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쉬’ 대신 ‘당당’ 침묵은 금이 아니더라
왼쪽부터 한효주, 에일리.
이들은 11월 초 한효주의 부친에게 전화를 걸어 사진의 존재를 알리고 돈을 요구했다. 사진 한 장당 2000만 원씩, 총 4억 원을 내놓지 않으면 온라인 등을 통해 해당 사진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이었다. 곧바로 딸에게 사진의 존재를 물은 한 씨는 “문제될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다”는 한효주의 말을 전해 듣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의 지시로 한 씨는 범인들에게 1000만 원을 건넸고 이를 통해 결국 20여 일 만에 일당 3명은 검거됐다.
한효주를 협박한 장본인들은 전 소속사의 매니저들로 확인됐다. 한때 가깝게 지낸 지인이었다는 데서 이번 사건은 심각성을 더한다. 이들은 한효주가 소지한 디지털카메라에서 사진을 몰래 빼내 자신들의 휴대전화에 저장하는 수법을 썼다. 소속 연예인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매니저들이 오히려 위협을 가하는 범죄자로 돌변한 것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연예계 안팎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이 같은 피해를 막으려면 연예인을 바라보는 성숙한 시선과 분위기가 절실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또한 이런 자정의 노력과 함께 여자 스타들의 강경한 대처가 또 다른 피해를 막는 방법이라는 지적도 있다.
앞서 11월 초에는 가수 에일리가 데뷔 전 미국에서 속옷 광고회사를 사칭한 이들에게 속아 촬영한 노출 사진 여러 장이 한류 관련 사이트를 통해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에일리는 곧장 미국 측 변호인을 선임해 대응에 나섰다. 에일리는 또 유출된 사진에 대해서는 “4년 전 미국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혀 더 이상의 논란을 차단했다. 유사한 일이 벌어졌을 경우 눈물을 흘리며 ‘피해자’의 모습을 보여주던 과거 연예인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당당한 대처라는 의견이 나온 이유다.
연예계의 한 관계자는 “여자 스타라는 이유로 악의적인 공격을 참고 넘어가는 건 옛날 일이 됐다”며 “좋지 않은 소문이나 협박을 받아도 주위 시선만 의식하는 건 해결책이 아니다. 수사기관이나 법의 도움을 받으려는 분위기가 더 자리 잡아야 이런 범죄도 줄어들지 않겠느냐”고 했다.
왼쪽부터 백지영, 이영애, 송혜교.
이뿐만이 아니다. 악성 댓글에 대처하는 여자 스타들의 입장도 달라지고 있다. ‘악플러’를 고소하고도 여러 상황을 고려해 ‘선처’를 베풀었던 스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용서를 포기하는 경우가 더 많다. 가수 백지영와 배우 이영애, 송혜교 등이 모두 강경 대응을 택했다.
지난 6월 연기자 정석원과 결혼한 백지영은 7월에 유산의 아픔을 겪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백지영은 팬들의 위로를 받기도 했지만 한편에서는 입에 담지 못할 각종 소문에도 시달려야 했다. 결국 백지영은 근거 없는 소문을 각종 온라인 게시판에 유포한 악플러를 고소했다. 당시 백지영은 소속사를 통해 “유산을 겪은 사람에게 욕설과 비방, 사람으로서 상상하기 어려운 합성 사진을 공개하는 일을 막고 싶었다. 가장 마지막 방법인 고소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 11월 중순 백지영에 대한 악질적인 소문을 퍼트린 악플러 4명을 기소했다.
배우 이영애도 같은 입장이다. 이영애는 최근 남편과 관련해 불거진 허위 사실에 대해 더는 참을 수 없다면서 법적 대응에 나섰다. 자신의 가족을 둘러싸고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린 누리꾼 등을 형사 고소한 이영애는 법률 대리인을 통해 “아무런 근거 없이 떠도는 얘기를 마치 본인이 직접 알고 있는 정확한 사실인 것처럼 인터넷에 게재하고 있다”며 “이대로 침묵하는 건 가족의 명예와 허위소문에 언급된 또 다른 연예인의 명예까지 훼손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에 이를 시정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현재 이에 대한 수사는 진행 중이다.
여자 스타들이 이처럼 강경하게 돌아선 데는 이유가 있다. ‘침묵’은 더 이상 ‘금’이 아닌 시대다. 특히 과거에 비해 소문이 유포되는 속도가 스마트폰 등의 영향으로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진 데다 소문의 내용 역시 ‘소설’에 비유될 정도로 광범위해지면서 자칫하다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여자 스타들을 적극적으로 나서게 한다.
연예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 비해 스타들이 직접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것을 받아들이는 대중의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진 건 사실”이라며 “연예인이 피해자인 게 명백한 상황에서 이미지 타격을 우려해 몸을 사리는 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