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싱크탱크에 거물들이 몰려온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빅텐트’ 구성 작업에 손학규·김두관 두 대권주자 쪽이 적극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준필 기자
경기 화성갑 보궐선거 다음날 민주당 당직자가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화성갑은 화성을과 달리 전형적인 새누리당 강세지역이었다. 일각에서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가 화성시에서 박근혜 대통령보다 표를 많이 얻었다며 승리를 기대했지만 대선 때 득표는 화성갑과 을을 합산한 수치다. 화성갑은 문 의원이 10%포인트 이상 뒤졌던 곳이다.
불출마로 인해 손학규 고문으로서는 힘든 싸움을 피할 수 있었다. 야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손 고문은 김한길 지도부의 의견을 수용해 재·보선에 나서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어려운 싸움에 앞장서 대권주자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당 안팎으로 제기되는 안철수 신당행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참모진들이 끝까지 만류하면서 성사되지 못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현재 야권 내 ‘손-안 밀약설’은 상당 부분 와해된 상황이다. 그렇다고 의구심까지 해소된 것은 아니다. 앞서의 당직자는 “손학규 상임고문이 당분간 당과 거리두기에 나설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그 근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알기로 손 고문 측이 재·보선 때 화성에 상주하면서 유세 활동을 적극 도울 것이라고 했는데 실상은 달랐다. 국정감사 중인 현역 의원들보다 소극적이었고 ‘일용엄니(탤런트 김수미 씨)’까지 합세한 마지막 대규모 지원유세에서는 혼자만 민주당 공식 재킷을 입지 않았다. 선거가 끝나니 당분간 대학 강연에 집중한다고 하지 않나. 곳곳에서 그런 움직임들이 보인다.”
“손학규를 어떻게 보고….”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손 고문은 안철수 신당 합류 가능성을 일축했다. 하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안철수 측과의 연대 문제는 어떻게든 다시 불거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심상치 않게 거론되는 것이 ‘빅 텐트(연정)론’이다. 적어도 내년 지방선거까지는 안철수 신당 세력과 어떠한 연대도 없이 독자적으로 활동한 이후 ‘당 대 당’으로 합친다는 시나리오다. 민주당이 안철수 신당 성장을 가로막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현 김한길 지도부가 품은 뜻과는 다르다. 김한길 지도부 역시 “결국에는 야권이 연대하지 않겠느냐”는 반응이지만 빅 텐트론과 달리 “민주당을 중심으로 안철수 세력이 흡수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전략홍보본부장을 맡은 민병두 의원 역시 비슷한 생각인 것으로 알려진다. 지도부에서 안철수 신당을 경계하는 것은 세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지방선거에서 야권 표 싸움이 치열해질 것이 불 보듯 빤하기 때문이다. 연대가 아닌 분열만 커질 것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결국 안철수 의원이 야권의 훌륭한 자산이라는 생각은 비슷하다. 문제는 연대 방식인데, 안철수 의원 참모진이나 지지자들 상당수가 민주당에 반감을 갖고 있어 오고 싶어도 쉽게 나서지 못한다는 게 딜레마로 작용한다”고 전했다.
장기적으로는 손학규 고문을 중심으로 한 당권 장악 움직임을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목이 쏠리는 곳은 손학규 고문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이다. 출범 7년을 맞은 동아시아미래재단은 지난 4월 동아시아미래연구소를 발족했는데 창립 기념식에 안철수 의원도 참석했다.
동아시아미래재단의 한 연구원은 “재단 운영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연구소 운영과 정치아카데미 운영이다. 좀 더 비중을 두는 쪽은 아카데미”라며 “현재 2기까지 진행된 정치아카데미는 다른 곳에 비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큰 틀은 ‘저녁이 있는 삶을 통한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그려보는 것”이라고 전했다.
아카데미 강사진으로는 안철수 의원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 초대 이사장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을 비롯해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참여하고 있고, 장하성 고려대 교수 역시 합류했다. 현역 의원으로는 신학용·이찬열·최원식 의원이 재단 이사진으로 활약하며 손 고문 곁을 지키고 있다.
야권 성향의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정치의 연속성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이 사람과 돈”이라며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아카데미가 우후죽순 생기고 있지만 동아시아미래아카데미는 커리큘럼도 탄탄하고 손학규·박원순 등과 친분을 쌓을 수 있으니 괜찮다는 평가가 많다”고 전했다. 동아시아미래재단 측은 “오보”라며 부인하지만 손 고문은 지난 5월 수백 명의 지지자들과 유럽 단체여행을 가는 계획이 알려질 만큼 지지 세력이 공고한 편이다.
앞서의 민주당 초선 의원은 “야권에서 친노니 비노니 그런 구도로만 비쳐지고 있는데 민주당 개인 자정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빅 텐트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민주당에서 크게 양보해야 성사가 가능한 것이라 섣불리 제의했다간 잡음만 크게 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쪽에서는 김두관 상임고문의 ‘자치분권연구소’도 주목하고 있다. 손 고문과 함께 독일에서 수학한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는 내년 3월까지 귀국 일정을 늦췄다. 국내 정세를 더 살피겠다는 판단에서다. 10월 중순 김 전 지사는 한중우호교류협회 이사장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이때 국내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독일로 갔다.
김 전 지사가 정중동 행보를 보이는 반면 그의 싱크탱크는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 자치분권연구소는 사무실을 옮기고 편제를 변경했다. 예단하기 이르지만 지방선거에 큰 쓰임을 받을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는 후문이다.
현역 의원으로는 각각 경기지사와 인천시장에 물망이 오르고 있는 원혜영 의원과 문병호 의원이, 연구소 고문으로는 김두관 전 지사를 비롯해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이 있다. 내년 광주시장 불출마 의사를 피력한 천정배 전 장관은 “민주당은 기득권 내려놓고 안철수 세력과 개혁정당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공식 언급키도 했다.
정세균 캠프에 몸 담았던 한 인사는 “안철수 의원 쪽에서 ‘친노’ 하면 일단 혐오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김두관 전 지사나 원혜영 의원은 친노 색을 많이 벗은 야권 중진으로 꼽힌다”면서 “이들이 당 전면에 나선다면 안철수나 정의당 의원들 역시 무리 없이 합세할 수 있다는 구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평론가 김대진 조원씨앤아이 대표는 “다음 총선이 3년 뒤고 대선은 4년 뒤다. 무엇이라 말하기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라며 연정에 대해 시기상조라는 평가를 내렸다. 김 대표는 “우선 안철수 당이라는 게 실체가 없는 상황이다. 지향하는 바나 세계관이 없기 때문에 연대를 전제한 판단이 불가능하다”며 “최근 지역에서 실행위원을 발표하는 것을 봐도 민주당 색이 짙다. 민주당과 수평적으로 합쳐지기에 너무 약하다”라고 전했다.
차기 당권을 내다보는 한 중진 의원은 “흥미로운 움직임이다. 김한길 지도부에서는 안철수 의원이 영이 서지 않을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가 잘 해봐야 6 대 4의 싸움”이라며 “거기서 더 파이를 나눠 먹겠다는 것인데, 당 지도부나 안철수 의원 측이나 집권여당은 심판할 줄 모르고 사달만 낸다”고 말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