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님 입맛대로 반값에 조작해 드려요”
3월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주최로 열린 선거여론조사기준제정 공청회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우리는 실제 선거 결과가 사전 여론조사와는 정반대로 나타나는 경우를 흔하게 목격한다. 게다가 심할 경우, 몇몇 후보와 진영에서는 홍보의 목적으로 조작된 여론조사를 진행하다 적발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 듣는 각종 여론조사는 과연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일요신문>은 그 속을 적나라하게 벗겨봤다.
“현재 한국의 여론조사는 과학을 빙자한 조작에 불과하다.”
한국의 여론조사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정책선거를 지향하는 시민단체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이광재 사무총장은 이렇게 답했다. 다소 극단적으로 비치지만, 그는 자신의 의견에 확신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여론조사는 전문적인 계량학이다. 하지만 한국의 여론조사 전문가라고 일컬어지는 이들 가운데 이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이들은 거의 없다. 단지 논평만 할 줄 안다면 전문가로 칭해진다. 이러한 환경이라면 제대로 된 데이터 분석도 불가능하다. 더 큰 문제는 거짓에 관대한 한국의 문화다. (일부 진영에서) 다수를 따라가는 밴드왜건 효과를 노린 의도된 조작이 가능한 이유다. 100개의 함수에서 1개의 함수가 틀려도 잘못된 여론조사지만, 한국은 이를 용납한다. 지금 한국의 토대에선 제대로 된 여론조사 결과가 나올 수 없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가히 ‘여론조사 홍수’라 할 만하다. 주관사마다 결과도 제각각이다. 비슷한 내용과 맥을 두고 진행한 경우일지라도, 그 조사 주체의 성향과 성격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일요신문>은 현재 여론조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관계자들을 만나 좀 더 충격적이지만 실상에 가까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여론조사의 조작은 크게 ‘국내 여론조사 시장 환경에 따른 불가피한 조작’과 ‘고객의 요구에 따른 의도적 조작’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었다.
전자의 경우, 첫 번째 이유는 과열된 여론조사 시장이다. 기존 업체들은 물론 소규모 업체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바람에 몇 년 새 단가는 하락했고, 지금도 저가 경쟁은 치열하다. 업계 내부에선 상식 수준 이하의 저가 조사가 진행될 경우, 자연스레 조사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현재 여론조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A 씨는 “가장 흔히 쓰이는 ARS 무작위 조사의 경우, 500샘플당 200만 원 정도의 가격이 형성돼 있다. 최소한의 비용을 제하고 나온 가격”이라며 “그런데 만약 예상보다 응답률이 떨어질 경우, 비용(통신료)이 원가를 넘어 설 경우가 많다. 어느 업체도 손해 보는 장사를 하는 법은 없다. 이 경우 어느 정도 조작이 불가피하다. 이는 업계 내부의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지적했다.
A 씨가 말한 응답률이란 응답이 완료된 조사단위의 수를 해당 선거여론조사에 사용된 전체 응답 적격 대상자 수로 나눈 값이다. 즉 여론조사 대상자가 조사를 거부하거나 조사 도중 전화를 끊어도 전화비용은 발생한다. 이렇게 버려진 통신비를 줄이기 위해 사용되는 업계 내부의 조작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샘플 자체를 거짓으로 늘리는 것이다. 이른바 ‘샘플 뻥튀기’다. 쉽게 말해 조사 의뢰자가 1000샘플을 요구했지만, 이를 의뢰받은 업체는 500샘플 표본만 추출하고 샘플을 두 배로 조작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의뢰자가 연령별 쿼터(할당량)를 요구할 경우, 응답률이 떨어지는 연령층의 조사 결과에 손을 대는 것이다. 특히 20대를 대상으로 휴대전화가 아닌 유선 조사에 나설 경우 응답률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일이 잦다. 이 경우, 슬며시 여유가 있는 30대 연령층 표본을 20대 연령층 표본으로 일부 차용해 사용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무작위 조사에서 패널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무작위를 원칙으로 하는 조사에서 응답률을 높이기 위해 기존 패널들을 무작위 응답자로 둔갑시킨다. 이럴 경우 응답률을 현저히 높일 수 있고, 그 만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비록 이러한 간단한 조작일지라도 결국 여론조사의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앞서 이광재 사무총장이 강조했듯, 100개의 함수 중 1개의 함수가 거짓이면 그 결과는 거짓일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고객의 의뢰를 받아 특정 후보를 선전하고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의도적인 조작에 나서는 경우다. 이러한 의도적 조작의 경우, 교묘하고 계획적이다. 대부분 기획형 여론조작에 해당하는 경우다.
질문지 작성에 있어서 특정 후보에 유리하게 구성하는 방법은 기본이다. 최근 가장 많이 적발되는 사례는 ‘여론조사-의뢰인(특정후보)-언론사’가 거래를 통해 계획적인 조작에 나서고, 이 결과를 공표하는 방식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소속 강동완 사무관은 “올해 적발돼 선관위가 고발한 여론조사 관련 범죄 중 대표적인 것이 언론사들이 조작에 연루되는 사례”라며 “언론사 여론조사의 경우, 선관위에 사전 신고를 안 해도 된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일례로 해당 언론사가 조사문항지와 무관한 결과를 공표한 경우가 있었다. 이 경우 특정 후보에 결탁해 언론사들이 조작에 나서는 것으로 의심된다”고 밝혔다.
경영사정이 어려운 언론사의 경우, 이러한 유혹에 빠지기 쉽다. 앞서의 A 씨 역시 “최근 우리 업체에도 특정 후보와 결탁한 것으로 의심되는 몇몇 언론사들이 불합리한 제안을 해왔다”면서 “우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암암리에 이러한 기획 조사가 실시되고 있다는 뜻 아니겠나. 우리보다 규모가 작은 여론조사 업체의 경우, 이러한 꾐에 넘어갈 공산이 크다”고 덧붙였다.
의뢰인의 요구에 따라 여론조사가 정보수집에 이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A 씨는 “여론조사를 의뢰한 특정 후보가 자신에 대해 지지의사를 밝힌 응답자의 전화번호를 요구하는 사례도 많다”라면서 “이러한 전화번호 정보를 통해 선거 막판 홍보 메시지를 발송하는 등 선거운동에 이용하기 위해서다. 물론 이는 선거법 위반으로 3년 이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지만, 종종 발생하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여론조작’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여론조사 관련법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선관위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 여론조사업은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라고 한다. 고도의 전문성과 도덕성이 요구되는 업종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든 해당 지역 세무서에 신고만 하면 시장에 뛰어들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매 선거마다 등장하는 것이 이른바 ‘떴다방’들이다. 선거 때면 사무실을 차려놓고 ‘한탕’을 노리는 업자들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대다수의 여론조작 범죄는 이러한 업체들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현행법상 조사 로데이터(기초자료) 보관 기간은 6개월이지만, 선거철만 운영되는 이러한 떴다방 업체들이 이를 지킬 리 만무하다. 앞서의 강 사무관은 “우리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지할 방도가 별로 없다”며 “결국 세무서에 신고만 하면 되는 신고제라는 현행법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여론조사 떴다방과 관련해 업계에서 B 씨는 전설로 통한다. 그는 지난 20년간 매 선거철마다 이름을 바꿔가며 떴다방 업체를 운영해왔다. B 씨는 업계 평균의 절반도 안 되는 파격적인 가격에 고객을 유치했다. 이는 결국 앞서 언급한 각종 조작법을 가동해야 가능한 방식의 영업이었다. 심지어 내부에선 로데이터에 손을 댄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는 위법행위가 적발돼 벌금형과 몇 차례 실형을 받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고 영업을 이어왔다는 후문이다.
실상은 이처럼 어둡지만, 이를 적발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여론조작 범죄 사실은 증거 잡기가 쉽지 않다. 결국 이러한 증거는 가공하지 않은 로데이터에 잡히기 마련이지만, 여기에까지 업자들이 손을 대면 사실상 답이 없다. 게다가 이러한 범죄가 발생해도 상대 진영의 신고가 아니면, 선관위로서는 인지하기가 쉽지 않다.
강 사무관은 “결국 상대 후보 측의 이의 신청에 따른 조사가 많다. 선관위는 현재 로데이터를 차출해 조작 증거를 잡아낼 수 있는 별도의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지만, 로데이터 자체가 조작되면 결국 수작업을 해야 한다”면서 “이러한 수작업 자체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여론조사업을 기존의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시장의 문턱을 높임으로서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인력과 업체들만이 진입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광재 사무총장은 “계량 정치가 발달된 미국의 여론조사는 문턱이 높다. 우리처럼 조작을 가하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면서 “조작은커녕 제대로 된 절차를 통해 나온 조사결과라도 실제 선거결과와 상반되면 그 업체는 시장에서 자연스레 사라진다. 거짓에 관대한 한국과는 사정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