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뒷말이 가장 많은 동네 중 하나로 꼽힌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그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주지 않는 ‘관습’이 여의도 정가에 늘 자리잡고 있다.
최근 본격화되는 물갈이 파문 속에서 터져나온 여러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에 대해서도 정가 인사들의 입담은 그칠 줄 모른다. “정치개혁을 위해…”라며 불출마를 선언하는 의원들의 의도를 순수하게 받아들여주기보다는 ‘뭔가 다른 속내가 있겠지’라는 의문 부호를 붙이기 일쑤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현역 의원직이라는 기득권을 순순히 내놓는 의원들의 속내에 대한 저마다의 분석으로 국회 의원회관 복도가 조용할 날이 없을 정도다.
불출마 선언을 한 인사들 중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인물은 단연 한나라당 오세훈 의원이다. 당내 물갈이론이 60대 이상과 5·6공 세력에 맞춰져 있던 가운데 터져나온 오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이었다는 평이다.
이런 오 의원에 대해 정가의 일부 호사가들은 ‘서울시장 출마를 위한 첫 단추를 끼운 것’이라고 말한다. 최병렬 대표의 신임이 두텁고 대중적 인기가 높은 오 의원이 노쇠한 구 정치인들이 주를 이루는 불출마 선언 대열에 굳이 합류할 까닭이 없다는 시각에서 나온 발상이다.
오 의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빈자리가 된 강남을 지역구에는 이 지역에서 당선된 전력 있는 홍사덕 원내총무가 나서게 됐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오 의원이 불출마를 자처해 최 대표의 정치개혁 드라이브에 힘을 실어주고 전국구인 홍 총무의 운신의 폭도 넓혀주었다”며 “훗날을 위한 포석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오는 2006년에 지방자치단체장 임기가 끝나면 이명박 현 서울시장은 서울시장 재선보다는 대선후보로서의 활동을 펼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서울의 부유층과 서민층에 두루 인기가 좋은 오 의원이 차기 시장 후보감으로 거론될 가능성도 자연스레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정가의 한 인사는 “아직 2006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너무 섣부른 예측 아닌가”라며 오 의원의 ‘서울시장 도전설’을 ‘소설적 발상’이라 평했다. 당사자인 오 의원측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다.
박근혜 의원과 한 지역구에서 공천 경쟁을 벌였던 한나라당 손희정 의원도 지난 12일 불출마 선언 대열에 합류했다. “흐르는 역사의 물줄기에 몸을 실어 시대에 순응하는 것이 현명한 정치인의 처사라고 생각해…”라고 불출마의 변을 밝힌 것.
그러나 전국구였던 손 의원이 지난 2002년 박 의원 탈당 이후 대구 달성 지구당을 맡아 지극 정성으로 관리해온 것을 아는 주변 인사들은 ‘박근혜 의원에게 순순히 지역구를 돌려주는 것으로 끝날까’란 의구심을 갖는다. 이 같은 의문 부호에 무게를 더해주는 것이 바로 손 의원 남편인 하영태 유신섬유 회장의 출마설이다.
하 회장은 지난 98년 4월 대구 달성 지역 보궐선거에서 박 의원이 당선된 이후부터 박 의원 후원회 부회장직을 맡았던 인연이 있다. 하 회장은 원래 대구 달성 출신으로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해왔고 박 의원 당선 이전부터 정치인들에 대해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로 지역 내 신망이 두텁다고 알려진다.
박 의원 탈당 이후 아내인 손 의원의 정치적 입장을 고려해 후원회 일을 그만두게 됐던 하 회장 본인이 직접 출마를 하게 된다면 박 의원에게 손 의원 이상 가는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평이다. 이에 대해 손 의원측 지구당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이 없다”고만 밝혀 ‘불씨’를 남겨놓은 상태다.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은 불출마 선언 계획을 ‘번복’해 화제가 된 케이스다. 경남 창원을이 지역구인 이 의원은 6월 실시될 예정인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할 생각으로 애초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9일 기자회견에서 이 의원은 당초 예고했던 것과는 달리 ‘총선 불출마’ 의사를 번복했다. “창원이 흔들리면 경남권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당내 경남권 의원들의 만류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선 경남권 몇몇 의원들의 이 의원에 대한 만류 속에 ‘다른 뜻’이 숨어 있다는 얘기가 나돈다. 불출마 선언을 이미 했거나 용퇴 압력을 받는 경남권 중진 의원들이 총선을 포기하는 대신 노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바로 ‘경남도지사 출마’이기 때문에 이 의원이 도지사 후보 대열에 합류하는 걸 막았다는 시각이다.
반면 이 의원이 한때 출마를 포기하려 했던 까닭을 두고도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같은 지역구에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가 출마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란 관측도 일각에서 나돈다. 그러나 당사자인 이 의원측은 불출마 번복 사유에 대해 “선배들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였을 뿐”이라고만 밝혔다.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 부결…국민의힘, 안철수 제외 전원 퇴장
온라인 기사 ( 2024.12.07 17: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