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 살인마? 마약 조직? 누가 그녀를 끌고갔나
태미 린 레퍼트(왼쪽)와 조 피클러. 할리우드 스타를 꿈꾸던 이들은 스무 살도 채 되기 전에 실종됐다.
LA로 향하기 전 그는 집 근처의 작은 아파트로 독립을 했다. 2006년 1월 4일, 그는 친구들과 함께 카드 게임을 즐겼고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친구의 집에서 나온 피클러가 사람들과 마지막 통화를 한 건 1월 5일 새벽 4시 8분. 친구들이 거리에서 그를 마지막으로 본 건 새벽 4시 15분이었다. 그리고 그는 사라졌고, 가족들은 곧 실종 신고를 했다. 조의 작은 아파트는 문이 열려 있었고, 전등과 텔레비전이 켜진 상태였다. 사라진 지 4일 후, 집에서 2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의 어느 거리 한 구석에서 그의 도요타 자동차가 발견되었다. 모든 소지품은 그대로였고, 지갑과 자동차 키만 없었다. 피클러는 차를 주차한 후 어디론가 간 듯했다. 그리고 차 안에서 두 장의 편지가 발견되었다. 그는 종종 시를 쓰곤 했는데, 자신의 심경을 담은 우울한 시 한 편과, 동생에게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자신의 모든 물건을 동생에게 준다는 내용이었다. 유서였던 셈이다.
하지만 새벽까지 카드 게임을 즐겼던 친구들은 조 피클러가 시종일관 유쾌했다고 증언했다. 피클러의 부모도 아들에게 그 어떤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자살로 단정 내리고 근처의 다리에서 뛰어내렸을 거라며 수사에 들어갔지만, 그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 18세의 소년은 그렇게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작은 단서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태미 린 레퍼트는 좀 더 복잡한 상황이었다. 1965년 플로리다에서 태어난 그녀는 모델 에이전시였던 엄마 린다 커티스에 의해 16세 때부터 각종 미인대회에 나가 입상을 했고, 플로리다 지역에선 꽤 유명해진다. 자연스레 배우를 꿈꾸게 된 레퍼트에게 온 첫 기회는, 알 파치노 주연의 <스카페이스>(1983). 플로리다 지역에서 촬영을 이뤄진 이 영화에 그녀는 비키니 차림으로 짧게 등장한다. 이후 지역에서 촬영되는 영화의 엑스트라로 등장하곤 했던 그녀는 본격적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할 계획을 세웠다.
1983년 7월 6일 오전 10시. 남자친구가 데리러 왔고, 레퍼트는 차에 올라 탔다. 평소엔 외출 전에 엄청나게 꾸미는 레퍼트였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부스스한 모습에 머리도 빗지 않았고, 심지어 맨발이었다. 이후 남자친구의 경찰 증언에 의하면, 차에서 둘은 말다툼을 했고, 결국 그녀는 중간에 내렸다고 한다. 코코아 해변의 스테이트 고속도로 근처 주유소의 어느 주차장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사라졌다. 경찰은 당시 플로리다 지역의 미인들을 대상으로 납치, 강간, 살인 등의 범죄를 저지르던 ‘뷰티 퀸 킬러’ 크리스토퍼 와일드를 용의선상에 올렸다. 당시 와일드는 고향인 호주에 돌아가서 범죄를 일으켜 갇혀 있었는데, 레퍼트의 부모는 보석금을 내면서까지 미국으로 소환했다. 하지만 그 어떤 혐의도 찾지 못했다. 10대 소녀를 납치하고 성폭행한 후 피를 내어 마시는 엽기적인 범죄로 ‘뱀파이어 레이피스트’라는 악명을 떨쳤던 존 브레넌 크러츨리도 용의자였지만 역시 증거는 없었다.
이때 부모는 숨겨둔 이야기를 꺼냈다. 실종 한 달 전에 어느 파티에 다녀온 후 고함을 치고 야구 배트로 유리창을 부수는 등 난동을 부려 정신병원에 간 적이 있다는 것. 하지만 의사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진 못했다. 이후 린다 커티스는 딸인 레퍼트가 범죄 조직으로부터 위협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어릴 때부터 엔터테인먼트의 세계를 접한 레퍼트는 우연히 지역의 마약 및 돈 세탁 조직에 대해 알게 되었던 것. <스카페이스> 현장에서 사람들과 그런 얘기를 하곤 했는데, 그때부터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린다는 딸이 경찰에 그 모든 내용을 이야기했다고 주장했고, 경찰은 부인했다. 실종 당시 임신 상태였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경찰서에 의문의 제보 전화가 걸려온 적도 있는데, 어느 중년 여성은 레퍼트가 간호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열심히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린다는 레퍼트가 <스카페이스>를 찍으면서 잔인한 현장을 목격한 이후 피에 대한 공포증이 생겼다며, 간호사가 꿈이라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사라진 지 30년이 된 태미 린 레퍼트. 1995년에 린다는 세상을 떠났고, 현재 레퍼트의 동생이 아직도 애타게 언니를 찾고 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