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의 탈을 쓴 늑대들 어찌하리오
오른쪽은 걸그룹 미쓰에이의 수지. 왼쪽 위부터 포미닛과 무대에 난입한 팬 때문에 당황한 크레용팝의 모습. 사진제공=KBS
두 네티즌은 4년 전부터 쉬지 않고 옥택연을 상대로 성희롱을 해왔다. SNS를 통해 소통하려는 그에게 성적인 모욕감을 주는 메시지를 남기거나 언어폭력을 휘두르며 지치게 만들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고통을 겪는 아이돌이 비단 옥택연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같은 소속사에 몸담았던 걸그룹 원더걸스 멤버 소희도 SNS를 통해 1년여 간 지속적으로 음란한 내용이 담긴 멘션을 받다 못해 정식 수사를 의뢰했다. 걸그룹 미쓰에이의 수지 역시 한 포털사이트에 성적인 묘사를 한 합성 사진을 올린 네티즌을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의한법률위반죄로 형사 고소했다. 결국 지난해 7월 조 아무개 군(17)이 불구속 입건됐고, 현재까지도 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 외에도 걸그룹 나인뮤지스의 경리와 그룹 블락비의 재효가 각각 지난해 6월과 12월 자신을 성희롱한 네티즌을 고소했다. 몇몇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법의 힘을 빌리며 성희롱 근절을 위한 첫 걸음을 뗐지만 대부분의 업계 관계자는 “이제 시작일 뿐”이고 “빙산의 일각”이라 말한다.
이렇듯 스타들이 SNS를 통해 팬들과 소통을 시작하면서 SNS를 악용한 성희롱 사건이 늘고 있다. 아이돌을 향한 성희롱은 과거부터 존재했고 온라인상에서뿐만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일어난다. 스타의 집이나 회사로 오는 선물 중에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내용을 담은 편지는 물론이거니와 자신이 입던 속옷이나 벗은 몸을 찍은 사진을 담아 보내는 경우도 있다.
한 가수 매니저는 “남자 아이돌 그룹 멤버가 피 묻은 생리대를 받은 적도 있다. 때문에 선물을 전달하기 전 매니저들이 미리 검사하는 경우도 있다. ‘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스타 입장에서는 자신을 상대로 저질스러운 생각을 하는 팬들이 곁에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몇몇 극성팬들로 인해 이런 충격이 반복되면 대인기피증이 생길 지경에 이른다”고 토로했다.
아이돌 멤버들의 숙소나 사무실 주변을 맴도는 일명 ‘사생팬’ 중에도 성희롱을 일삼는 이들이 적잖다. 대부분의 사생팬은 나이 어린 여성이기 때문에 매니저들이 그들을 쫓아내는 과정에서 괜한 신체적 접촉이 발생할 수 있어 전전긍긍하곤 한다. 이들은 스타들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 음란한 내용이 담긴 메시지를 보내며 스타들을 유혹한다.
이 매니저는 “물론 스타들이 그런 팬들과 직접적 만남이나 접촉을 가질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하지만 혈기왕성한 나이인 그들이 여성팬들로부터 그런 성적 유혹을 받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스트레스로 작용한다”고 우려했다.
2PM의 옥택연이 성희롱 네티즌들을 고소한 사건을 보도한 SBS <한밤의 TV연예> 방송 화면 캡처.
콘서트장에 가면 무대 바로 아래서 고성능 카메라를 들고 연신 셔터를 누르는 남성팬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 중에는 춤을 추는 걸그룹 멤버들의 은밀한 곳에 초점을 맞추는 이들도 포함돼 있다. 무대가 낮은 경우에는 손을 뻗쳐 무대에 오른 걸그룹 멤버들의 다리 등 신체 접촉을 시도하기도 한다.
케이블채널 Mnet <비틀즈코드 시즌2>에 출연했던 걸그룹 씨스타의 멤버 소유는 “짧은 의상이 싫다”며 “춤을 출 때 불편하다. 그리고 행사를 가면 무대 밑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다”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가까이서 팬들과 만나야 하는 자리에서는 더욱 경계해야 한다. 어디서 불쾌한 손이 불쑥 튀어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가수 A 양은 “노래를 부르며 객석을 도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한 남자가 느닷없이 가슴을 잡았다. 순간 너무 화가 나서 마이크를 빼고 ‘너 죽어’라고 말한 뒤 노래를 계속했다. 가수이기에 앞서 여자로서 너무 기분이 나빴다”고 밝힌 적이 있다.
실제로 공개석상에서 불특정 다수의 팬들과 만나는 행사를 진행할 때는 경계를 늦출 수 없다. 남성팬이 가슴에 압박이 올 정도로 걸그룹 멤버들을 세게 포옹하거나 여성팬들이 다짜고짜 입을 맞추려 덤비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을 겪다 보면 스타들은 팬들의 가벼운 악수 제의조차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마음이 작아진다. 이런 소극적인 모습은 또 다른 ‘태도 논란’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
소유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있으면 여기저기서 터치한다. 팬들이 손을 내밀면 흠칫 놀랄 때가 있다. 악수가 싫어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나오는 방어자세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에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했다. 연말 열린 SBS <가요대전>에 출연한 여자 연예인들의 스타킹을 모아 찍은 사진이라 주장하는 네티즌의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사진과 글의 진위 여부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이 게시물을 접한 연예계 관계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또 다른 가요계 관계자는 “익명성 뒤에 숨어 인간 이하의 언행을 일삼는 이들이 많다. 대중에 노출된 연예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 사태 해결을 위해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