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만 1000억 묻어뒀다”
수백억 원을 탈세하고도 일당 5억 원의 ‘황제 노역’으로 비난을 산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3월 28일 오후 광주지방검찰청에 조사를 받기 위해 도착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뒤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뉴질랜드에 있는 허재호 전 회장 재산만 1000억 원이 넘을 겁니다. 그는 지난해 생일 때 오클랜드 최고급 호텔에서 유력 교민들을 모아놓고 성대한 파티를 하는 등 교민사회의 유력한 부자로 통했다.”
뉴질랜드의 한 사업가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교민사회에 떠도는 소문을 이렇게 전했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은 2002년부터 뉴질랜드 부동산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때는 대주그룹이 그야말로 잘나갈 때였다. 부동산 경기가 주춤해진 2000년대 초반 경기도 광주시에 1340가구를 분양해 ‘완판’했다. 한때 대주건설은 전국 100대 기업에 선정될 만큼 탄탄했다. 이렇게 ‘실탄’을 비축한 허 전 회장은 해외 부동산으로 눈을 돌렸다.
실제로 2002년 3월 허 전 회장은 그의 집으로 알려진 오클랜드 시내에 위치한 최고급 아파트 펜트하우스를 구입했다. 이후 허 전 회장은 교민사회와 부동산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오클랜드에 빈 땅이 있으면 알려 달라. 소개 수수료를 주겠다”며 얘기하고 다녔다고 현지 사업가는 전했다. 교민사회에서도 “오클랜드 노른자위 땅은 모두 허 회장의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돈다.
허 전 회장의 뉴질랜드에서의 행보를 보면 그의 재산이 1000억 원이라는 추정이 과장은 아닐 것이라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오클랜드 타카푸나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저택은 KNC의 소유다. 당시 뉴질랜드 언론은 “억만장자 비즈니스맨이 오클랜드에서 가장 비싼 집을 사들였다”고 보도했다. 저택의 크기는 가로·세로 각각 1㎞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 전 회장 측은 “부동산 사업을 위해 사들였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오클랜드 시내 그레이스 애비뉴에 위치한 5225m²의 땅도 소유하고 있다. 이 땅은 대주엔터테인먼트 소유로 2002년 기준 70억 원에 이른다. 현재 시가는 2~3배 정도 오른 것으로 알려진다.
허 전 회장 일가와 관계된 것으로 드러난 현지 법인은 17개 정도다. 이 중 16개 회사가 정상적으로 운영 중이다. 허 전 회장은 2004년 대주 컨스트럭션 앤 엔지니어링(Dae Ju Construction & Engineering co. Ltd·대주건설)을 설립했다. 이후 대주개발, 대주엔터테인먼트, 대주하우징, 대주글로벌 등 계열사를 차례로 세웠다. 지난해 8월 대주건설을 KNC로 회사명을 변경하면서 관계사 이름에서 ‘대주’를 지웠다. KNC는 홈페이지에 올린 홍보물에 카타르, 두바이, 태국, 대만 등지에서 대규모 건설 사업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허 전 회장이 거주 중인 뉴질랜드 아파트(왼쪽)와 허 전 회장이 대주의 후신으로 세운 KNC 건설의 피오레 아파트 분양 광고.
허 전 회장은 재산을 물려주기 위한 작업도 착실히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17개 법인 중에 그의 아들로 추정되는 스캇허 씨가 주주로 이름을 올린 회사는 세 개다. 이 중 KNC건설은 지분 100%를 스캇허 씨가 갖고 있다. 나머지 14개 회사 중 피오레프러패티매니지먼트와 피오레바디의 지분은 모두 KNC건설 소유로, 실제 스캇허 씨가 주주로 있는 회사는 총 5개다.
특히 허 전 회장의 ‘황제노역’ 논란이 불거진 직후 ‘재산 빼돌리기’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지난 27일 뉴질랜드 현지 법인들의 주주와 이사 변동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스캇허 씨가 가졌던 대주엔터테인먼트의 지분 46%가 정 아무개 씨에게 양도된 것이다. 정 씨는 스캇허 씨가 과거 뉴질랜드에서 홈스테이를 했을 때 묵었던 집 주인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 회사의 이사였던 허 전 회장의 조카인 허숙 씨와 이병인 씨가 사임하고 정 씨가 이사로 등재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허 전 회장 일가와 관계가 없는 정 씨 이름으로 차명재산을 만들어 재산 추징에 대비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서윤심 인턴기자 heart502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