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는 남편 버리고 ‘김씨 왕조’ 택했다
북한은 12일 특별군사재판을 열어 장성택에게 ‘국가전복음모죄’로 사형을 선고하고 이를 바로 집행했다. 양손을 포승줄에 묶인 장성택이 국가안전보위부원들에게 잡힌 채 법정에 서 있다. YTN화면 갭처
한 대북전문가는 “장성택의 여자 문제는 고모의 명예와 직결된 문제다. 김경희와 장성택은 40년간 부부로 살아온 사이이고, 김정은에겐 실질적인 부모나 마찬가지인 사람들이다. 이번 처형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도리를 저버린 패륜적인 만행”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동안 장성택의 실각을 두고 김경희의 위독설이 조심스럽게 제기돼 왔다. 장성택의 권력은 김경희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경희는 김정일 위원장의 죽음 직후 부쩍 늙은 모습으로 공식석상에 등장해 눈길을 모았다. 알콜중독과 신경쇠약을 앓고 있다는 말이 오래전부터 돌았고,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 풍문도 있다.
이에 대해 한 대북 전문가는 “김경희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조카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남편의 수족을 자르는 것엔 동의했을 수 있다”면서도 “반당 종파라는 무서운 딱지를 붙이고, 보일러에 던져 넣는다는 저급한 비방을 동원하고, 본인의 명예와 직결되는 여자 문제를 대담하게 거론하는 것엔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장성택이 올해 2~3월께 가택연금을 당했던 때부터 사실상 실각 상태였다는 관측도 있다. 그가 지난해 12월 장거리 로켓 발사와 올해 2월 핵실험을 반대했으며, 올해 초 평양시 건설과 경제특구 건설 과정에서 측근이 자금을 빼돌린 정황이 포착됐다. 이로 인해 장성택이 한때 가택연금을 당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장성택이 돈줄을 확보하기 위해 각종 이권사업에 무리하게 개입해 김정은의 화를 불러일으킨 것이 축출의 직접적인 배경이 됐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앞서의 대북 소식통은 “장성택이 국가재정을 행정부로 집중시켜 통일적으로 관리하려 했다”며 “유일영도체제에 도전한 것이 아니라 후견인으로서 젊은 김정은의 무모함을 제지하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성택은 지난해 7월 리영호 숙청 당시 군부의 외화벌이, 피복생산 등의 이권을 내각으로 가져왔다. 중앙당 연락소에서 담당했던 광물 수출도 올해 1월에 빼앗아 내각에 줬다. 국가보위부 세관총국의 각종 이권도 행정부로 이관했으며, 국가재정을 관리했던 인민보안부 8국의 권한도 행정부 54국에게 넘겼다. 당 행정부가 조직부를 능가하는 권력을 갖게 만들었고, 더 나아가 김일성 시절부터 김 씨 일가에게 집중된 유일 권력을 주변부로 분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경희 당비서.
앞서의 대북 소식통은 “장성택이 각종 이권을 행정부로 이관하면서 당·군·정 간부들의 원한을 샀고, 이것이 좋은 구실이 되어 김정은의 제거 작업에 힘을 실어준 형세가 됐다”고 분석했다.
북한 관련 한 연구자도 “최룡해는 장성택의 적수가 될 수 없다. 새롭게 당정에서 부각한 세력이 문제 제기를 하면서 치지 않았을까 본다”며 “권력 내부에서 노선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다. 그것은 명분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는 이권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장성택을 내친 것이 김정일의 유훈일 것이라는 유추도 가능하다. 김정일이 죽기 두 달 전 남긴 ‘10월 8일 유훈’과 북한이 이번에 장성택의 숙청 사실을 공개한 당 중앙위 정치국 확대회의 결정서 내용이 비슷하다는 것. 실제로 유훈에서 ‘종파들이 동상이몽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표현과 숙청결정서의 ‘동상이몽, 양봉음위하는 종파적 행위를 일삼았다’는 표현이 비슷하다. 유훈에서 보이는 자본주의 확산에 대한 우려는 장성택과 그 일파가 자본주의에 젖어 경제문제에 대한 당의 결정을 방해했다고 비판한 내용과 연결된다. 특히 유훈에서는 김경희와 장성택을 함께 묶어서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김경희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거나 사망하면 장성택을 제거하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오는 17일 김정일 사망 2주기 행사에 김경희가 등장하게 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은 젊은 시절, 미남에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고 한다. 김경희와도 김일성대 정치경제학부에서 만나 연애하고 김일성의 반대를 물리친 끝에 결혼에 성공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김일성은 원래 자신의 휘하에서 함께 빨치산 활동을 한 부하의 자식 중 한 사람을 고르려 했으나 장성택을 만난 후 마음을 바꿔 결혼을 허락했다고 전해진다. 일설에 의하면, 장성택이 오랜 측근인 리용수와 장수길 처형 당시 김정은을 만나 “죽이지 말아 달라. 차라리 재판을 받게 하고 감옥으로 보내라. 나도 다 내려놓고 처분을 따르겠다”며 완전히 항복기를 들었다고 한다. 자기 사람을 챙기는 의리를 보인 것이다.
그는 노회한 섭정이자 충실한 조력자이기도 했다. 김정은은 외국 생활을 하면서 본 것은 다 흉내 내려고 드는 미숙함을 보였다. 그가 김일성종합대학거리를 조성하려 하자 장성택이 가난한 북한 사정과 전력 사정을 고려해 반대했다고 한다. 북한을 둘러싼 대외적 환경을 인식해 핵실험을 반대하고, 북한내부의 민심을 고려해 경제개방에 적극적이었다.
한 탈북자는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동시에 충성해 봐야 소용없다는 인식을 심어줬다”며 “마음 속 깊은 곳에선 저항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김정은의 실책”이라고 꼬집었다.
앞서의 대북전문가는 “대외적 환경도 달라지고 대내적으로도 공포보다는 분노가 더 크다”며 그런데도 아버지 대와 마찬가지로 명분 없는 숙청을 단행함으로써, 이대로 따라가면 다 같이 망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심어줬다. 무엇보다 엘리트 그룹의 신뢰를 상실했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오는 17일 ‘김정일 사망 2주기’ 행사가 관건으로 보인다. 각종 의혹과 억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 행사에 누가 참석하고 빠지는지에 따라 이번 사건을 둘러싼 각종 의문이 풀리는 실마리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신상미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