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아들 데려간다”… 누가 그들을 죽게했나
동반자살한 부자가 주말이면 오르던 청룡산. 이웃 주민은 “유난히 사이가 좋은 부자로 보였다”고 전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최준필 기자
“장애가 있습니다.”
막내아들 강 아무개 군(17)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강 씨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들었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성장이 조금 느릴 뿐이라 생각했던 아들에게 발달장애 진단이 내려진 것. 강 씨는 순간적으로 절망에 빠졌지만 아빠만 바라보는 아들을 그냥 내버려둘 순 없었다. 좋다는 게 있으면 백방으로 쫓아다니며 치료에 최선을 다했고 그저 아들이 평범하게만 살 수 있길 기도했다.
하지만 강 씨의 지극정성에도 아들의 증세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끝내 자폐성장애 1급 판정을 받은 강 군의 증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심해지기만 했다. 가만히 있다가도 무언가 답답하다는 듯 자신의 옷을 발기발기 찢어버리기 일쑤였고 주변 사람들의 옷도 예외는 아니었다. 또한 가족들이나 교사, 낯선 사람들에게도 때리고 할퀴고 꼬집고 머리채를 잡는 등의 공격적인 행동을 보여 쉽게 다가가지도 못하게 했다.
결국 강 군은 지난 6월 다니던 특수학교마저도 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이후 그를 돌보는 일은 전적으로 가족들의 몫이 됐다. 그러나 몸만 훌쩍 자란 강 군을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밥을 먹이고, 화장실을 보내고, 예고 없이 행하는 공격적인 행동과 자해를 막는 일까지 한시도 강 군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가족들에게 휴식시간이라곤 강 군이 스스로 지쳐 잠드는 겨우 몇 시간 남짓이었다. 모두가 힘겨운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강 씨는 아들이 답답할까 주말이면 손을 잡고 집 근처 산을 오르는 등 최선을 다했다.
그런 강 씨의 모습을 기억하는 한 이웃주민은 “유난히 아들과 사이좋은 아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한 번 아들이 갑자기 이상행동을 하는 걸 보고 아프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아빠가 단 한 번도 크게 화를 내지 않더라. 사람들에게 ‘죄송하다’ ‘미안하다’며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누가 봐도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항상 아들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아버지 강 씨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죽은 강 군의 곁에 강 씨가 쓴 것으로 보이는 A4용지 3~4장 분량의 유서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아내와 딸에게 “바람 좀 쐬고 오라”며 등 떠밀어 내보냈던 강 씨가 자살을 택한 것이었다.
아내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유서 내용과 강 군의 목에서 발견한 흔적을 바탕으로 아버지 강 씨가 아들을 목 졸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으로 보고 서둘러 주변을 수색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늦은 데다 비까지 오는 궂은 날씨 탓에 수색이 쉽지 않았다. 결국 날이 밝은 이튿날 오전 9시 무렵에야 서울 관악구 청룡산을 오르던 등산객의 신고로 나무에 목을 맨 강 씨를 발견했다.
마지막 순간에도 아들과의 추억이 담긴 집 근처 산을 찾아 목숨을 끊은 강 씨의 곁에는 집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내용의 유서가 놓여있었다. “이 땅에서 발달장애인을 둔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건 너무 힘든 것 같다”며 정부의 장애정책의 문제점을 호소하는 내용과 함께 “힘든 아들은 내가 데리고 간다. 아들과 함께 묻어 달라”는 부탁도 수차례 반복했다. 평소 아픈 아들을 돌보느라 소홀히 했던 딸과 고생한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강 씨와 아들이 늘 오르던 등산로 입구에서 만난 한 이웃주민은 “두 사람의 생전 모습이 떠오를 때면 아직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얼마나 가족을 사랑했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17년을 키운 자식을 제 손으로 죽인다는 생각을 누가 감히 하겠느냐. 차라리 본인만 생각했으면 이런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늘 가족을 먼저 생각하던 사람이라 아들의 아픈 모습을 지켜보는 일도, 그로 인해 모두가 힘들어하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나보다. 조금만 덜 사랑하지…. 불쌍한 사람이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아픈 강 군을 끔찍이 생각하면서도 때때로 아내에게 “먼저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아들을 데리고 가자”고 말하던 강 씨. 정말 그는 자신이 했던 말처럼 마지막까지 아들의 두 손을 잡은 채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