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잠들 때만 ‘자유시간’
영화 <말아톤>의 한 장면.
밥을 먹이고 나면 이 씨의 옷은 온통 음식물로 뒤범벅돼 씻어야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혹시 사고라도 일어날까 현관문 단속은 물론이고 창문하나까지 다 걸어 잠근다.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두고 샤워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때때로 뛰어 들어오는 아들과 씨름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매일 하루 3번씩 겪는 일이지만 고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돌발행동 때문에 이 씨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는다. 필요한 게 있으면 인터넷으로 장을 보고 남편을 통해 대부분의 일을 처리한다.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는 아들을 볼 때면 안쓰럽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가끔 병원을 방문하거나 치료가 있는 날엔 준비과정에서부터 식은땀이 흐른다. 커갈수록 고집이 세져 한겨울에도 반팔차림의 옷을 고집하는가 하면 아예 옷을 입지 않겠다고 온 방을 휘저으며 도망 다니기도 한다. 겨우 준비를 끝내 바깥으로 나가면 손에 절로 땀이 날 정도로 바짝 긴장한다.
이 씨는 “얌전히 잘 따라오다가도 뭔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때리며 자해한다. 왜 그러는지 말도 안 해주고 말리면 더 심해지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정도가 심해지면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폭력을 휘두르는데 한 번은 화가 난 사람이 아들을 떠밀어 차도로 밀려난 적도 있다. 장애를 설명해도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은 온갖 욕설을 내뱉고 지나가 마음이 아프다. 아들도 집에만 있는 것을 답답해하지만 매번 이런 상황을 겪다보니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밖으로 나오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 씨 역시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자지도 못하는 생활의 연속이다. 남편이 출근하지 않는 주말이나 아들이 잠드는 겨우 몇 시간 자유가 허락되지만 이마저도 맘껏 즐길 여유가 없다. 집안 곳곳에 아들과 씨름한 흔적이 남아있어 이를 정리만 해도 잠 잘 시간이 부족하다. 이처럼 고달픈 하루를 보내는 이 씨지만 잠든 아들을 보고 있자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이 씨는 “사회생활은 물론이고 이제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들도 몇 남지 않았다. 그래도 내 소원은 거창하지 않다. 장애아를 가진 여느 부모처럼 나 역시 아들보다 딱 하루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 부부가 떠나면 혼자 남겨질 아들이 걱정돼 동생을 낳아주고 싶다가도 그 아이는 또 무슨 죄냐 싶어 이젠 포기했다”며 “아들로 인해 가족계획마저도 틀어졌지만 더 나빠지지 않고 지금 이대로만 살아도 좋겠다. 한 가지 욕심을 부린다면 제발 우리 아이들이 수명대로만 살 수 있게 최소한의 정부 지원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