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잘했다’ 불통에 분통
[일요신문] 지난 10월 24일 오전,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모여 있는 춘추관에는 냉기가 감돌았다. <경향신문>이 이날치 1면 머릿기사로 전날 있었던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의 백그라운드 브리핑 내용을 전재했기 때문이었다. 이 수석은 발언 당시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요청했고, 이 때문에 다른 어떤 언론사도 그의 발언 내용을 기사화하지 않았는데 <경향신문>이 이를 그대로 게재한 것이다. 더욱이 <경향신문>은 발언의 출처를 ‘청와대 관계자’로 하는 대신 이 수석의 실명을 적시했다.
오프 더 레코드를 깬 이상 <경향신문>에 대한 청와대 기자단의 징계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 소동은 박근혜 정부와 청와대 출입기자들 간의 긴장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상당수의 기자들이 <경향신문>의 오프 더 레코드 파기를 비판하면서도, 최근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선거 개입 의혹 등을 대하는 청와대의 행태 역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출입기자는 “매일 국정원 사건 관련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쓸 수 있는 기사라곤 ‘청와대가 침묵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며 “공식 발표 외에 웬만한 건 다 비보도를 요청하는 행태는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출입기자도 “새 정부가 아직 1년차이고, 또 ‘윤창중 사태’를 거치면서 아직 공보나 홍보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자신들이 기사화되기를 원하는 것만 얘기하는 경향이 있었다”면서 “일부 기자들 사이에서 <경향신문> 보도를 보고 ‘차라리 잘했다’는 얘기가 오갔을 정도”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밀봉, 철통보안, 불통’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쌓아 온 박근혜 정부의 대언론 관계가 앞으로도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박공헌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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