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레인저스 입단식에 참석한 추신수와 가족들. 아내 하원미 씨와 첫째 무빈, 둘째 건우 군이 함께 참석했다. 아직 어린 막내딸 소희 양은 함께하지 못했다. 사진=홍순국 메이저리그 전문 기자
―먼저 입단식을 마친 소감이 어떤가?
▲이제야 실감이 난다. 내가 텍사스 레인저스 선수가 됐다는 사실이. 솔직히 오늘 전까지만 해도 실감이 안 났다. 꿈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직접 유니폼을 입어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더라. 입단식은 내 야구인생에서 처음 경험한 일이다.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할 때도 입단식은 없었다. 이런 성대한 입단식을 경험했다는 게 정말 기쁘다. 더욱이 사랑하는 가족들이 동행해줘서 내가 텍사스 선수가 되는 과정을 지켜봐줬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준 듯 해 만족한다.
―미국 시간으로 지난 화요일에 메디컬테스트를 받았는데 공식적인 결과가 입단식 전날에 나왔다. 텍사스 레인저스 홈페이지에 추신수가 메디컬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뜨면서 비로소 텍사스 레인저스맨 추신수가 된 게 아닌가.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몸 검사에 대한 결과를 통보받기 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불안했다. FA 선수가 몸 검사에서 이상 징후가 나타나 통과하지 못한 일도 있고 해서 혹시 나도? 설마 아니겠지 하는 심정으로 연락을 기다렸던 것 같다(올 시즌 FA시장에 나온 마무리 투수 그랜트 발포어가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2년 1500만 달러(약 159억 원)에 합의하고도 피지컬 테스트에서 불합격돼 입단이 취소되었다). 마침내 어제 텍사스에 도착해서 기다렸던 결과를 전달받았다. 만약 이상한 결과가 나왔더라면 나와 가족들은 텍사스에 왔다가 입단식도 치르지 못하고 그냥 돌아갔을 지도 모른다. 그 연락을 받고 나니까 모든 걱정과 불안감이 일시에 사라지더라.
―나도 그랬다.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아 은근히 걱정했던 게 사실이다. 늦게 발표된 것에 비해 오늘 입단식은 성황리에 열린 것 같다. 무엇보다 론 워싱턴 감독이 추신수 선수 옆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까 비로소 실감이 나더라. 론 워싱턴 감독을 소속팀 선수로는 오늘 만났는데, 어떤 얘기를 해주던가.
▲입단식에서 말씀 하셨듯이 나를 많이 필요로 했고, 어떤 타선, 어떤 포지션에도 다 기용할 수 있는 선수라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된다고 하시더라.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외야수의 모든 포지션을 경험했기 때문에 어디에 서든 상관이 없다.
―언론에서는 리드오프로 좌익수를 보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우익수, 중견수보다는 좌익수를 맡은 기회가 많지 않았던 건 분명하다. 그러나 수비 중에서 가장 어렵다고 하는 중견수를 한 시즌 동안 경험하지 않았나. 신시내티에서 중견수를 맡은 건 나로서 가장 큰 변화와 도전이었고 나름 성공적으로 임무를 소화했다고 본다. 따라서 좌익수든 우익수든 어떤 포지션을 맡아도 충분히 잘해낼 자신이 있다. 지금까지 내가 어떤 타순, 어떤 보직이 좋다고 먼저 말한 걸 본 적이 있나. 난 맡겨준 임무에 충실할 뿐이다.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을 마무리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
“진짜 했나? 하는 생각에 기쁨과 설렘이 공존했다. 한편으로는 오랜 기다림 끝의 계약이라 약간 허무해지기도 하더라. 에이전트의 전화를 받은 뒤 잠자고 있던 아내를 깨워서 와인을 마시며 서로 축하를 주고받았다. 마이너리그에서부터 메이저리그에 오게 된 과정을 끄집어내면서 추억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는데 아내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 ‘무빈아빠, 난 정말 믿어지지 않아. 우리가 이런 경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이다.
―2007년인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가족들이 고생하고 있을 때 한국으로의 복귀를 떠올리지 않았나. 그때 아내 하원미 씨의 만류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고 있을 텐데, 그런 점에선 진심으로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해야 할 것 같다.
▲(대답을 하려던 추신수가 뒷좌석에 앉아 있던 하원미 씨를 쳐다보며 입을 연다) 그래서 내가 최선을 다해 사랑하지 않나(웃음). 운동선수가 성공을 향해 가는데 가족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만약 아내가 마이너리그의 힘든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걸 원했다면 난 그때 미국 생활을 정리했을 지도 모른다. 미래가 보이지 않고 아이의 육아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생하는 부분들이 겹치면서 가장인 나로선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을 위해 한국행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나랑 같이 야구했던 친구들이 수억 원대의 연봉을 받는다는 소식들이 내 마음을 치사하게 만들고 내 목표에 대한 열정을 약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아내가 나보다 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자신은 얼마든지 고생해도 괜찮으니 내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며 나를 격려해줬다. 나는 당시의 생활이 고생스러움으로 기억되는데, 아내는 지금도 종종 마이너리그 때를 떠올리며 고생보다는 소소한 행복이 넘쳐나서 더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고 말하더라. 비록 돈은 없었지만, 나와 아내, 그리고 아기였던 무빈이를 보며 열심히 사랑하고 채워가려 했던 부분들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추신수가 27일(현지시간) 미국 알링턴의 레인저스 볼파크에서 열린 텍사스 레인저스 공식 입단식에 참석해 존 대니얼스 단장(왼쪽)과 론 워싱턴 감독(오른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새 유니폼과 모자를 착용해 보고 있다. 사진=홍순국 메이저리그 전문 기자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FA 계약은 추신수 야구인생에 어떤 의미로 남게 될 것 같나.
▲내 야구인생의 세 번째 챕터가 시작되는 걸 의미한다. 마이너리그에서의 야구가 첫 번째 챕터였다면 클리블랜드와 신시내티에서 보낸 시간들이 두 번째 챕터이다. 그리고 텍사스에서 세 번째가 열리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니까 조금 긴장되고 떨리기도 한다.
―왜 텍사스였나?
▲우리 가족 모두가 텍사스를 원했다. 계약 조건만 본 게 아니다. 가족이 얼마나 편하게 살 수 있는지, 또 이길 수 있는 팀인지,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할 수 있는 힘이 있는 팀인지, 도시의 환경 등을 고려했을 때 텍사스가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텍사스로의 이적이 발표되기 전 뉴욕 양키스의 1억4000만 달러 제안을 거절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됐었다.
▲이 얘기는 꼭 내 입으로 설명하고 싶었다. 기사를 보니까 온갖 추측들이 난무하고, 실명 없이 ‘관계자’라는 익명으로 나온 기사들이 대부분이었다. 메이저리그를 취재하는 기자들도, 또 미국에서 나온 기사를 옮기는 한국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뉴욕 양키스가 나한테 그런 제안을 한 건 사실이지만, 우린 그 팀에게 ‘예스’냐 ‘노우냐 할 시간조차 없었다. 보통 오퍼를 받으면 그 제안을 갖고 심사숙고한 다음에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면 거절할 것이냐를 결정한다. 하지만 뉴욕 양키스는 우리에게 그 제안을 한 다음에 바로 다음날 카를로스 벨트란과의 계약을 발표했다.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는 물론 나도 황당했을 정도이다. 즉 제안만 받았을 뿐, 우리가 어떤 대응을 하기도 전에 그 제안은 허공으로 사라진 것이다. 내가 거절했다는 기사는 잘못된 정보이다. 그리고 언론에서는 나를 굉장히 머리 좋은 사람으로 만들더라. 텍사스와 계약을 하며 세금을 고려해서 계산기를 두드리며 결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린 텍사스를 원했고, 원했던 팀에서 제안이 들어왔고 서로 절충안을 만들기 위해 시간을 갖고 협상에 임했을 뿐이다. 텍사스를 선택한 것이 주세 때문이란 건 고려 대상에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세금을 내지 않아서 텍사스를 택한 게 아니다.
―지난 시즌 신시내티 레즈와 계약하기 전 텍사스 레인저스와 트레이드 될 뻔한 일이 있었다. 만약 그때 텍사스로 옮겼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가 있었을까?
▲그때 왔더라면 장기계약을 맺지 않았을까 싶다, 한 살 어린 나이라 지금보다는 좀 더 쉽게 계약을 맺게 되지 않았을까? 분명 장단점이 있었을 것이다.
―메이저리그 FA 선수들 중 거액의 몸값을 받는 선수들이 계약하는 걸 지켜보며 마지막까지 기다려야 했다. 어떤 마음이었나.
▲초조했다. 잘 될 거라고,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머리카락이 다 빠지겠나. 탈모병원에 다녔을 정도로 증상이 심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모든 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계약이 잘못된다고 해도, 계약 과정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이려 했다.
―FA를 앞두고 이 정도의 결과를 예상했었나.
▲이 정도는 예상 못했다. 그저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게 목표였고, 뛰다 보니까 이만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또 이만큼 하니까 좋은 계약을 맺은 것 같고…. 돌이켜보면 13년의 시간이 굉장히 빠르게 흘러간 것 같다.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는 말이 딱 맞을 것이다. 마치 내가 내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제 또 다른 시작이다. 또 다른 도전이고. 그래서 내가 도전을 즐기는 지도 모른다.
―항간에서는 장기 계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메이저리그에선 장기계약 이후 성적이 좋지 못했던 선수들이 많았다.
▲벌써부터 그런 걱정은 안하고 싶다. 하지만 FA 계약 후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 선수들의 전철은 밟고 싶지 않다. 부상만 당하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앞으로도 잘해낼 자신이 있다. 더욱이 지금까진 야구를 즐기고 싶어도 즐기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부턴 내 자신을 너무 괴롭히고 스트레스 주면서 살고 싶지 않다. 좋은 팀에서 좋은 선수들과 말로만이 아닌 생각도 즐기면서 야구를 했으면 한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존 대니얼스 단장에 대한 관심이 높다. 77년생 젊은 나이에 야구단 단장으로 일한다는 게 이채롭다.
▲첫 미팅 때의 느낌이 뭐랄까? 굉장히 똑똑하면서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구에 대한 열정이 뛰어났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크게 작용했다. 가슴이 뜨거운 사람임을 느꼈기 때문에 유쾌한 분위기에서 미팅이 진행됐다. 더욱이 준비해온 선물들이 정말 대박이었다. 한국의 홍삼을 어떻게 구했는지…. 아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보면서 그가 진심으로 나를 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내도 그 선물을 받고 마음이 더 쏠렸다. 웬만하면 빨리 계약하라면서(웃음).
이제 애리조나 생활을 정리하고 텍사스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구해야 하는 추신수와 가족들. 사진=홍순국 메이저리그 전문기자
―추신수에게 1억 3000만 달러란?
▲나의 가치? 야구선수인 추신수를 인정해준 숫자? 내 야구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긴, 13년 동안의 내가 그 숫자에 있는 듯 하지만,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라는 메시지라고도 본다.
―어느 선수들보다 다르빗슈 유와 상대팀이 아닌 한 팀에서 뛰게 된 부분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정말 그렇다. 나도 그 선수랑 같은 팀에서 뛰게 돼 기대가 더욱 커진다. 설렘도 있다.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서로 좋은 시너지 효과를 냈으면 좋겠다. 동료로서도 친하게 지내고 싶다. 분명 좋은 팀메이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밖에서 본 텍사스는 어떤 팀인가.
▲새로 들어온 프린스 필더를 포함해 신시내티 만큼 좋은 타선을 이루고 있고 마운드도 막강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팀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부담 없이 팀과 함께 보폭을 맞춰갈 수 있어 좋고, 성적에 대한 압박 대신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으리란 기대를 높이며 재미있는 야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2년 전 옆구리 통증으로 시즌 아웃이 됐던 곳이 바로 알링턴 볼파크였다. 정말 사람 인생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것 같다.
―텍사스와의 계약이 알려진 후 가장 먼저 축하의 메시지를 전한 사람이 누구인가.
▲신시내티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제이 브루스였다. 제이 브루스가 축하 문자를 보냈는데, 그 내용이 감동이었다. ‘추, 이번 계약은 네가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이고, 네가 해왔던 성적에 대한 축하의 선물이다’라고. 정말 좋은 친구 아닌가. 이건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니다. 내가 이런 계약을 할 수 있는 데는 옆에서 도와준 선수들도 있고, 감독, 코치님들도 존재하고, 나를 클리블랜드와 신시내티로 이끌어준 단장님들도 계신다. 지금은 비록 다른 팀이지만, 난 클리블랜드, 신시내티가 앞으로도 계속 잘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계약하는 순간, 가장 먼저 누가 생각이 났나.
▲부산에 계시는 부모님이다. 날 야구선수로 만들어주셨고, 강인한 체력과 건강한 마인드를 갖고 야구할 수 있게 이끌어주신 분들이다. 항상 내가 잘 되길 바라며 기도해주시는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엄청난 돈을 벌게 되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자꾸 돈 얘기가 거론되는 상황이 말이다.
▲부담스럽다. 벌써부터 하루에 얼마를 버느니, 그 돈으로 차를 몇 대 살 수 있느니 등등 돈과 관련된 다양한 얘기들이 쏟아지더라. 나를 ‘추신수’가 아닌 ‘돈신수’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냥 나는 추신수이다. 미국의 유명한 선수들이 천문학적인 돈을 벌면서 안 좋은 길로 빠지는 경우를 봐왔다. 앞으로는 버는 것보다 그 돈을 어떻게 관리하고 쓰느냐가 더 중요할 것 같다. 어려운 사람들도 돌아보고, 좋은 곳에 기부도 하고, 나의 꿈인 야구장 건립을 추진하면서 계획적인 인생 설계를 그려보고 싶다. 내가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선 가족들, 지인들이 도와줘야 가능하다. 난 아직 갈 길이 멀고, 올해보다는 내년에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에 대해선 찬반양론이 분분하다. 협상의 귀재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구단들한테는 ‘악마의 존재’로 평가되고, 선수들과 그 끝이 좋지 않다는 얘기도 있다.
▲만약 보라스가 돈만 밝히는 에이전트였다면 난 아마 텍사스가 아닌 다른 팀으로 갔을 것이다. 나를 원했던 팀 중에는 양키스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팀이 있었다. 돈만 중요시하는 에이전트라면 내가 그 팀으로 가길 강하게 압박했겠지만, 보라스는 그 모든 걸 나와 상의했고, 최종 결정은 내 몫으로 남겼다. 내가 결정한 부분에는 일절 토를 달지 않았다. 보라스와 일을 하면 할수록 이 사람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는 걸 느낀다. 선수의 가치를 높이면서도 선수의 자존감을 지키는 부분이 탁월하다.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다 같을 수 없는 게 아닌가. 내가 경험한 보라스는 좋지 않은 소문의 보라스와는 다른 면이 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