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 옛말… ‘나이 먹은 게 죈가요’
큰 사진은 김동주, 김선주. 작은 사진은 고영민, 장성호. 사진제공=두산베어스
사실 프로야구에서 나이 든 베테랑 선수들은 ‘계륵’이다. 이병규(LG), 홍성흔(두산)처럼 여전히 좋은 성적을 거두는 베테랑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36살 이후의 베테랑 선수 가운데 상당수는 백업요원이거나 불펜요원들이다. 대부분은 엄밀하게 말해 1.5군급이다. 특히 잦은 부상으로 출전 경기수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문제는 이들의 연봉이 20, 30대 초반 선수들보다 월등히 높다는 점이다.
구단 입장에선 팀 기여도는 떨어지는데 반해 몸값이 높은 베테랑들이 반가울 리 없다. 물론 베테랑의 장점도 많다. 일단 경험이 풍부하다. 젊은 선수들의 체력이 한창 떨어지는 여름과 4강 진출권이 달린 가을 그리고 포스트 시즌에서 베테랑들은 특유의 체력관리와 풍부한 큰 경기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선수들의 공백을 훌륭하게 메운다. 감독들이 포스트 시즌만 되면 젊은 선수보다 베테랑을 중용하는 것도 바로 경험 때문이다. 여기다 리더십도 무시할 수 없다.
KIA 선동열 감독은 “감독, 코치의 백마디 잔소리보다 베테랑들의 한마디에 젊은 선수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게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베테랑 대부분이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것도 구단이 이들을 함부로 내칠 수 없는 이유다. 팬 가운데 상당수는 팀이 이기는 걸 보러 구장을 찾지만, 일부는 자신이 응원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티켓을 구매한다.
몸값은 높지만, 여러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베테랑을 가리켜 ‘계륵’이라 칭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 홀대할 수밖에 없는 구단들
과거 같으면 구단은 베테랑과 팬들의 눈치를 살폈다. 실력이 확연히 떨어지는 베테랑이라도 쉽게 방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좋은 예가 있다. 이번 2차 드래프트다.
2차 드래프트는 프로야구 9구단 NC의 창단에 맞춰 도입된 제도다. 리그 전력 평준화와 선수들에게 1군 출전기회를 제공하자는 게 도입 목적이었다. 2011년부터 격년제로 열리는 2차 드래프트는 구단별로 보호선수 40인을 정해놓고, 그 외 선수들은 어느 구단이든 자유롭게 지명할 수 있다.
2011년에 열린 초대 2차 드래프트만 해도 구단들은 베테랑보단 가능성이 떨어지는 신진 선수들을 보호선수 40명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이번에 열린 2차 드래프트에선 반대의 현상이 벌어졌다. 구단들은 앞다퉈 노장 선수들을 보호선수 40명에서 제외했다.
대표적인 선수는 김동주, 김선우, 고영민, 임재철(이상 두산), 장성호, 정보명, 이인구(롯데), 강동우, 김일엽, 최승환(이상 한화), 강봉규, 신명철(이상 삼성), 최향남(KIA), 최동수, 김일경, 정재복(이상 LG), 최영필(SK) 등이었다.
야구계는 “김동주, 김선우, 강봉규, 신명철, 장성호, 고영민 등은 어느 팀에 가도 주전선수로 뛸 수 있는 즉시 전력감”이라며 “3라운드로 진행되는 2차 드래프트에서 이들 가운데 3, 4명은 구단의 지명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뜩이나 이대형처럼 백업요원으로 뛰던 선수도 20억 원 이상을 챙긴 ‘FA 광풍’이 휘몰아친 직후라, 최대 3억 원만 지급하면 검증된 베테랑을 영입할 수 있는 2차 드래프트는 그야말로 절호의 전력보강 기회였다.
2차 드래프트에서 LG에 지명된 임재철.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2차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는 LG에 호명된 임재철 밖엔 없었다. 나머지 선수는 죄다 다른 구단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어느 팀에 가도 중심타자가 될 것”이라던 김동주가 지명에서 제외된 건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모 구단 운영팀장은 “베테랑을 보는 시각이 확실히 바뀌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2차 드래프트 시장에 나온 베테랑들은 한때 프로야구를 주름잡던 특급선수들이다. 하지만, 이름값이 그 선수의 가치를 결정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실력이다. 재기 확률이 떨어지는 베테랑을 영입하는 것보단 당장 실력이 떨어져도 가능성이 풍부한 젊은 선수를 영입하는 게 성공 확률을 따질 때 훨씬 높다. 가뜩이나 베테랑을 잘못 영입해 구단과 불협화음이라도 생기면 좋지 않은 분위기가 팀 전체로까지 확산될 수 있어 많은 구단이 베테랑을 기피하는 게 사실이다.”
2차 드래프트에서 베테랑들이 홀대받은 덴 경제적 이유도 있었다. 김동주 영입을 계획했던 모 구단은 주판알을 튕기다 결국 젊은 선수로 선회했다. 이 구단 단장은 “솔직히 김동주 몸값이 부담스러웠다”고 털어놨다.
“2차 드래프트장에서 2라운드까지 어느 팀도 김동주를 호명하지 않았다. 3라운드 지명 시 두산에 1억 원의 이적료만 지급하면 되기에 김동주 지명을 계획했다. 그러나 스카우트 팀장이 ‘김동주 연봉이 7억 원입니다. 우리가 김동주를 영입하면 7억 원을 떠안아야 합니다’라고 말해 김동주 대신 다른 젊은 선수를 지명했다.”
건강상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김선우는 불과 2년 전, 16승 7패를 기록한 특급 선발투수다. 최근 2년 동안 평균 5.5승 평균자책 4점대 후반을 기록하긴 했지만, 여전히 한 시즌 100이닝 이상을 던질 선발요원으로 꼽힌다. 그러나 2차 드래트프에서 다른 구단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김선우 지명을 고려했던 수도권 구단 관계자는 “다른 조건은 모두 좋았는데, 허벅지 부상이 마음에 걸렸다”며 “우리 팀 트레이너가 ‘하체 힘이 빠진 투수는 살아남기 힘들다’고 조언해 결국 김선우 카드를 포기했다”고 밝혔다.
# 현역에서 계속 뛰고 싶지만…
2차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지 못하고, 팀에서도 방출된 최향남은 “KBO리그에서 뛸 수 없다면 다시 미국야구 진출을 노리겠다”며 현역 지속 의사를 밝혔다. 다른 선수 대부분도 현역에서 계속 뛰고 싶다는 속내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내년 시즌에도 그라운드를 밟을 선수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