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그놈의 ‘장친사’… “장모님, 제발 그만 쫌!”
진 씨는 “장모님이 ‘S 전자나 L 전자로 이직할 생각이 없느냐’며 물어볼 때마다 내가 잘못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장모님 말만 들으면 장모님 친구 사위들은 죄다 대기업 IT회사에 다니는 것 같다”며 “얼마 전 직장동료들과 모여 명절 이야기를 하는데 다들 처가에 어떤 선물을 할지 고민하고 있더라. 재밌는 것은 자기 부모님 선물 걱정하는 동료는 한 명도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처월드’의 위세는 예비신랑에게도 예외 없다. 개인사업을 하는 박 아무개 씨(37)는 최근 결혼승낙을 받기 위해 장인어른 앞에서 ‘사업계획서’와 ‘인생계획서’에 관한 PPT 발표까지 해야 했다. 고위공무원이었던 장인어른 눈에는 자그마한 개인 사업을 하는 박 씨가 성에 차지 않았던 것. 결국 박 씨는 PPT발표 이후 어렵게 결혼승낙을 받았지만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식은땀이 흐른다.
진 씨와 박 씨의 경우처럼 사위와 처가 사이에 마찰이 생기는 지점은 사위의 직업이나 경제력, 그리고 양육문제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다른 사위와 비교하는 일까지 잦아지면 처가와의 갈등은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다. 심리 상담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호선 서울벤처대학교 교수는 요즘 부쩍 ‘처월드’와의 갈등으로 찾아오는 부부를 상담하는 일이 늘었다. 이호선 교수는 “요즘 부모님들은 아들만큼 딸의 교육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재원으로 키워놓은 딸에게 부모의 개입이 증가하는 것”이라며 “핵가족 시대에, 요즘 일을 하는 딸들은 양육이나 가사를 친정 부모에게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딸들이 결혼을 하고 나서도 부모로부터 심리적 탯줄을 끊지 못하면서 ‘처월드’는 딸의 삶은 물론 사위의 삶에까지 개입을 하게 된다. 사위의 출퇴근 시간은 물론 잠자리는 몇 번을 하는지까지 간섭하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 교수는 “상담사례 중에는 자신에게 오는 장모의 비난이 자신을 넘어 자녀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 모멸감을 느끼는 사위도 있었다. 장모는 아이들에게도 ‘네 엄마는 공부도 잘하고 그랬는데 너는 아빠를 닮았나 보구나’ 같은 말을 지속적으로 해왔던 것”이라며 “아이들의 경우 이러한 말을 들었을 때 매우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가정 전체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가족 앞에서 가장에게 모멸감을 주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지적했다.
KBS 인기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의 한 장면. 처가살이를 하는 사위의 애환이 담겨 있다. 사진출처=<왕가네 식구들> 캡처
최 씨와 절친했던 백 씨는 “최 씨의 장모가 상당히 재력가였다. 최 씨의 사업이 힘들 때 조금이라도 도와주셨으면 했는데 10원짜리 하나 보태주지 않으셔서 최 씨가 많이 힘들어 했다. 최 씨의 처형까지 나서 ‘엄마 돈으로 덕 볼 생각하지 말라’고 몰아세웠다. 최 씨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처가식구들이 노골적으로 그를 무시했다”며 “장모는 친척들이 있을 때도 딸과 곧 이혼할 사람이라며 최 씨를 무시하는 말들을 많이 했다고 한다. 모임이 있을 때도 최 씨의 아내가 점점 최 씨를 함부로 대하는 모습이 보여 모임 사람들이 점점 최 씨의 아내를 멀리했다”고 털어놨다.
그 뒤 최 씨는 결국 자살을 선택하고 말았다. 최 씨의 유서를 발견했던 친구 백 씨는 “유서에는 아이들에게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말만 가득했다. 아내에게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며 “그런데 장모를 언급한 부분은 한 줄도 없었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얼마나 사무친 것이 많았으면 함께 살았던 장모를 모른 척했겠나. 최 씨의 장모가 아파트에서 이사를 나갈 때쯤 자살한 사람이 살았던 집이면 값을 제대로 못 받는다고 걱정하는 것을 보고 너무 화가 났다”고 토로했다.
처가와 사위의 ‘장서갈등’으로 이혼을 하거나 법적분쟁이 발생하는 사례도 늘어나는 추세다.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이 최근 1년간 실시한 이혼을 고민하는 부부상담 사례를 분석한 결과 장인이나 장모 등 처가식구들이 사위에게 심각한 부당대우를 해 이혼을 고심하는 남성들이 3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자들은 매일 이혼을 꿈꾼다>의 저자 이인철 변호사는 장서갈등으로 인한 이혼소송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인철 변호사는 “과거에는 여성이 이혼하는 것이 흠이었지만 요즘은 친정어머니가 딸의 손을 잡고 사무실을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며 “딸이 이혼한다고 해도 귀한 딸을 고생시키는 사위는 두고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아내랑 사는 것인지 장모랑 사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남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인철 변호사는 “장인이 폭행을 했거나, 모멸적인 언행을 한 경우 처가를 대상으로 위자료를 청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고부갈등이나 장서갈등이 이혼의 사유가 된 다 하더라도 최종적 책임은 부부에게 있다. 시댁이나 처가와 갈등이 발생했을 때 중간에서 잘 조정을 해야 하는 것이 부부의 역할”이라고 당부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