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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영국 교수가 결백을 주장하며 남긴 유서. | ||
사망자는 정신문화연구원 정치학과 부교수 정영국씨(45). 거실 계단 난간에 전깃줄로 목을 매고 자살한 정씨의 죽음은 동료와 지인들에게 충격과 슬픔을 안겨줬다. 그리고 그의 가방 안에서 발견된 유서를 접한 유가족들은 슬픔에 겹친 분노를 삼켜야 했다.
로비 자금의 ‘배달 사고’ 누명을 쓰고 자결한 정씨의 유서에는 정치권 인사들의 이름도 거명되고 있어 관계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과연 그가 죽음으로써 항변하려 했던 진실은 무엇일까.
먼저 사건 당일 정씨의 시신을 맨 처음 발견한 이웃 주민 A씨의 말을 들어보자. 뒷집에 사는 A씨는 이날 아침 “아들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정씨 어머니의 전화 연락을 받고 정씨 집에 들어갔다.
“정 교수는 최근 아주 이상했습니다. 발단은 3월19일쯤이었던 것 같아요. 동료 교수들과 집 근처 찻집에서 차를 한잔씩 마시고 밤 11시쯤 귀가를 했지요. 그런데 그날 밤 이후로 사람이 없어진 거예요. 한 이틀 뒤쯤 나타났는데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더군요. 강의도 못 들어가고 ‘나는 이제 끝났다’ ‘말을 잘못했다’ ‘소환되면 죽는다’는 말만 되풀이하더군요.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A씨가 말한 3월19일 밤 11시께, 정씨는 자신의 집 앞에서 기다리던 검찰 수사 요원들에 의해 임의연행됐다. 연행된 곳은 서울지검 서부지청 308호. 공적자금비리의혹을 수사중인 대검 중수부 수사팀이었다.
이곳에서 정씨는 2억2천만원의 금품 수수 혐의와 사용처에 대해 추궁받았다. 문제의 2억2천만원은 1996년 전주민방선정과정에서 (주)세풍 K부회장이 당시 청와대 L수석에게 로비를 한 것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돈의 일부.
검찰은 K부회장이 당시 청와대 L수석에게 이 돈을 건네기 위해 같은 회사 O씨, Y대학 P교수 등을 거쳐 정씨에게 이 돈을 건넨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정씨는 96년 총선 당시 L수석의 비선라인 참모로 활동했다.
이때부터 정씨는 4일 동안 세 차례의 소환 조사를 받았고 48시간여 만에 이 같은 금품 수수를 시인하는 자술서에 서명을 했다. 그러나 그 뒤부터 두 차례 검찰 조사에서 정씨의 진술과 행동은 혼선을 빚었다. 이전 진술을 번복했던 것.
그는 “2억원의 사용처를 대라”는 검찰 신문에 “사실은 2억원의 실체가 없다”고 대답했다. 다시 검사가 “서명 날인은 왜 했느냐”고 묻자 정씨는 “P교수가 그렇게 하면 일단락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P교수는 검찰이 정씨에게 돈을 건넨 장본인으로 지목했던 인물.
이후 그는 “돈을 받았느냐, 안받았느냐”는 검찰측 질문에 “받았습니다”라고 말한 뒤 “어디다 썼느냐”는 질문에는 “사실은 안받았습니다”라고 답변하는 검찰측이 ‘이해하기 어려운’ 언행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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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서에 따르면 정씨는 자신이 미국에서 귀국한 날인 1월14일, 2월2일과 26일 무렵 등 세 차례에 걸쳐 P교수를 만났고 이 때 P교수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세풍의 O씨가 중간에서 십몇억원을 떼어먹고는 내가 5억원을 받은 것처럼 해 놓았다. 검찰에서 이 5억원의 행방을 대라고 다그치는데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법률 자문을 구해보니 내가 받아서 다 써버렸다고 하면 공소시효가 지난 일이니 상관이 없다고 한다. 3억원까지는 그럭저럭 맞추겠는데 나머지 2억원은 도저히 못 맞추겠다.”
그 뒤에 이어졌다는 P교수의 말은 더 놀라운 것이었다.
“마침 새로 임명된 법무부장관이 잘 아는 분이어서 자문을 구해보니 ‘5억원 자금만 확인되면 L 전 수석까지는 연결되지 않는 선에서 종결처리하기로 수사팀과 내정했다’고 얘기하더라. 그러니 혹 내가 2억원의 행방을 당신에게 넘기더라도 그렇게 알고 대처하시라.”
진술서에서 정씨는 “‘왜 상관없는 나를 끌고 가느냐’고 항변했지만 P교수가 ‘어차피 정 교수는 L 전 수석과의 최종연결고리로 조사를 피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럴 때를 대비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예의 P교수는 안기부(현 국정원) 직원 출신으로 정씨와는 지역 언론인의 소개로 만나 8~9년 전부터 절친하게 지낸 사이. 96년 4월 총선 당시 정씨는 P교수를 경북 지역의 민자당 공천자로 L 전 수석에게 천거해 낙점까지 받았지만 P교수의 집안 문제 때문에 결국 탈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의 주장대로라면 이런 P씨의 말대로 자신은 ‘거짓 자백’을 했고 그 자백에 대한 마땅한 변명을 대지 못한 채 검찰 수사가 예상했던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자 무척 당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로부터 두 달여 뒤 정씨는 자신의 집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자살 하루 전인 6월2일 밤 10시 무렵까지 정씨와 함께 있었던 그의 한 친구는 “집에 들어가서 내가 물을 엎지르니까 ‘흔적 남기지 마’라며 휴지로 깨끗이 물을 닦아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이 죽고 난 뒤 내가 오해를 받을까봐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씨의 친구는 “그는 그만큼 남을 배려하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정씨의 부인 김아무개씨는 “남편은 천주교인으로서 학자적인 양심의 결백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방법을 선택한 것”이라며 “P교수가 스스로 진실을 밝혀서 남편을 두 번 죽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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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과 주변인사들에게 남긴 유서. 위는 지난 3월 변호사 와 함께 작성한 진술서. | ||
“내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사랑하는 당신과 우리 아이들을 지켜야 함에도, 행여나 일이 잘못 풀릴까 노심초사하는 자신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있소. (중략) 당신과 아이들에게 의젓한 아빠로 남아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오.”
그러나 그로부터 한 달 뒤인 5월 29일, 정씨는 검찰로부터 “다음주 중에 소환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주변 사람들은 정씨가 검찰 조사에 대한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정씨는 검찰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심리적인 압박감을 느꼈던 또다른 이유를 내비쳤다. 정씨는 진술서에서 “오히려 내가 연행되는 도중에 걱정되었던 것은 96년 당시 내가 일부 관여했던 정치권 내의 일들이 조사 과정에서 터져나와 또 구설수에 오르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정씨는 96년 당시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의 전문위원을 지냈지만 실질적으로는 L 전 수석의 개인보좌 역할을 하면서 정치상황 분석 등을 담당했다. 또 97년 대선 당시 정씨는 이회창 후보의 TV 연설문을 써주고 강아무개 의원으로부터 2백만원을 받았는데 이 돈이 이른바 세풍사건의 자금에서 나온 것으로 밝혀져 검찰로부터 확인을 받기도 했다.
정씨는 진술서에서 이 같은 정치권과 맺은 과거의 인연 때문에 이번 사건에서도 “또다시 구설수에 오르지 않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고 토로하고 있다. 하지만 정씨가 자살로써 항변하려 했던 사건의 진상은 오히려 그의 죽음과 함께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P교수가 언급했다는 L 전 수석에 대한 ‘돈 심부름’ 부탁과 검찰 수사 과정에서의 ‘내사 종결’ 타협 등에 대해 당사자들은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 정씨가 지목한 문제의 P교수는 “정씨를 만난 것은 세 번이 아니라 2월26일 무렵 한 번뿐”이라며 “그나마 별다른 얘기 없이 헤어졌다”고 말했다. 송정호 법무부 장관측도 ‘내사 종결’주장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P교수와는 일면식도 없다”고 밝혔다.
정씨가 자살을 선택하면서까지 항변하려 했던 ‘진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의 죽음은 또 다른 수수께끼를 던져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