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학교앞 도박시설 안돼”, 마사회 “고급 레저시설로 운영”
지난 7일 서울 용산구 화상경마장 입점 예정 건물 앞에서 지역 주민들이 한국마사회 규탄 집회를 열었다.
성심여중에 다니는 딸이 있는 정방 씨(여·43)는 매일 아침 용산전자상가 롯데시네마 인근 마사회 빌딩 앞에 있는 천막 농성장으로 향한다. 용산역 인근에 위치했던 용산 화상경마장이 이곳 한강로3가 신축 건물로 이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다.
마사회는 용산역 부근에 위치했던 화상경마장 시설이 낙후한 관계로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며 한강로3가 신축부지로 이전을 추진해왔다. 지난 2010년 3월에는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승인을 받았고 같은 해 6월 용산구청의 건축허가도 이루어졌다. 당시 농림축산식품부는 신축 건물이 학교보건법상 유해시설 설치금지조건인 200m 반경에 해당하지 않아 건축허가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용산구 또한 건축물에 별다른 법적 하자가 없어 허가를 내줬다.
그러나 용산 전자랜드 인근 18층 규모의 신축건물에 화상경마장이 이전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문제가 됐다. 김율옥 성심여중·여고 교장은 “신축 건물에 화상경마장이 들어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건물이 모두 완공되고 난 뒤인 지난해 4월이다. 용산구의원 2명이 학교를 찾아와 ‘저 건물이 화상 경마장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고 했다”고 밝혔다.
화상경마장 입점 예정 건물이 성심여중·여고와 215m 거리(마사회 추정 235m)에 떨어져 있다는 것도 지역여론이 악화되는 불씨가 됐다. 이는 사행시설이 학교주변에 들어설 수 없도록 규정한 법적 기준 200m에서 불과 15m 벗어난 지점이다.
마사회 측은 새로 들어서는 화상경마장 용산지사가 상대정화구역인 200m를 충족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마사회 김삼두 장외개발팀장은 “학교 주변 50m 이내에는 사행성 영업시설이 생길 수 없지만 50~200m내에서도 학교환경위생심의결과에 따라 설치가 가능한 경우도 있다. 용산지사는 상대정화구역인 200m를 충족하고 있다. 그걸 가지고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며 “문제가 되고 있는 학습권 침해도 정서적 문제가 기인해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용산지사 건물 앞을 지나 통학하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 지켜봤지만 거의 보지 못했다. 무술유단자 보안요원 배치 등 보호장치도 마련했다”고 말했다.
마사회 측은 건물 주변에 G20정상회담에 사용된 고성능 CCTV를 설치하고 입장정원을 기존 2700명 규모에서 2500명으로 축소해 운영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과거 1000원이었던 입장료도 5000원 수준으로 올리고 이용료도 1만 원 이상으로 책정해 기존의 부정적인 편견을 벗어나 고급화된 레저시설로 운영하겠다는 입장이다.
용산 화상경마장 내부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그러나 용산 화상경마장 입점저지주민대책위 이원영 공동대표(45)는 마사회의 주장이 ‘면피용’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원영 공동대표는 “장학금 출연이나 무료 문화센터 운영은 부차적인 문제다. 기본적으로 화상경마장은 도박시설이다. 인근에 큰 도박시설이 들어서면 학생들이 이에 노출되는 것은 인지상정 아닌가. 고급시설로 운영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바뀌지는 않는다”며 “나 또한 자녀 2명이 인근 초등학교에 통학하고 있다. 주변의 학부모들 대부분이 화상경마장이 입점하면 이사를 할 것이라고 하고 있다. 나 또한 자녀를 전학시킬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인근 성심여중에 다니는 학생의 어머니인 정방 씨도 “경마장이 들어선 지역에 산 적이 있는 학부모가 농성천막을 찾아와 한 말이 있다. 아들이 고3 정도 되니까 주변 남학생들이 경마를 다 배웠다고 하더라. 어릴 때부터 도박환경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힌 마사회는 지난 1월 27일 화상경마장과 관련해 “개장을 연기하겠다”고 용산구 측에 알려왔다. 이에 마사회 관계자는 “현재 마권발매를 제외한 비영리사업 진행을 위해 사업허가를 받은 상태다. 지역경제 활성을 위해 화상경마장에 들어오는 구입물품이나 소비품들을 지역 내에서 구입하겠다는 MOU도 지역상인회와 체결했다”며 “현재 개장연기로 매주 30억 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 화상경마장은 산업적 측면과 경제·문화 등 복합적인 측면이 있다. 일부 역기능 현상만으로 입점을 폐지하라는 것은 무리한 조치라고 보여진다”라고 주장했다.
마사회의 자구책 마련에도 화상경마장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반발은 경마장이 위치한 지방으로도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15년 전 화상경마장이 들어선 대전 서구 월평동에 거주하는 김정동 ‘월평동 마권장외발매소 확장저지 및 외곽이전 주민대책위원회’ 간사(38)는 “현재 용산의 상황이 15년 전 월평동 상황과 똑같다. 당시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마사회 측의 주장에 주민들이 입점을 찬성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주민들이 가장 심하게 반대하고 있다”며 “화상경마장이 들어서고 유흥업소와 성인오락실이 따라 들어섰다. 기존 업무지구에 있던 사무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더니 30명씩 10개 반이 있었던 인근 학교 학급이 한 학급에 13명씩 3개 반으로 줄었다. 마사회는 공기업이다.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공기업다운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