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만 맡으면 ‘바람 잘 날 없네’
김우중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은 후 재계 2위까지 올랐던 대우그룹이 해체됐다. 일요신문 DB
2003년에는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SK그룹 회장까지 오른 손길승 회장이 전경련을 맡는다. 그런데 이 해 SK그룹은 SK글로벌이 분식회계를 한 사건이 적발되면서 최태원 회장이 구속되는 등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는다. 심지어 소버린이라는 해외자본으로부터 그룹 경영권을 위협받기도 한다.
‘SK글로벌 사태’로 9개월 만에 물러난 손 회장의 뒤를 이은 사람은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이다. 재임 초 동아제약에는 별 다른 사건이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임기 말인 2007년 초 강 회장과 아들 간 경영권 분쟁이 터졌다. 강 회장의 차남이 아버지와 동생을 상대로 경영권을 얻기 위해 지분경쟁을 벌인 사건이다. 기관투자자들이 손을 들어준 덕분에 강 회장 측의 승리로 일단락이 났지만, 동아제약 역시 ‘전경련 회장사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징크스에 합류한다.
2007년부터 전경련은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이끌게 된다. 취임 첫 해 연말 사돈인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전경련 회장사인 효성도 승승장구했다. 2011년 하이닉스반도체 인수 후보로 효성이 거론되면서 특혜시비가 일었지만, 조 회장이 인수 포기를 선언하면서 봉합된다. 그런데 이미 이때부터 효성은 조 회장 아들들의 지분경쟁이 불이 붙는다. 그 불똥은 올 들어 최근 효성그룹 비자금 사태로까지 번지게 된다. 조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을 놓은 이후에 터진 일이지만, 결국 불씨는 회장 시절 만들어진 셈이다.
대한상의 회장사의 역사도 수난의 역사가 적지 않다. 지난 2000년부터 대한상의 회장을 맡은 이는 두산그룹 회장 출신의 박용성 회장이다. 그런데 박 회장 역시 임기 말인 2005년 두산그룹 ‘형제의 난’이 터진다. 박용곤 명예회장이 그룹 회장직을 박용성 회장에게 넘길 것을 박용오 회장에게 요구하자, 박용오 회장 측이 검찰에 내부 비자금 자료를 검찰에 제보하며 이에 반발한 사건이다. 검찰이 두산그룹이 10년여 동안 326억 원의 비자금을 횡령, 총수 일가의 세금 등 가족공동경비 및 가족분배 개인용도로 사용한 것을 밝혀내고, 두산 관계자 세 명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일단락됐다.
왼쪽부터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그렇다면 현재 전경련과 대한상의 회장사는 어떨까. 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소속사는 GS그룹이다. 얼핏 별 탈 없어 보이지만, 주력사인 GS건설이 창사 이래 최악의 실적을 내면서 가시밭길을 지나고 있다. 올 들어 9월 말까지 매출액 2조 4293억 원에 경상적자는 무려 8209억 원에 달할 정도다.
대한상의 박용만 회장도 두산그룹의 사정이 녹록하지 않다. 회사 측 부인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두산그룹의 유동성 사정이 심상치 않다는 분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주사인 (주)두산은 3분기 말까지 5조 1606억 원 매출에 226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 중이다. 부채비율도 350%가 넘는다.
재계 관계자는 “돌이켜 보면 외환위기 이후 전경련이나 대한상의 회장들을 보면 취임 당시 그룹 내 말 못할 어려움이나 사정이 있던 곳들”이라면서 “경제단체장을 맡으면 재계를 대표한다는 명분 덕분에 정부와 금융권이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회장으로서 회사 경영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져 발생한 사건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외환위기 직후 이뤄진 빅딜에 대해 LG그룹이 삼성 중심의 전경련 운영에 반발해 사실상 발을 뺐고, 현대차그룹도 왕자의 난 등을 겪으며 전경련과 거리를 두게 됐다”면서 “삼성 이건희 회장이 전경련을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이 비등했지만 성사되지 않으면서 이들 세 그룹에 못 미치는 그룹이 재계 수장을 이끌어왔다”고 소개했다.
이러한 징크스를 해당 기업 투자에 참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대기업에서 총수의 역할은 얼핏 눈에 크게 띄지는 않지만, 주요 경영현안에 대한 의사결정에 있어서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대외활동이나 경영 외적 업무가 많은 경제단체장 업무는 어찌됐든 경영에 대한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만큼 평상시에는 몰라도 위기나 비상시 대응능력은 떨어질 수 있다”며 “회사를 보호하기 위해 단체장을 맡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므로 경제단체장 기업들에 대해서는 좀 더 면밀한 투자 접근을 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