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권투위 전·현 집행부 내홍 탓…김 선수는 생계 위해 ‘알바’ 뛰어
지난 3월 1일 IFBA 미니플라이급 세계 챔피언 김단비 선수가 3차 방어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전료를 받지 못한 사실이 <일요신문> 취재결과 확인됐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최근 3차 방어전에 성공했다. 소감이 어떤가?
“경기 결과도 좋았지만 오랜만에 시합을 한 게 너무 좋았다. 그동안 스폰서도 구해지지 않고 여러 문제들이 있어 방어전이 5번이나 미뤄졌다. 근 2년 정도는 시합을 못했고 그만큼 마음고생이 심했다. 권투를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한 게 사실이다. 작년 6월쯤. 관장님에게 전화해서 “운동 그만하고 싶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3차 방어전이 확실히 잡혔다기에 다시 마음을 잡았다.”
―상대 태국 선수가 약체였다는 말도 있는데?
“다른 경기보다는 수월했던 것 같다. 그래도 태국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킥복싱을 한 경우가 많아 맷집도 강하고, 방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경기 후 지급해야 할 대전료가 아직까지 지급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다.
“사실이다. 좀 어려운 문제다. 지금은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는 중이다. 오늘 인터뷰도 아르바이트를 하루 빼고 겨우 나온 것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부모님께 용돈을 타 쓴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왠지 받아야 하는 상황인 것 같다.”
세계챔피언 김단비 선수가 3차 방어전 이후 지급 받아야 할 대전료를 현재까지 받지 못한 사실이 <일요신문> 취재 결과 확인됐다. 대전료를 지급해야 할 한국권투위원회 내부에서 내홍이 불거졌기 때문. 김단비 선수 측 관계자는 “한국권투위원회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해 김단비 선수에게 줄 대전료 통장을 아예 막아 놨다. 선수에게 줄 것은 주고 내부 문제를 해결해야지 정말이지 답답한 일이다”라고 토로했다.
해당 내부 문제는 한국권투위원회에서 벌어진 집행부 간 내부 갈등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동안 한국권투위원회는 집행부를 둘러싸고 자격 무효 소송이 벌어지는 등 법적 공방이 가시화된 바 있다. 한국권투위원회 관계자는 “소송에서 패소해 자격을 잃은 전임 집행부의 일부가 김단비 선수의 경기 관련 서류와 대전료 관련 자료를 보유하고 전횡을 벌이는 탓에 대전료를 지불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자료를 돌려달라는 내용증명을 이미 수차례 보냈다”라고 전했다. 한국권투위원회 현 집행부는 전임 집행부 일부를 고소한 상황이다. 결국 김단비 선수의 대전료 지급은 전임 집행부와 현 집행부가 법적 소송까지 가는 지리한 공방을 이어갈 전망이다.
―여러모로 답답한 상황이겠다.
“답답하다. 대전료도 그렇고. 무엇보다 시합이 꾸준히 잡혔으면 좋겠다.”
―방어전이 미뤄질 동안 어떻게 지냈나?
“학교 다니고 수업 듣고 평범하게 지냈다. 대학교도 올해 2월에 졸업해 이제 진짜 어른이 된 것 같다. 지난해에는 홍성의 한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교실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가서 가르쳤는데 아이들 체육이나 바둑을 주로 가르쳤다.”
―복싱 실력만큼 바둑 실력도 상당하다고 들었다.
“지금은 아마 5단이다. 바둑은 6살 때부터 배웠다. 원래는 프로기사를 지망해서 연구생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복싱으로 진로를 전환한 게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살이 좀 찐 것 같아 다이어트를 하려고 동네 체육관을 갔는데 그게 복싱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됐다. 사실 살은 별로 빠지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바둑을 하다가 갑자기 복싱을 한다니까 집에서 반대하진 않았나?
“특별히 반대는 없었다. 아버지를 잘 설득했다.”
김단비 선수의 아버지는 2012년 심장 수술을 한 바 있다. 당시 김단비 선수는 아버지의 수술비를 직접 대고 직접 병 수발을 하는 등 ‘효녀 복서’로도 이름이 나있다. 아버지는 김단비 선수의 경기 일정을 직접 잡으러 나서는 등 김단비 선수의 든든한 후원자로 자리 잡았다.
―효녀 복서라는 별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효녀는 솔직히 아니다. 오히려 시합이 잘 잡히지 않아 아버지와 좀 토라진 것 같아 죄송하다. 아버지가 시합을 잡겠다고 나섰는데 시합 3일 남겨두고 계속 안 되고 하니까. 시합 전에는 체중을 다 빼놓기에 허무할 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사실 아버지 잘못이 아닌데 그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시합을 앞두고 체중을 감량할 때 어려움은 없나?
“체중을 갑자기 감량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미리 감량하는 편이라 체중 조절에 대한 스트레스는 사실 덜 한 편이다. 한 달 훈련을 잡으면 3주는 감량하고 일주일은 컨디션 조절하는 식이다. 밥도 먹을 건 다 먹고 물만 조금 줄여서 마신다. 훈련할 때는 보통 아침에 조깅 뛰고 아침 먹고 쉬었다가 점심에 조금 몸을 푸는 편이다. 저녁에는 2~3시간 정도 또 운동하고, 늦게까지는 안 하고 딱 6시면 마무리한다.”
―그래도 좋아하는 음식을 못 먹는 건 스트레스 아닌가?
“평소 빵을 좋아한다. 재작년에 제빵사 자격증까지 따 놨을 정도다. 그런데 빵을 먹으면 살이 잘 쪄서 훈련 기간 중에는 잘 먹지는 못한다. 음식은 두루두루 좋아하는데 그래도 시합을 앞두고 못 먹는 거라 괜찮다.”
―다시 바둑 얘기로 넘어가 보자, 바둑이 복싱에 도움이 된 경우가 있나.
“바둑은 앉아서 하는 것이다 보니 사실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성격이 활발해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래도 바둑은 딱 두 명이서 두지 않는가. 외로운 싸움이고 승부가 딱 갈린다는 점에서 복싱과 비슷하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바둑을 둔 언니도 나랑 같은 아마 5단이다. 언니는 지금 바둑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는데 언니가 나보다 조금 더 잘 두는 편이다. 근데 인정을 쉽게 못한다. 실력은 약한데 인정을 못하는 것이다. 그만큼 승부욕이 강하다. 관장님도 선수생활을 권유할 때 “승부사 기질이 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2006년 ‘여자복싱이 배출한 최고신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프로로 데뷔한지도 벌써 8년쯤 됐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나.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역시 2009년 세계챔피언에 오른 경기다. 상대 미국 선수(조린 블랙셔) 주먹이 너무 아팠다. 경기 할 때나 직후에는 안 아팠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온 몸이 아프더라. 그만큼 여자인데도 근육이 남자 뺨치게 좋았고 실력 자체도 너무 좋았던 것 같다. 링에 올라가서 경기할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때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좀 어리긴 했다. 나중에 관장님이 “네가 시합한 것 중에 가장 잘했다”고 칭찬해 주더라. 지금도 그때 경기를 레전드 경기로 생각하곤 한다.”
―시합 때 힘들면 무슨 생각하나?
“기독교인이긴 한데 솔직히 교회를 잘 나가진 않는다. 그래도 가끔 너무 힘들면 신을 찾는다. 엄청 맞으면 사실 머릿속에 별 생각이 없다. 무념무상이다.”
―김명곤 관장이 김단비 선수를 쭉 가르쳤다. 심지어 “김단비 선수를 복싱계의 김연아로 만들겠다”고 얘기도 했더라. 스승님에 대해 고마운 점은 없나?
“김연아까지는 솔직히 아니고(웃음). 관장님이 정말 아껴주는 건 사실이다. 가끔은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잘 해주실 때도 있다. 너무 감사할 뿐이다.”
김단비 선수는 프로기사를 꿈꿨을 만큼 바둑 실력도 상당하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경기하면서 특별히 에피소드는 없었나?
“가장 황당했던 경우가 있다. 2008년쯤 WBC 여자 미니멈급 타이틀에 도전하러 미국으로 갔는데 경기 직전에 시합장에 들어가던 중 갑자기 “자격 요건이 안 된다”며 경기가 취소된 것이다. 알고 보니 나이가 만 17세가 안되니까 자격 요건이 안 된다는 이유였다. 그것도 자격 요건 나이에서 3~4개월 정도가 부족해서 경기가 취소됐다.”
―황당했겠다. 주최 측의 실수 아닌가?
“미국 오기 전에 프로필을 다 보내고 주최 측 승낙까지 받았는데 현지에 가니까 취소된 것이다. 확실히 주최 측의 실수인데 나중에 사과도 안하더라. 미국에 호텔방에서 5박 6일 있다가 밥만 먹고 그냥 왔다.”
―김단비 선수는 키가 작아서(150cm) ‘작은 탱크’라고도 불린다. 키가 작으니까 경기할 때 장, 단점이 있을 것 같은데.
“단신이다 보니 붙어 있을 때는 오히려 유리하다. 그런데 떨어져 있으면 펀치를 사정없이 맞는다. 무조건 붙어야 한다. 키가 너무 큰 사람들 만나면 힘들긴 한데 어느 정도 차이가 나면 작은 게 오히려 나은 것 같다. 필살기는 참고로 ‘라이트훅’이다. 이걸로 많이 보냈다.”
― 3차 방어전도 끝났고 이제는 한숨을 좀 돌려도 되겠다.
“다음 방어전이 5월 달에 잡혀서 훈련에 들어가기까지 일주일 정도 휴식기간이 남았다. 일주일 기간 동안 친구들도 만나고 여행도 다닐 생각이다. 훈련 기간 전에 다니던 아르바이트도 그만둬야 할 것 같다.”
―복싱 선수 이전에 ‘여대생’ 신분 아니었나. 평소에는 뭐하고 지내나.
“학교 다닐 때는 공강도 있고 하니까 친구랑 카페가고 놀러도 가고 평범하게 보냈다. 주변에 여자친구들보나 남자친구들이 많아 장난도 많이 친다. 학교 다니면서 주변에 여자애들이 꾸미는 것을 보고 나도 좀 꾸며볼까 했는데 별로 어울리지 않아 곧 포기했다.”
―연애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대학교 때 몇 번 하긴 했는데 지금은 별 생각 없다.”
―아무래도 세계챔피언인데 주변에서 알아보지는 않나?
“지금 있는 안성이 조금 작으니까 가끔 길 가면 사람들이 알아보긴 한다. 그래서 사인도 개발했다. 친구가 개발해줬다. 포털 검색창에 김단비를 치면 예전에는 내가 나왔는데 지금은 농구선수 김단비가 나와서 좀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시합에 임하는 각오가 어떤가.
“열심히 훈련해서 후회 없는 경기를 하고 싶다. 시합이 방송되는 것을 대비해 머리도 자르고 염색도 했다. 기대해 달라.”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WBC나 WBA 통합 챔프에 도전하는 것이다. 복싱계의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