서로 감시하게 하는 정부의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의 산물이라는 지적도 많다.
교통위반 신고보상금 제도는 시행 초기에 비해 신고건수가 현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운전자들의 ‘의식’도 높아졌고 신고집중 지점의 신호체계도 개선된 곳이 많아졌고 심사도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신고꾼들이 서로 경쟁을 치열하게 하면서 그만큼 설 자리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래서 ‘신고꾼’들은 보상금을 탈 확률이 높은 곳을 찾아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보상금 사냥꾼들의 또다른 타깃은 환경부의 ‘쓰레기투기 신고 보상금제도’였다. 시행초기보다 포상금 액수가 대폭 낮춰져 신고 건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여기도 꾼들의 ‘신화’는 존재한다.
전북 전주시에 사는 장아무개씨는 지난해 비디오카메라 하나로 8천6백만원을 벌었다. 담배꽁초를 버리는 차량 운전자 2천여 명을 촬영, 신고해 포상금으로 고액을 챙긴 것. 역시 전주에 사는 이아무개씨도 같은 방식으로 5천2백만원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환경부는 내년부터 월 1백만원 수준으로 포상금의 한도를 제한하기로 해 신고 건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교통법규위반 신고보상금 제도가 시들해질 무렵 프로들은 ‘카메라’를 자동판매기로 돌리기 시작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지난 1998년부터 ‘부정불량식품 등의 신고보상금제’를 시행해오고 있다. 미등록 자판기를 신고할 경우 15만원의 보상금을 주도록 되어 있는데 신고꾼들은 여기에 집중적으로 몰리고 있다는 것. 보상금액이 비교적 크고 미등록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지난 2000년까지만 해도 한해 평균 10여 건을 밑돌던 자동판매기에 대한 신고는 지난해부터 급증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한 남매가 전체 보상금의 40%에 해당하는 5천2백7만원을 ‘독식’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들은 제주 등 전국 14개 시ㆍ도를 돌며 ‘무신고 자판기영업’ 등의 위반사항을 집중적으로 신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에는 증권가에도 신고꾼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증권거래소가 지난 6월1일을 기해 주가조작 등 불공정행위를 신고한 사람들에게 ‘소정의 포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포상금 최고액은 1백만원으로 다른 신고보상금보다 월등히 높아 신고꾼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신고제도는 신고꾼보다는 내부자나 친지의 신고가 상대적으로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새로 출범한 부패방지위원회가 지급하는 최고 2억원의 포상금도 전문 신고꾼들의 가시권에 있다. 이 포상금은 각종 청탁이나 봐주기의 대가로 받는 뇌물 등의 비리를 신고할 경우에 차등 지급되는 돈. 기관 내부인은 물론 일반인도 할 수 있고 포상금이 천문학적 액수라 이 역시 ‘한탕주의’에 물든 신고꾼들의 표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의 해를 맞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급하는 불법선거 신고 보상금도 신고꾼들의 아르바이트 거리로 등장했다. 최고액이 1천만원에 달해 상대적으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6ㆍ13지방선거 당시 한 제보자가 1천만원을 수령한 경우도 있었다. 지금까지 불법선거운동의 신고자는 대부분 해당 후보의 선거운동을 해오던 내부자. 하지만 신고꾼들이 선거판에 몰릴 경우 불법 청중동원 등 가시적인 부정행위를 저지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신고꾼 대열에 앞으로는 신종 ‘의파라치(의료 파파라치)’까지 가세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7월부터 의료기관의 불법행위를 신고하는 시민들에게 건당 최고 20만원까지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했기 때문. 의료기관들의 의약분업 위반사례가 상당수에 이르고, 의약분업에 대한 시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감안하면 적잖은 ‘의파라치’들이 출현할 것으로 예상된다.
불법행위를 뿌리뽑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국민 모두가 ‘고자쟁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국민들의 자발적인 신고정신에 기초해야 한다. 정부가 근시안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당근’을 내걸고 서민들을 유혹한다면 결국 보상금 사냥꾼만 넘쳐나게 된다. 오늘도 대한민국의 은밀한 곳에서는 남의 허물을 팔아 잇속을 챙기는 ‘고자쟁이’가 양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