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차에 가정부까지 ‘나랏돈을 쌈짓돈처럼’
검찰과 경찰은 중복수사를 방지하기 위해 수십 차례의 공조회의를 진행했다고 한다. 비리 정보취득, 입건 및 구속기준, 발표 시기까지 조율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 경찰 인력을 고려해 고액 보조금 사업자 수사는 검찰이 집중하고, 대규모 수사 인력을 필요로 하는 소액 부정수급자 위주의 수사는 경찰이 집중하는 것으로 역할을 나눴다”라고 밝혔다. 검경의 합동 수사 결과 국가 보조금 비리 사범은 총 3349명으로 나타났다. 수사가 6개월 남짓 진행된 점을 감안하면 수사기간을 확대했을 경우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국가보조금 비리 사례가 드러났을 것이라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비리 유형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가장 많은 이들이 적발된 비리는 ‘국가보조금 횡령’(1958명)이다. 그 다음으로는 ‘국가보조금 편취’(931명)로 나타났다. 횡령은 일단 받은 보조금을 지정된 용도가 아닌 곳으로 사용하는 것을 뜻하고, 편취는 자격을 허위로 꾸며 거짓으로 보조금을 타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이러한 횡령과 편취는 ‘보건, 복지 분야’에서 판을 친다고 한다. 아동,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나오는 보조금을 그만큼 빼돌리기가 쉽다는 것. 대검 반부패부 이동열 선임연구관은 “최근 예산이 몰려있는 데다 분야가 많은 복지 쪽에 수사가 집중됐다”고 밝혔다. 보건복지 분야에서 비리로 적발된 부정수급액만 405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보건, 복지 분야에서 가장 빈번하게 쓰이는 수법은 바로 ‘허위 신고’다. 어린이집의 경우 보육교사나 원생을 허위등재해서 특별활동비 등 보조금을 타내는 게 가장 일반적이다. 이런 식의 방식을 써서 이번에 적발된 어린이집은 총 390개로 무려 94억 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요양병원이나 장애인 복지시설도 마찬가지. 경주 소재의 한 요양병원은 전속 간호사나 조리사 등을 상근 근무자로 허위 신고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6억 4600만 원 상당의 국민건강보험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병원의 이사장과 부이사장은 즉각 검찰에 기소됐다.
무엇보다 보건, 복지 분야에서 적발된 ‘의성군 건강복지센터 조성사업’은 국가보조금 비리의 ‘종합 선물 세트’라고 불리며 검찰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2010년 9월부터 추진된 의성군 건강복지센터 조성사업은 경북 의성군에서 고령 친화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대규모 보조금 사업이다. 종합복지관, 노인요양시설, 복지교육센터 등을 짓기 위해 1, 2차 사업을 통틀어 160억 원이 넘는 혈세가 투입되기도 했다.
대구 소재 A 건설사 대표이사였던 조 아무개 씨(44)는 사업 소식을 듣고는 “큰 사업이라 돈이 될 것”이라고 직감하고 보조금을 지원 받는 ‘보조사업자’가 되기 위해 물밑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이에 사업담당자인 의성군 공무원 소 아무개 씨(47)에게 접근해 유흥주점으로 데리고 가 수십 회에 걸쳐 접대를 했다. 소 씨의 마음을 얻은 조 씨는 보조사업자 자격 요건에 미달됐지만 결국 보조사업자로 선정이 된다. 조 씨는 그 대가로 소 씨에게 3500만 원에 달하는 뇌물을 추가로 건네기도 했다.
보조금을 지원받기 시작한 조 씨는 본격적인 횡령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직원과 공모해 설계용역비를 부풀리고 공사 진척 상황을 허위로 작성해 보조금을 부풀려서 타내는 방법을 썼다. 보조금이 지급되는 회사 법인자금도 조 씨의 사금고로 사용됐다. 이렇게 조 씨가 빼돌린 보조금만 ‘52억 원’에 달했다.
조 씨는 이 돈을 자신의 호화 생활에 흥청망청 사용했다. 전국 각지에 땅을 구입하는 한편, 강남 타워팰리스에서 월세를 주고 살며 고급 외제차인 포르쉐를 리스해 타고 다녔다. 생활비로만 4억 원가량을 쓰고 집에 가사도우미까지 둔 조 씨를 이웃 주민들은 “잘나가는 억대 자산가” 정도로 여겼다고 한다. 후에 비리 사실이 적발된 조 씨는 공무원 소 씨와 함께 사기횡령과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 기소됐다.
위와 같은 사례를 비춰볼 때 국가보조금 비리는 ‘공무원과의 검은 커넥션’이 시발점이라는 지적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11월 포항에서 발생한 ‘흑염소특화단지조성사업’ 비리 역시 포항시 공무원이 보조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허위공문서를 작성해 특정 사업자를 선정하고 보조금을 4억 원가량을 밀어준 점이 포착돼 경찰이 수사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더불어 선정된 사업자가 포항시의회 전 의장 박 아무개 씨(61)라는 점과 이를 선정한 공무원이 간부급 공무원이라는 점에서 보조사업자-공무원 간 ‘검은 커넥션’에 대한 의혹은 한층 더 짙어지고 있다.
이밖에도 고용 분야, 연구개발 분야, 문화체육관광 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보조금 비리는 대대적으로 적발됐다. 고용 분야의 경우 허위 수료증을 발급해 ‘직업훈련장려금’을 타내는 수법이 대표적이다. 특히 급조한 직업훈련원에서 브로커들을 통해 북한이탈주민을 대대적으로 모집한 뒤 가짜 수료증을 주고 정부로부터 직업훈련장려금을 타내는 수법이 흔히 쓰이고 있다. 연구개발 분야는 대학의 ‘재학생 충원율’을 조작하여 교과부에서 선정하는 ‘교육역량 우수대학’으로 선정돼 보조금을 타내는 수법이 일반적이다. 부산 소재 한 대학은 이러한 수법을 이용해 20억 5000만 원을 부정으로 수급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국가보조금 비리를 근절할 방법을 사실상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인력과 시간의 부족으로 그럴싸하게 꾸며놓은 서류만 검토할 뿐, 실사를 나가 검증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일선 공무원들 사이에서 팽배한 상황이다.
이동열 선임연구관은 “감사원과 복지부, 국세청, 금감원 등 유관기관과 긴밀한 협조 체제를 구축할 것”이라며 “보조금 범죄로 얻은 수익은 끝까지 추적해 철저히 환수할 계획”이라고 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