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심 자극제’ 개발공약 쏟아진다
새누리당의 서울시장 경선 후보인 정몽준 의원이 용산역세권 개발 사업을 단계적으로 재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혀 이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일요신문 DB
선거공약 중 표심을 자극하는 최대어는 ‘개발’이다. 일반적으로 개발공약은 집값 등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로 인해 투기 등 부작용이 속출하지만 일단 자산가치를 상승시켜준다는 공약에 유권자들의 표가 몰린다.
실제로 2002년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해 32대 시장에 당선됐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시 뉴타운 건설과 청계천 복원 등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를 핵심공약으로 내세웠다. 이후 4년 뒤인 2006년 서울시장 후보로 나온 오세훈 전 시장은 이 전 대통령의 바통을 이어 받았다. 그는 세운상가·동대문운동장 재개발 및 뉴타운 50곳 건설 등 강북권 뉴타운개발 공약을 들고 나왔다. 이는 당시 부동산 호황기와 맞물려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졌다.
부동산 공약의 효과는 상당했다. 국민은행 조사를 보면 제16대 대선과 지방선거가 있었던 2002년에는 한 해 동안 서울 집값이 22.5% 올랐다. 2006년 서울시장 선거가 있었던 제16대 지방선거에서는 18.9% 뛰었다.
2년 뒤인 2008년 총선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지역구에서 나온 국회의원 후보 상당수가 자기 지역 뉴타운 개발계획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두 차례에 걸쳐 나왔던 뉴타운 공약이 표심 얻기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자 이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부동산 침체기가 시작된 상황이었지만 당시 서울지역 집값은 5%나 올랐다.
하지만 이후 부동산시장이 침체기를 맞고, 하우스푸어 등이 양산되면서 선거철 개발공약에 대한 반성과 문제점이 지적됐다. 2007~2008년을 지나며 시장이 하락기에 들어서자 부동산 수요자들을 포함한 유권자들의 생각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여러 번 경험을 토대로 바야흐로 ‘온 국민 부동산 전문가’ 시대가 돼 있었다. 더 이상 ‘무조건 투자하고 보자’는 식은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같은 변화는 2010년 지방선거에 그대로 나타났다. 당시 선거에서는 예전과 달리 부동산 공약이 표심을 얻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 전 시장은 당시에도 한강르네상스 연장 등 개발공약을 내놓았지만 강남권을 제외하고는 유권자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당시 집값 변동률도 -1.2%로 오히려 떨어졌다. 2011년 총선과 2012년 대선 때는 오히려 반성의 의미로 개발이 아닌 ‘서민주거안정’을 약속하는 공약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그 이전에 나왔던 개발공약에 따른 후유증이 컸던 탓이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예비후보자들이 다시 개발공약을 들고 나온 것이다. 서울시장 새누리당 경선후보인 김황식 전 총리는 지난 23일 제1차 정책공약으로 신분당선 조기 착공을 발표했다. 강남·시청·은평뉴타운 구간을 조기에 완성해 강남과 시청을 10분대로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또 한양역사문화특별구 지정과 재개발·재건축·뉴타운 지역의 규제 개혁도 강조했다.
같은 당 경선후보인 이혜훈 최고위원도 지하철 3·4호선 직결 운행을 제시했다. 이 최고위원은 4호선의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과 3호선 동대입구역을 연결하고 3호선의 무악재역과 4호선 숙대입구역을 잇는 구간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새누리당의 또 한 명의 서울시장 경선 후보인 정몽준 의원은 직접적인 개발공약을 내놨다. 바로 용산 재개발이다. 정 의원은 최근 민간출자사들과 토지주인 코레일 간의 다툼으로 사업이 무산된 용산역세권 개발 사업을 단계적으로 재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지만 해당 지역인 서부이촌동을 포함한 용산지역 주민들 입장에선 솔깃할 수밖에 없다. 정 의원은 또 ‘북한산벨트관광특구 지정’과 ‘강북권 비즈니스 중심단지 건설’을 공약으로 내놨다.
개발공약은 야당 쪽에서도 나오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올해 추진하겠다고 밝힌 프로젝트들도 이와 완전히 달라 보이지 않는다. 박 시장은 지난 1월 지하철 4호선 창동 차량기지와 도봉면허시험장 이전 등을 담은 ‘행복 4구 플랜’을 발표했다.
지방에서도 마찬가지다. 경기도지사에 도전하는 김영선 새누리당 전 의원은 경기 중·동부권 개발 공약을 내놨다. 구리·하남·남양주·광주시를 포함하는 경기 중·동부권을 ET(환경)·KCT(한류콘텐츠)산업을 중심으로 문화관광·레저 거점지구로 발전시키겠다는 공약이다.
새누리당 제주도지사 예비후보인 원희룡 전 의원은 서귀포지역 중심 개발을 위해 ‘책임시장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새누리당 부산시장 경선 권철현 예비후보도 ‘북항-동천-시민공원-시청-온천천-수영강-해운대를 연결하는 수로도시’ 건설을 공약으로 내놨다.
예전에 비해 직접적인 개발 공약은 줄었지만 부동산시장을 띄울 수 있는 내용이 다시 나오고 있다. 다만 지켜질 수 있는 개발 공약인가에 대한 판단은 유권자의 몫이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시장이 살아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부동산 개발 공약은 표심을 움직일 수 있는 분명한 소재”라면서도 “다만 공약이 지켜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유권자가 잘 판단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수영 이데일리 기자 grassdew@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