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귀환’ 속도 조절 가능성
한화그룹 빌딩. 최준필 기자
재판부는 “피해 회복을 위해 1597억 원을 공탁한 점, 그동안 기업을 이끌며 경제 건설에 이바지한 점, 개인적 치부를 위한 전형적인 범행과 차이가 있어 참작했다”고 집행유예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점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그동안 우울증과 패혈증으로 인한 호흡곤란 증세를 호소하며 지난해 1월부터 구속집행정지 허락을 받고 서울대병원 VIP특실병동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었다. 파기환송심 공판 기간에도 병원 간이침상에 누워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재판에 출석했다. 최근 또 다시 건강이 악화됐는지 김 회장은 지난 11일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도 침대에 누워 별다른 언급이나 행동을 보이지 못했다.
김 회장이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풀려나게 되면서 한화그룹의 경영에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화그룹은 지난 2013년 4월 김 회장의 공석을 메우기 위해 김연배 한화투자증권 부회장을 위원장으로 비상경영위원회를 꾸렸다. 하지만 비상경영위원회는 그룹 재무나 신규 사업과 관련해 아무 것도 결정을 내리거나 발표하지 못했다.
현재 한화그룹은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사업의 후속 수주에 난항을 겪고 있으며, 미래 주력사업으로 구상 중인 태양광산업에도 투자 결정을 쉽사리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김 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한다면 그동안 밀려있던 신규투자나 의사결정이 원활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한화그룹은 당장 그동안 미뤄왔던 정기 임원인사를 준비할 예정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12월부터 “매년 2월 중 단행하던 정기 임원인사가 늦춰지고 있다. 아마 김 회장 선고 결과가 나와야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밝혀왔다.
그러나 경영진이나 투자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김 회장이 곧바로 한화그룹의 경영일선에 복귀할지는 불투명하다. 건강을 회복하고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김승연 회장이 계속 치료를 받아야하는 상황이라, 서울대병원에서 언제쯤 퇴원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며 “그룹 입장에서는 김 회장의 경영 공백이 길었기 때문에 하루 빨리 복귀하길 바라고 있지만, 건강을 회복하는 데는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6개월 후, 1년 후 경영 복귀 말은 많이 나오고 있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아직 검찰에서 대법원 재상고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확정 판결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 회장의 건강이나 경영 복귀에 대해 발표하긴 조심스럽다”고 말을 줄였다.
그러나 김 회장의 건강이 회복된다고 해도 빠른 시일에 경영일선에 복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김 회장이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고 바로 병원에서 퇴원하고 경영에 뛰어든다면 ‘재벌 총수가 또 법 집행을 피해나가려고 그동안 꾀병을 부린 것이다’라는 부정적인 여론이 강하게 형성될 것”이라며 “따라서 당분간의 여론 추이를 지켜보며 경영 복귀 시점을 조율할 듯하다”고 전망했다.
한편 김 회장은 집행유예 5년과 함께 30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다. 따라서 사회봉사를 행해야 하는데 당장은 건강 문제로 나서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한화그룹 관계자는 “사회봉사명령은 건강상의 이유로 연기가 가능하다고 들었다”며 “몸 상태가 좋아져 거동이 가능해지면 반드시 사회봉사 명령을 따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