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 구조조정 예고… 곱게 물러날 수 없다
이석채 KT 회장은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보낸 ‘사의의 변’을 통해 대대적인 인적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구체적인 방안으로 이 회장은 “임원의 수를 20% 줄이고, 그간 문제가 제기된 고문과 자문위원 제도도 올해 내에 폐지하겠다”라고 밝혔다. 이 같은 강력한 구조조정이 자신의 도리이자 후임 CEO가 개선된 환경에서 KT를 이끌 수 있도록 하는 ‘필요한 조치’라고 했다. 그러나 고문·자문위원 제도 강화와 임원 수 증가, 그에 따른 KT의 인건비 상승은 이 회장이 벌린 일로서 ‘낙하산 인사’라는 지적과 함께 이 회장 스스로 언급했듯 “그간 문제가 제기된” 것이었다.
김은혜 KT커뮤니케이션실장(전무)을 비롯해 김규성 KT엠하우스 사장, 이춘호 사외이사, 윤종화 KT캐피탈 감사, 장치암 커스터머부문 상무, 이태규 전 KT경제경영연구소 전무 등 이명박(MB) 정부 시절 이 회장이 영입한 주요 임원들은 대부분 MB 정부와 인연이 깊은 친정부 인사로 분류되는 사람들이었다.
김은혜 실장은 청와대 대변인 출신이며 이춘호 이사는 MB 정부 초대 여성부 장관 후보로 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한 인물이다. 김규성 사장은 MB 정부 인수위 경제2분과 팀장을 지냈으며 윤종화 감사와 장치암 상무는 MB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을 지냈다. 이태규 전 전무 역시 MB 정부 때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을 지냈다.
지난해 연임에 성공한 이 회장은 올 초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역시 새 정부와 친밀한 인사들을 고문으로 영입해 비난을 받았다. 박근혜 대선후보 선대본부장을 지낸 홍사덕 전 의원과 박근혜 대선캠프 공보단장 출신의 김병호 전 의원을 경영고문으로 불러들였다. 김종인 전 박근혜 대선후보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은 경영자문으로 영입했다. 김정관 KT렌탈 IMC본부장은 박근혜 대선캠프 미디어팀장을 지낸 인물이다.
왼쪽부터 김은혜 실장, 이춘호 이사.
그런데 이제 와서 떠나기 전 이들을 전부 정리해내겠다는 것이 이 회장의 생각이다. 일종의 결자해지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곱게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 회장의 ‘몽니’가 배어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친정부 인사들을 영입했는데 결국 중도하차하게 되자 이들에 대한 배신감이 생긴 것 같다”며 “혼자 죽을 수는 없으니 같이 죽자는 뜻으로 비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회장의 뜻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KT 주변에서는 벌써 이들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인사를 차기 CEO로 추천할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표현명 KT 사장이다.
이 회장을 겨냥한 검찰의 수사·압박 강도가 점차 세지고 있는 것도 이 회장의 구조조정 의지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검찰의 두 차례 압수수색에도 버티던 이 회장이 전격적으로 회장직을 포기한 까닭은 이 회장 개인 비리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인 것으로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실제 검찰은 배임 혐의로 고발된 이 회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 회장의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KT 대표이사로서 이 회장의 마지막 모습이 남중수 전 사장의 그것과 비슷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남 전 사장은 2008년 11월 뇌물죄로 KT 사장직에서 중도하차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