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 쇼트 ‘세계신’ 두고 피겨전문가도 ‘아리송’…자국서 열린 대회마다 최고점 챙겨
27일 아사다는 일본 사이타마 아레나에서 열린 2014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여자싱글 쇼트프로그램에 출전해 78.66점을 받았다. 이번 경기에 김연아는 출전하지 않았다.
이로써 아사다는 김연아가 자리를 비운 ‘빈집’에서 김연아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세운 쇼트 역대 최고 점수인 78.50점을 넘어서게 됐다.
그동안 기네스북에 등재된 역대 여자피겨스케이팅 쇼트, 프리 프로그램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선수는 김연아였다.
김연아는 2004년 헝가리에서 개최된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데뷔한 후 세계신기록 경신을 이어왔다. 육상의 ‘신’ 우사인 볼트가 별다른 라이벌 없이 자신의 기록을 경신해왔다면 피겨에서는 김연아가 그러했다.
김연아를 두고 ‘퀸(queen)연아’, ‘절대자’, ‘연느님’(김연아+신)이라는 애칭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일례로 김연아는 여자 피겨스케이팅에서 ‘꿈의 점수’라 불리던 총점 200점을 처음으로 돌파했다. 꿈의 점수 200점을 돌파했던 전과 후에도 피겨스케이팅 쇼트, 프리 프로그램 세계 기록을 보유했고 또 이를 경신해온 것도 김연아다. 그야말로 적수 없는 외로운 자기와의 경기를 해온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 이변이 일어났다.
누구도 예상 못했다고는 하지만, 오랜 피겨 팬이라면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그것. 아사다가 27일 자국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김연아가 보유했던 쇼트 프로그램 세계 기록을 소수점 차로 깬 것이다.
1등을 비롯한 상위 점수를 획득한 선수들만의 ‘시그니처’라 불리는 ‘3-3’ 점프도 없이 아사다는 단번에 김연아의 쇼트 세계기록을 넘어섰다.
심지어 아사다는 ‘3-2’ 점프만으로 세계기록을 거머쥐었다. 그렇다고 아사다가 2등과 4~5점 차로 경기를 전체적으로 압도한 것도 아니었다.
2위인 카롤리나 코스트너는 77점 대의 점수를 받으며 마오와 소수점 차로 자웅을 겨루고 있는 상태인 데다, 무려 4위(그레이스골드.미국)인 선수까지 70점 대를 받아가는 ‘점수 잔치’가 이뤄지고 있는 모양새다.
2006-2007년 세계선수권에서 김연아가 여자 선수로는 최초로 70점대는 돌파하기 전까지 여자 피겨스케이팅 쇼트프로그램에서 70점대는 넘을 수 없는 ‘마’의 고개였던 걸 돌이켜보면 이 또한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이를 두고 세계 피겨팬 일각에서 “선수들의 기술은 큰 변화가 없는데 김연아 이후 너도 나도 70점을 받아가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어찌됐든 아사다는 이번 세계선수권을 통해 김연아 은퇴 후 처음으로 김연아의 쇼트 세계 기록을 공식적으로는 넘어서게 됐다.
아사다의 최약점으로 평가받던 ‘스파이럴 시퀀스’가 프로그램 규정에서 제외됐고, 아사다가 자신의 장기라고 주장해왔던 ‘트리플악셀’의 기본 점수가 갑자기 올라간 이른바 ‘마오룰’이 생겼음에도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던 그가 드디어 그 빛을 보게 된 것일까.
(참고로 ‘스파이럴시퀸스’는 한때 ‘피겨퀸’으로 불리던 미국의 여성 피겨선수 미셸 콴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하며 전 세계 피겨팬들이 피겨경기 관람 시 가장 고대하던 이른바 ‘감동의 순간’으로 평가받아온 기술이다. 그러나 세계피겨피겨연맹이 ‘룰’을 개정할 당시 ‘스파이럴시퀸스’를 프로그램 구성에서 제외시키면서 ‘관객들이 지루해한다’는 미심쩍은 이유를 내놓아 피겨팬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
아사다의 쇼트 세계기록에 대해 눈여겨볼 만한 점은 또 있다.
아사다가 그동안 한해 최고 점수를 받아온 경기는 김연아에게 20여 점 차로 패배했던 2010 밴쿠버 올림픽과 심판의 부적절한 판정으로 구설수에 오른 2007-2008 세계선수권 대회를 제외하곤 전부 그의 자국인 일본에서 열린 경기였다. 우연치곤 신기하지 않은가.
2005년 아사다에게 개인 최고 점수를 준 경기는 바로 일본 도쿄에서 열린 그랑프리파이널 대회였다. 아사다는 총점 189.62 점으로 미셸 콴의 라이벌 ‘이리나 슬루츠카야’를 제치고 우승을 거머쥔다. 당시 이리나는 비공식석상에서 심판의 부적절한 판정에 지적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2006-2007년도에도 아사다는 일본에서 열린 NHK트로피 경기에서 총점 199.52 점을 받으며 역대 최고 기록을 얻게 된다.
2007-2008년에 아사다가 최고 점수를 받은 곳은 바로 세계선수권이다. 일본에서 열린 경기는 아니었지만 세계 피겨팬 일각에서는 ‘이상한’ 세계선수권으로 회자되고 있는 경기이기도 하다.
당시 아사다는 트리플악셀 점프를 실패하고 넘어진 데다 이후 30여 초 동안 연기를 펼치지 않는 아마추어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아사다는 ‘올 클린’(all clean) 경기를 한 김연아를 소수점 차이로 제치고 금메달을 거머쥐며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당시 심판진들도 아사다에게 김연아보다 높은 예술점수(PCS)를 주며 국제 피겨계에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때문에 아사다에서 그 대회는 그리 명예로운 추억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2008-2009년 시즌에 아사다는 다시금 자국에서 열린 월드팀트로피 경기에서 총점 201.87점을 받으며 자신의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한다.
2010-2011년 NHK트로피에선 3위에 그쳤지만 아사다가 행한 점프 기술에 비해선 턱 없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더블악셀-트리플토룹’ 점프에선 이른바 ‘비비기’(언더로테이션)가 있었고, ‘트리플러츠’점프엔 고질적인 ‘플러츠’(엣지 치팅)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트리플악셀’ 점프 회전 도중엔 몸의 축이 흔들렸고, ‘3-3-3’ 점프에선 두발 착지를 하기도 했다.
도약 순간 몸의 방향이 정확치 않은 ‘트리플살코’ 점프도 대표적으로 지적받아온 아사다의 고질병인데 이 경기에서도 질 좋은 ‘살코’ 점프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나마 아사다의 ‘진짜’ 장기로 불릴 수 있는 ‘트리플룹’ 점프마저 예전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이를 두고 익명을 요구한 한 피겨 전문가는 “아사다 역대 경기 중 최악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경기를 했음에도 굉장히 높은 점수를 받은 대회다”라고 말했다.
2011-2012년에 아사다가 시즌 최고 점수인 188.62점을 받은 곳은 사대륙 선수권. 매우 보기 드물게 일본에서 열린 경기는 아니었지만 그냥 지나치기엔 석연찮은 대회이기도 했다는 게 일부의 피겨 팬들의 의견이다.
세계 피겨팬 일각에서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아사다의 ‘비비기’, ‘두발 착지’가 문제가 된 것이다. 당시 심판진은 아사다의 반칙행위로 지적된 이런 부분에 대해서 그 어떤 감점도 내리지 않았다. 교과서 점프로 유명한 김연아의 ‘트리플 플립’ 점프에 미심쩍은 ‘주의’를 준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어서 더 논란을 일으켰다. 어쨌든 이 대회에서 아사다는 ‘트리플악셀’ 점프로 높은 점수를 받아 시즌 최고 점수를 기록했으나 그의 코치 ‘사토’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사다는 회전수 부족”이라는 지적을 남겼다.
같은 해 아사다에게 두 번째로 높은 시즌 최고기록(184.19점)을 만들어 준 곳은 어디일까. 그렇다. 역시 일본에서 열린 NHK트로피 대회였다.
아사다는 2012-2013년 총점 205.45 점이라는 시즌 최고기록을 앞서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열린 사대륙선수권에서 획득한다. 이쯤 되면 거의 공식이 될 수준이다.
지난 10년간을 돌이켜보면 아사다는 자국에서 열린 대회에선 유달리 좋은 점수를 받아왔다. 그러나 여자피겨스케이팅 쇼트, 프리 프로그램 세계기록 보유자는 김연아였다.
그리고 김연아가 소치올림픽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후 개최된 세계선수권. 일본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아사다는 드디어 김연아의 쇼트 점수를 소수점 차이로 넘어서게 됐다.
그렇다면 아사다가 김연아를 제치고 여왕의 자리에 한 걸음 다가간 것이라 해석할 수 있을까. 여전히 세계 피겨 전문가들 사이에서 김연아가 역대 피겨스케이팅사에서 길이 남은 여왕으로 대접받고 있다. 이유는 많다.
가장 손꼽히는 이유는 김연아만이 보유하고 있는 100년 피겨역사상 유래 없다던 ‘올 포디움’ 기록이 그것이다.
김연아는 데뷔 이후 지난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순위권에서 이탈해본 적이 없다. 앞서의 한 피겨전문가는 “제대로 된 판정을 받았다면 김연아는 올(all) 포디움이 아니라 올 포디움에 올(all) 금메달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가졌을 것이다”며 “피겨 기술을 잘 아는 전문가 입장에서 김연아의 경우 경기에서 한두 번 넘어진다고 해도 2등과 압도적인 점수 차로 승리할 수 있는 선수다. 지난 10년간 김연아는 그런 정당한 판정을 받았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또한 김연아는 ‘엣지’를 눈속임하지 않는 이른바 ‘교과서’ 같은 5종 트리플 점프를 뛰고 있는 유일의 선수이기도 하다. 국제 피겨심판들이 정석 점프가 무엇인가를 배울 때 김연아의 점프 영상을 보고 공부한다는 것도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2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해 쇼트, 프리 프로그램에서 ‘트리플러츠-트리플토’ 점프 등 고급의 기술을 선보이며 ‘올 클린’ 경기를 보여준 이도 김연아뿐이다.
자신의 개인 경기장 없이 피겨불모지에서 태어나 미국, 일본, 러시아, 이탈리아 등 이른바 피겨 선진 국가에서 그토록 갖고 싶었던 전설을 만든 김연아 선수.
아사다가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남은 프리 프로그램에서도 세계신기록을 경신한다 한들, 세계 피겨역사에서 ‘여왕’으로 기억되는 선수는 단 한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그 선수가 적어도 아사다는 아닐 것이라 확신한다.
피겨는 예술이기 전에 스포츠이고, 스포츠는 ‘치팅’(눈속임) 없는 당당한 경기에 임했을 때 빛나는 것이기에.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