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학가에는 취업이 안 돼 졸업을 미루는 모라토리엄족이 늘고 있다. 대학 5년생은 보통이고 6년생도 허다하다. 이들은 학점을 높이기 위해 재수강을 하는 것은 물론 영어, 인턴, 봉사 등 스펙 쌓기에 몰두한다. 문제는 스펙을 쌓을수록 청년들의 눈높이가 높아져 취업이 어렵다는 것이다.
청년실업률이 오를수록 모라토리엄족이 늘고 이들이 늘수록 청년실업률이 다시 오르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되자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도 제때에 하지 못한다. 치열한 경쟁의 압박 속에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온갖 노력을 해도 삶의 기본조건도 갖추기 어려운 좌절을 강요당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우선 문제는 경제구조의 왜곡이다. 과거 우리 경제는 대기업 위주의 성장우선 정책을 폈다. 그 결과 고도성장을 이룬 것은 사실이나 경제력 집중으로 인해 근로자들이 설 땅을 잃고 있다. 원래 경제는 사람이 일을 하고 사람이 돈을 벌고 사람이 잘 살아야 한다. 그런데 대기업들이 외형 팽창을 위해 기계화와 자동화 투자를 서둘러 근로자들을 산업현장에서 밀어내고 있다.
고용창출능력을 가진 중소기업들은 영세 하청업체로 전락하여 대기업이 나눠주는 일감으로 명맥을 유지한다. 당연히 근로조건이 열악하고 보수가 낮아 이직률이 높다. 정부는 중소기업들의 구인난을 내세워 청년들에게 취업을 하려면 눈높이를 낮추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학 때 쌓은 스펙은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이나 지식과 너무 다르다.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구조 개편과 경제체질 개선이 불가피한 이유다.
더욱 큰 문제는 잘못된 교육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학벌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비뚤어진 교육열이다. 우리나라 교육은 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를 낳는다. 일류 대학의 인기 학과를 다니는 학생들만 승리자로 인정받는다. 나머지는 모두 고개를 떨어뜨리는 패배자가 된다. 이러한 현상은 취업 과정에서 반복된다. 청년들은 대학을 다니며 일류 직장의 인기 직업을 얻기 위해 온갖 스펙을 쌓는다. 결과는 다시 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다.
교육의 기본목표는 승리자 수를 최대화하고 패배자 수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부여하고 진로를 적성에 따라 선택하게 하여 개인의 자질과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청년들이 스스로 기업을 일으키고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물론 사회와 문화발전을 이끄는 다수의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 교육에 대한 올바른 의식과 학력 중심에서 능력 중심으로 교육을 바꾸는 제도개혁이 절실하다.
이필상 서울대 초빙교수·전 고려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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