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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압구정동에서는 스포츠카나 고급 승합차를 타고 거 리를 질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 보는 젊은 남녀끼 리 각자의 차에 올라타기도 했다. | ||
‘4강 신화’. 세계 축구사가 새로 쓰여진 6월22일 그 날. 한반도의 붉은 물결은 용광로처럼 달아올랐고, 급기야 폭발했다. ‘Be the reds.’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4천7백만, 승리의 함성은 천둥소리였고, 그 격정은 거대한 태풍이었다. 뜨거운 눈물과 환희는 삼천리 한반도를 뒤덮었다. 날이 저물고 밤이 깊어도 열기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밤하늘을 수놓는 폭죽과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자동차 경적소리는 도심을 광기의 도가니로 뒤바꿔놨다.
그곳엔 주체할 수 없는 흥분과 기쁨의 몸부림으로 가득했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허용된 일탈’ 아니 ‘함께 하는 일탈’의 모습이었다. 그곳엔 새로운 문화가 싹트고 있었다. 그 현장 속으로 달려가 봤다.
[압구정의 ‘로열 콜리건’]
부의 상징 서울 강남 압구정동. 화려한 의상실과 고급 카페가 즐비한 로데오 거리와 갤러리아 백화점 앞 도로는 ‘로열 콜리건’(한국의 상류층 훌리건이란 의미의 신조어)들에 의해 밤새 ‘점령’을 당했다.
‘빠빵~빵 빵빵!’ ‘대~한민국!’ 고급 외제 스포츠카와 밴(고급 승합차), 중대형 승용차들은 주변 도로와 골목을 휘돌며 경적을 울렸고, 차 지붕과 문틀에 올라앉은 수백 명의 젊은 남녀들은 태극기를 휘날리며 ‘대한민국’을 외치고 환호성을 질러댔다. 거리를 가득 메운 젊은이들은 이에 답례라도 하듯 함께 뛰어다니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붉은악마’였다.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8시. 로데오거리는 붉은색 옷과 조명으로 가득했다. 음악이 있는 곳에선 여지없이 군무가 펼쳐졌다. 수십, 수백 명의 ‘붉은악마’들은 손을 휘두르며 하나된 목소리로 응원가를 부르고 땅을 박찼다. 몇몇은 열기를 식히려는 듯 대야와 물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 응원하는 이들에게 한바탕 시원하게 뿌려댔다. 난데없이 물벼락을 맞은 이들은 즐거운 괴성을 지르며 잠시 흩어졌다가 이내 모여 다시 목소리를 합쳤다.
“왜 여기에 모여서 응원하는 겁니까.” 우문 뒤 되돌아 온 답변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어이없다는 듯)훗~! 이 앞 편의점에서 음악을 틀어주니까요.”
이 거리의 모습은 단지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폴란드로부터 역사적인 월드컵 첫 승을 따낸 날도 그랬고, 16강, 8강의 승리를 얻은 날도 오늘과 비슷했다. 어느새 이 거리엔 월드컵 ‘세리머니’를 즐기는 나름의 신 문화가 자리잡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 ▲ ‘붉은악마 패션’의 젊은 여성 | ||
급기야 시내버스까지 세운 이들은 대형 태극기로 운전사 앞을 가로막은 뒤 수십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좌우로 크게 버스를 흔들어댔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불쾌해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세리머니’를 즐긴 이들은 “감사합니다”라며 예의를 지켰고, 운전기사와 승객들은 ‘대~한민국’을 외치며 화답했다.
날이 쌀쌀해져서인지 ‘물세례’는 어느새 ‘밀가루세례’로 바뀌었고, 도로를 질주하는 승용차와 그 위에 올라탄 이들은 밀가루를 잔뜩 뒤집어썼지만 마냥 즐거운 표정이었다.
젊은 남녀들간에 시대를 반영하는 문화가 있다면 그건 바로 ‘미팅문화’. 역시 이번 월드컵에도 신종 수법이 등장했다. ‘대한민국 응원팅’이라고 이름 붙여도 무방할 듯싶다.
몇몇 젊은 남자들이 승용차를 타고 경적과 함께 ‘대~한 민 국’을 외치고 다니다가 젊은 여성들만 탄 차가 보이면 한 두 사람이 무작정 상대 차로 옮겨 타는 모습들이 심심찮게 목격됐다. 그리고 함께 도로와 골목을 휘돌며 환호성을 지르면서 자연스레 친해져갔다.
또 몇몇 젊은이들은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인지 오픈형 고급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며 젊은 여성들을 무작정 차에 싣고 압구정 일대의 ‘축제 분위기’를 즐겼다.
새벽 3시. 수십 명씩 사람을 싣고 거리를 누볐던 한 고급 밴(승합차) 옆에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 4명이 모여서 ‘퇴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천만원에 달할 것 같은 밴은 위에서 뛰어놀던 이들 덕분(?)에 잔뜩 찌그러진 지붕과 벗겨진 페인트 자국에 거의 폐차나 다름없어 보였고, 가게 문 앞에 걸터앉아 있는 젊은 남자들의 모습은 무척 지쳐 보였다. ‘광란’의 밤을 보낸 탓이리라. 하지만 이들의 얼굴은 뭐가 그리 좋은지 아직도 ‘생글생글’하다.
“16강 때부터 나왔어요. 그때 차 지붕이 많이 망가졌지만 고치지 않았습니다. 이기면 또 해야지 했죠. 16강, 8강 그리고 오늘 4강. 그랬더니 차가 이 지경이 됐네요. 이럴 때 놀아야지 언제 놉니까. 준결승 때 또 나와야죠. 하지만 지면 그냥 집으로 갈랍니다.” 자영업을 하고 있다는 20대 후반의 한 젊은이의 말이다.
밤새 ‘해방구’처럼 한바탕 난장판이 벌어진 압구정동 일대. 그만큼 사건 사고도 많았을 법하다. 그러나 예상 밖. 관할 강남경찰서 당직형사는 “우리도 사건이나 사고가 많을 것으로 우려했는데 접수된 건수가 거의 없었다. 도심만 시끄러웠지 경찰서 유치장은 오히려 여느 때보다 조용하다”며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애국가와 아리랑의 신촌]
서울의 대표적인 젊음의 거리 신촌 은 우리 팀 경기가 벌어질 때마다 붉게 붉게 물들었다. 차 없는 거리로 변한 신촌로터리에는 시청과 광화문에서 굽이쳐 온 ‘붉은 인파’로 매번 거대한 바다를 이뤘다. 지난 22일 스페인전이 벌어진 날에도 젊은이들의 함성과 열기는 그렇게 밤새 거리를 들끓게 만들었다.
신촌로터리는 평소에도 유동인구가 많은 곳. 조심해도 사람들끼리 부딪쳐 시비가 일기 일쑤다. 하지만 이날 밤만은 그렇지 않았다. 수십만 명이 거리에서 몸을 부대꼈지만 누구도 싫은 표정을 짓지 않았다. 오히려 전혀 모르는 사람과도 ‘하이파이브’를 하며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내 곁에 누가 섰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날은 모두가 한가족이기 때문이었다. 트럭에 응원단을 가득 태운 한 운전자는 “뒤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하나다. 신촌거리를 끝없이 달리고 싶다”며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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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촌 거리에선 서로 알지 못하는 트럭 운전사와 젊은이들 이 한데 어울려 기쁨을 만끽했다. | ||
거리 곳곳의 상점들은 ‘월드컵 승리 기원 응원하러 갑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여 놓고 손님을 맞이하지 못하는 미안함을 대신하고 있었다. 한 커피숍은 4강 기념으로 모든 커피를 4백원에 팔고 있었다. 가게 앞에 길게 줄지어 늘어선 손님들은 싼 커피보다 승리의 달콤함을 사려는 듯 행복하게 보였다. 평소에는 짜증나던 줄서기도 오늘따라 즐겁기만 했다.
대학생들의 집단문화를 빼앗아간 ‘은밀한 공간’ PC방도 오늘은 모두 텅 비어있다. 익명의 아이디로 인터넷을 서핑하던 학생들도 모두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붉은악마’라는 아이디 하나로 모두 하나가 된 것이다.
가수 혼자서 외롭게 기타를 퉁기던 한 라이브 술집은 이날 영 딴판이었다. ‘젊은 그대’의 열기와 함성으로 10평 남짓한 술집이 떠나가고 있었다. 주인도 같이 목이 쉬어버렸다. 신촌의 모든 술집들도 ‘붉은악마’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응원 길놀이패들이 사물놀이를 앞세우고 술집에 들어서면 손님들은 일제히 일어나 목청껏 ‘대~한민국’을 외쳤다.
연세대 앞 거리를 중심으로 곳곳에선 못다한 응원이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 조상들이 주신 ‘선물’ 사물놀이가 오늘처럼 이렇게 기막히게 쓰일 줄은 미처 몰랐다. 붉은악마들의 터질 듯한 심장 박동을 우리의 타악기들이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곳곳에서 징과 꽹과리 소리에 맞춰 끊임없이 ‘대~한민국’과 ‘필승 코리아’를 연호하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큰 싸움 하나 없이 조용히(?) 승리를 만끽하는 것은 어쩌면 한국팀의 기적같은 승리처럼 믿기지 않는 일인지 모르겠다. 신촌지역 파출소는 의외로 한산했다. 모두 밖으로 안전근무를 나갔지만 웬만한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 경찰 관계자는 귀띔해주었다.
관할 서대문경찰서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 몇몇 내근자가 모여 축구경기 재방송을 보면서 ‘근무’하고 있었다. 유치장에도 평소보다 사람들이 적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응급실도 밤 12시께 걸어 들어온 두세 명의 ‘붉은악마 환자’들을 빼곤 여느 때와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환자수는 늘어났지만 “수십만 명이 모인 행사 규모에 비한다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 수준”이라고 병원 관계자는 말했다.
거리에서 마주친 한 영국인 영어강사는 “영국에서는 훌리건들이 대부분 ‘워킹 클래스’(노동계급) 출신이라 과격한 응원이 사회문제가 될 때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신기하기만 하다. 어떻게 이렇게 즐겁고 유쾌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로를 배려하면서 축제를 즐기는지 모르겠다”며 성숙한 시민의식에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거리에는 밤새 애국가와 아리랑이 울려퍼졌다. 이제 이 노래들은 더 이상 근엄하거나 ‘촌스런’ 노래가 아니었다. 학창시절이나 군대에서는 그렇게 부르기 싫어하던 애국가를 ‘god’ 노래처럼 열심히도 불렀다. 경찰도 더 이상 ‘짭새’가 아니었다. 안전정리를 하던 경찰관에게 3~4명의 대학생이 달려가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도 보였다.
2002년 6월의 밤은 ‘어제’와는 분명 다른 밤이었다. 너와 나는 없고 ‘우리’만 있는 밤이었다. 취재중 난데없이 물을 한바가지 뒤집어쓴 기자도 수첩을 덮고 끝없는 붉은 바다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