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깬 불구속에 뒷말 무성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지난해 12월 18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 청사에 들어서는 모습. 법원은 조 회장의 병세가 위중한 것을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구윤성 기자
검찰은 수사 착수 10일여 만인 지난해 10월 11일 조 회장 자택과 효성그룹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 관계자들은 3개월여에 걸친 수사에서 드러난 조 회장의 죄질이 “상당히 불량하다”고 입을 모은다. 조 회장은 5000억 원대 분식회계를 통해 법인세 1237억 원을 포탈하고 500억 원을 위법하게 배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차명 주식거래를 통해 양도세 268억 원을 포탈하고 해외 법인 자금 690억 원을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로 빼돌린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이 기소한 조 회장의 범죄 액수만 7000억 원대에 달한다.
조현준 사장의 경우 2006~2011년 조 회장으로부터 차명계좌에 남아 있던 157억 원을 해외에 개설한 차명계좌로 증여받아 미국 현지 부동산을 구입하는 등 70억 원의 증여세를 탈루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에 불구속 기소된 효성의 한 임원은 검찰 수사 직전 효성그룹 주요 임직원 사무실과 조 회장 일가의 주거지에 설치돼 있는 170여 대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파기·은닉한 혐의도 받고 있다.
조 회장 소환 조사를 통해 혐의 입증을 자신한 검찰은 지난해 12월 13일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법원은 “고령, 기왕의 병세(담낭암), 지금의 병세(심장발작성 심장세동), 사회적 유대관계, 본건 범행의 동기 및 경위, 포탈세액 전액 납부 등에 비춰 구속 상당성 필요성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특히 법원은 조 회장의 현재 병세가 위중해 수감생활을 감내하기 힘들 것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 회장에 대한 영장이 기각된 후 서초동 주변에선 검찰이 재신청을 할지에 관심이 쏠렸다. 대법원 양형기준을 보면 200억 원이 넘는 조세포탈 범죄의 기본형은 5~9년, 300억 이상의 횡령·배임 범죄는 5~8년으로 모두 중죄에 해당된다. 검찰은 지난해 7월 탈세 및 횡령 혐의 등으로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구속기소한 바 있다. 당시 이 회장 조세포탈 액수는 546억 원, 횡령·배임 규모는 1500억 원대였다.
이재현 회장 사례와 비교했을 때 검찰이 조 회장에 대한 영장을 다시 청구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지만 예상을 깨고 불구속 상태를 유지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우리는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조 회장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영장을 청구했던 것이다. 법원은 그 부분에 있어서 지병이 위중하고 고령이다 이런 점을 많이 판단한 것 같다”면서 “검찰 입장에선 법원 판단을 잘못된 것이라고 하기도 어렵지 않느냐”라고 되물었다. 검찰은 재청구시 영장발부 가능성, 법원 판단에 대한 존중, 조 회장의 병세 등을 면밀히 따져본 결과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하는 것은 실익이 없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검찰 측의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법조계에선 조 회장을 봐주고 있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실제로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는 이번 수사 과정에서 부적절한 압력이 있었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조 회장 죄질을 감안하면 (불구속 기소는) 말이 안 된다”면서 “설령 영장이 다시 기각되더라도 검찰로서는 괜한 오해를 살 필요 없이 재청구를 할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 비슷한 범죄가 발생하면 조 회장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야권은 검찰의 효성 수사 결과 발표 후 불거진 석연치 않은 점들에 대해 확인 작업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엔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이 검찰 수뇌부에 조 회장 선처를 청탁했다는 의혹도 포함돼 있다. 또 조 회장과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는 사정당국의 한 고위 인사의 비호설도 나오고 있다. 해당 인사는 검찰 수사에도 관여할 수 있는 직책이며 실제로 조 회장 수사에 상당한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공교롭게도 앞서 언급한 새누리당 의원과 사정당국 고위 인사는 모두 PK(부산·경남) 출신으로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조 회장과 동향이다. 그동안 검찰 안팎에서 제기됐던 PK 라인의 조 회장 구명설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조 회장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봐주기 우려가 나왔던 게 사실”이라며 “수사 과정과 막후에서 있었던 일들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외압이 수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조 회장과 김기춘 실장의 ‘각별한’ 인연을 거론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조 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시절이던 2009년 12월 박정희기념관 설립을 위해 대기업과 금융기관 등 회원사에 협조공문을 보낸 바 있다. 기념관 설립에 부족한 400억 원가량의 돈을 전경련이 모금해 후원해주자는 내용이었다. 이를 두고 당시 몇몇 회원사들은 “전경련이 이런 사업까지 해야 하느냐”, “조 회장이 차기 대권 주자인 박근혜 의원에게 잘 보이려는 것 같다” 등과 같은 불만을 쏟아냈었다. 이처럼 전경련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은 박정희기념관의 초대 이사장은 ‘부통령’으로 불리는 현 정권 최고 실세 김기춘 비서실장이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