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로 예뻐지려다 ‘마루타’ 신세로…
[일요신문] “외모가 나를 멘붕 오게 할 때” “버스를 놓친 사람과 탄 사람의 차이, 그냥성형과 레알성형의 차이”. 서울 강남일대를 지나는 버스 측면에서 성형외과 광고를 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런 광고에는 어김없이 성형수술 후 새로운 인생을 찾은 것 같은 표정을 한 모델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 상당수는 ‘성형체험단’을 통해 성형외과 광고시장으로 유입된 모델들이다. ‘성형체험단’은 수술 전후 사진 공개와 병원 홈페이지에 후기를 작성하는 조건으로 수술비를 지원받는다. ‘수술비 전액지원’과 같은 파격적인 조건에 금전적인 여유가 없는 미성년자들까지 ‘성형체험단’에 합세하면서 경쟁률도 매년 높아지는 추세다. 하지만 수술 후 부작용이 생기거나 무분별한 초상권 침해를 당해도 ‘무료체험’이라는 명목으로 제대로 항의 한번 하지 못하는 것이 이들의 현실이기도 하다.
경기도 수원에 거주하는 강 아무개 씨(25)는 2007년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성형체험단’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됐다. 강 씨는 2년간 성형외과 인터넷 광고에 눈이 모자이크된 본인의 얼굴사진을 공개하고, 1년간 후기를 작성하는 조건으로 320만 원 상당의 코 수술 비용 전액을 지원받았다.
그러나 수술 6개월 차에 접어든 어느 날 강 씨는 후기 작성하는 것을 포기했다. 코가 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강 씨는 “병원 측에 계속 항의했지만 기다리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체험단으로 성형을 무료로 받은 상황이라 피해 보상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1년간의 실랑이 끝에 코를 재수술 하는 것으로 병원 측과 합의를 봤다”고 털어놨다.
과거 블로그와 카페를 통한 성형외과 홍보가 성행했다면 최근에는 눈으로 확인 가능한 수술 전후 사진을 공개하는 마케팅이 선호된다. 성형인구가 늘어나고 소비자들이 똑똑해지면서 천편일률적인 온라인 마케팅이 소비자들부터 외면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생겨난 것이 ‘성형체험단’. 이들은 성형수술비용을 지원 받는 대신 자신의 ‘변신 성공 스토리’나 ‘인생역전 스토리’와 같은 드라마를 보여줘야 한다. ‘성형체험단’의 가장 큰 무기는 ‘리얼리티’. 이들이 성형수술을 하고 채 아물지도 않은 수술 상처를 공개하면서까지 작성하는 후기는 그 어떤 마케팅보다 홍보효과가 크다.
마케팅 업체에서 2년간 성형외과를 담당했던 오 아무개 씨(31)는 “성형광고가 범람하고 있어 체험단이 쉽게 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100명이 지원하면 3~4명 정도가 선정될 정도로 경쟁률이 높은 편이다”라며 “딱히 기준은 없지만 ‘이미 예쁜 애들은 뽑지 않는다’라는 것은 업계 내 기정사실로 보면 된다. 병원에서도 수술의 효과가 드라마틱하게 나타날 얼굴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성형체험단은 뷰티블로그나 카페를 통해 모집과정을 거친다. 규모가 큰 대형성형외과의 경우 에이전시-마케팅회사-병원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거치지만 영세한 병원의 경우 직접 성형체험단을 모집하는 경우도 있다.
‘성형체험단’ 모집 공고 대부분은 전액 무료지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다. 이 때문에 금전적 여유가 없는 미성년자나 20대 초반이 많이 지원하는 편이다. 신 아무개 씨(여·19) 또한 금전적인 문제로 성형체험단을 통해 눈과 코를 수술한 케이스다. 신 씨는 “대부분 성형체험단은 성인을 모집하지만 에이전시를 통하면 미성년자도 프로필 등록이 가능하다”며 “성형을 원하는 사람들의 데이터를 축적하는 에이전시에 프로필과 수술을 원하는 부위를 등록해 두면 마케팅회사를 통해 연락이 온다. 2년이 지나면 사진이나 후기는 삭제하기로 했지만 영영 기록이 남아있을까 찜찜한 마음은 있다”고 털어놨다.
영화 <닥터> 중의 한 장면.
실제로 ‘성형체험단’은 부작용이나 초상권 침해 같은 문제가 발생해도 제대로 항의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또 다른 마케팅 회사에서 성형외과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김 아무개 씨는 “체험단 10명 중 2명 정도가 컴플레인을 제기한다. 그러나 무료로 진행된 수술이라 금전적인 피해 보상을 받기가 어렵다. 제대로 된 보상을 받는 체험단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소송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자신의 돈을 내고 수술하는 사람들도 의료분쟁에서 이기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체험단의 경우 대부분 재수술을 받거나 다른 서비스를 받는 수준에서 합의를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무분별한 사진 사용과 초상권 침해로 곤욕을 치르는 모델도 있다. 양악을 포함한 얼굴전반과 지방흡입까지 2000만 원의 견적을 받은 박 아무개 씨(여·30대)는 비싼 수술비로 고민을 하던 중 병원 측으로부터 사진을 공개하는 조건으로 1000만 원을 할인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박 씨는 고민 끝에 1년간 자신의 사진을 공개하는 조건으로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박 씨의 사진은 병원의 카카오스토리에 게시되는 것은 물론 수술하지 않은 코까지 수술을 했다며 포토샵을 한 사진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박 씨는 이에 병원에 항의했지만 병원은 담당자가 바뀌는 과정에서 생긴 실수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에 박 씨는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이에 대해 권용석 변호사는 “허위 부분에 대해서는 병원 측의 잘못이 있다. 계약서의 내용과 코 부분에 대한 부분을 내용증명으로 보내서 사진 게재를 중단해 줄 것과 이를 계속할 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방법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형수술을 원하는 환자의 의지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시스템 또한 ‘성형체험단 = 마루타’라는 극단적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수술 전 꼼꼼히 비교하고 따져 봐야 할 병원과 의사를 선택할 권리부터 수술 후 후기작성까지 체험단의 의지는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앞서의 성형외과 마케팅을 담당하는 오 씨는 “성형체험단의 경우 수술을 원하는 당사자가 의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100% 병원의 의지로 환자가 선택이 된다”며 “체험단이 계약조건으로 이행하는 후기도 100% 연출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마케팅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성형을 한 뒤 인생이 달라졌어요’ ‘예뻐진 얼굴 때문에 행복해요’와 같은 대본과 후기작성 포맷이 마련되어있다”고 고백했다. 강남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하고 있는 한 원장은 “체험단의 경우 병원에서 의례적으로 받는 ‘수술 동의서’ 외에도 마케팅회사와 별도의 계약을 체결한다. 자신의 초상권 범위에 따라 지원범위와 계약조건이 달라지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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