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 신뢰 무너지자 스타들도 지리멸렬
동부와 오리온스가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는 가운데 이충희, 추일승 감독의 지도력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제공=KBL
이충희 감독이 새로 부임한 원주 동부는 올 시즌 첫 5경기에서 4승을 거두며 순항했다. 하지만 이후 끝이 보이지 않는 연패의 터널에 들어섰다. 이충희 감독은 “부상자들이 많아 걱정”이라고 말한다. 연패의 가장 큰 이유는 부상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간판스타 김주성은 첫 5경기 동안 잘 뛰다가 무릎과 발목을 다쳤다.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가드 박병우도 타박상으로 인해 한동안 코트를 밟지 못했다.
이충희 감독은 올해 동부의 사령탑을 맡으면서 명예 회복을 다짐했다. 4승22패라는 초라한 성적 때문에 부임 7개월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했던 2007년 대구 오리온스(현 고양) 시절의 아픔을 달래고자 했다. 또한 동부는 시즌 전 우승 후보로 여겨졌다. 기대가 컸다.
이충희 감독은 현역 시절 한국 남자농구를 대표하는 슈터였다. 그가 선수로서 누렸던 명성에 버금갈 만한 지도자는 허재 전주 KCC 감독 외에는 없다. 말 그대로 코트의 ‘타짜’다. 그러나 6년 동안 프로 현장을 떠나있었던 점에 대한 우려는 컸다. 이충희 감독은 TV 해설위원을 하며 “늘 현장에 있었다”고 말하지만 벤치 안에서 농구를 보는 것과 밖에서 보는 것은 천지차이다. 그 감각은 하루아침에 돌아오지 않는다. 어느 프로 스포츠에서나 마찬가지다.
이충희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는 모습. 사진제공=KBL
어느 팀이나 작전 타임 이후에는 드라마틱한 변화를 갖기 마련이다. 동부는 그 힘이 떨어진다. 4쿼터에서 힘을 내지 못하는 이유다. 동부는 연패 기간에 3쿼터 이후(4쿼터+연장전) 승부처에서 평균 15.3점을 올린 반면, 21.2점을 내줬다. 3쿼터까지 앞서가다 역전패를 당한 경우도 적잖았다.
“TV로 중계되는 작전 타임 때 벤치의 모습을 보면 팀 분위기를 알 수 있다”. 한 프로농구 감독의 말이다. 요즘 동부를 바라보는 시선에 우려가 많다. 확연히 가라앉은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1분 남짓의 작전 타임이 부족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늘 시간이 남는다. 설명하고 지시할 내용이 많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선수들도 수장의 지시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듯 보일 때가 많다. 땀을 닦고 음료를 마셔도 눈과 귀는 감독을 향해 있어야 하는데 딴청을 부릴 때가 적잖다.
이충희 감독과 선수들 사이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 농구판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시즌 개막 전부터 이충희 감독의 지도력에 선수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지금이다.
# 산으로 가는 오리온스
다수의 농구 관계자들은 전태풍과 김동욱의 갈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인간적인 갈등이 아니라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비롯되는 갈등이다. 전태풍은 자신이 공을 들고 농구를 해야 한다. 자신이 경기를 풀어나가야 직성이 풀린다. 문제는 전태풍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공격을 할 때 김동욱이 섞이지 못한다는 점이다. 득점력과 패스 능력을 겸비한 김동욱은 리그 최고의 포워드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 역시 공을 자주 만져야 감이 살아나는 스타일이다. 공격 때 신바람을 내지 못하면 수비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둘의 공통점이다. 둘의 보이지 않는 갈등은 지난 시즌 6강 플레이오프 때 표면 위로 나타났다.
추일승 오리온스 감독은 이 같은 문제점을 정확히 짚고 해결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자꾸 엇박자가 나고 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오리온스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팀의 문제점이 명확히 보이는데도 감독은 둘이 아닌 다른 선수를 지적하고 혼낼 때가 많다. 그러면 공감대를 얻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귀띔했다.
동부와 오리온스를 차치하더라도 명장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그 안에서 신뢰를 두텁게 만드는 것이다. 한 농구인은 “지도자가 요구하는 전술이 A, B, C 세 가지 방식이 있다고 하자. C가 가장 떨어지는 전술이라 할지라도 선수들이 믿고 따라올 수 있게끔 만든다면 그 전술은 통하고 그 팀은 돌아간다”고 말했다. 이충희, 추일승 감독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다.
박세운 CBS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