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남매 계열분리 착착… 삼성SDI·삼성물산 ‘주목’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
최근 삼성은 삼성SDI와 제일모직,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 간 합병을 잇달아 발표했다. 합병을 통한 규모의 경제 달성과 시너지 극대화가 명분이다. 하지만 증시 전문가들은 당장 기대할 만한 시너지보다는 후계구도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주로 분석하고 있다. 한 애널리스트는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가졌다는 것이 회사 경영의 안정성을 높여주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회사의 역량이 분산되고 투자자 관점에서는 회사가 복잡해져 할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결국 이번 연쇄 합병의 이유는 삼성을 크게 전자와 화학부문으로 나눠 이 부회장과 이 사장에게 각각 물려주기 위한 포석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먼저 삼성SDI와 제일모직 합병은 건설과 화학부문의 지배구조 일원화 의미가 크다. 삼성SDI는 삼성물산의 지분 7.4%를 가진 최대주주고, 제일모직은 삼성엔지니어링 지분 13.8%를 가진 최대주주다. 또 삼성SDI, 제일모직, 삼성물산은 화학계열사에 주요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재계에서 예상하는 삼성의 다음 행보는 삼성물산의 삼성엔지니어링 흡수합병이다. 그런데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1%를 가졌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데 꼭 필요하다. 따라서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합병에 앞서 삼성물산을 종합상사부문과 건설부문으로 인적분할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 지분과 상사부문은 이 부회장에게, 건설부문과 화학 계열사 지분은 이 사장에게 갈 공산이 있다.
이렇게 되면 이 사장으로서는 삼성물산 건설부문에 대한 삼성SDI의 지배력만 가져오면 된다. 시가로 8조 원인 삼성전자 지분이 빠진 법인에 대한 지배력을 갖는 데는 상대적으로 드는 돈이 적을 수 있다.
현재 외부에 공개된 이 사장의 주요 자산은 삼성SDS 지분 3.9%와 삼성에버랜드 지분 8.37%다. 삼성에버랜드 지분은 그룹 레저부문과 호텔부문에 대한 지배력 행사를 위해 꼭 필요하다. 호텔신라 최대주주는 삼성에버랜드가 대주주인 삼성생명이다. 그렇지만 삼성SDS 지분은 돈만 된다면 매각할 만하다. 이 사장이 지분 4.9%를 쥐게 될 삼성종합화학 상장도 현금을 만들 방법이 될 수 있다. 삼성물산 등이 가진 화학계열사 지분이 충분한 만큼 이 사장으로서는 개인지분에 굳이 연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4.1%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는 과정도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 8조 원이나 되는 삼성전자 지분을 이 부회장이 직접 매입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대신 삼성물산(건설과 화학계열사 지분을 떼어낸 후)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는 편이 경제적이다. 그러려면 삼성전자가 가진 삼성SDI 지분을 인수하는 방법이 가장 빠르다. 쉽게 말해 1조 5000억 원을 들여 8조 원짜리 자산에 대한 지배력을 갖는 방법이다.
이 부회장의 대표적 자산은 삼성SDS 지분 11.25%, 삼성에버랜드 지분 25%다. 삼성에버랜드 지분 25%는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근거이므로 매각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삼성SDS 지분은 그룹 지배력과 직접 관련이 없다. 최근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와 삼성SDS 간의 시너지를 강조하고 있다. 삼성전자에 삼성SDS 지분을 팔든지, 상장을 해서 시장에 내다팔든지 돈으로 만들 방법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은 어떻게 될까? 일단 패션부문은 확실히 그의 몫이다. 문제는 이 사장 역시 삼성에버랜드 지분 8.37%와 삼성SDS 지분 3.9% 외에는 돈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패션부문을 독립시키면서 삼성에버랜드 지분 대신 패션부문 지분을 얻는 방법이 유력하다.
이는 최근 삼성이 삼성SDI와 제일모직의 합병을 발표하면서 ‘제일모직’이라는 이름을 삼성에버랜드가 사용할 수 있다는 언급을 한 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아무리 삼성그룹의 역사가 배어있는 이름이라지만 레저와 건설, 패션, 그리고 그룹 지배까지 하는 회사에서 ‘모직’이란 이름을 쓸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삼성에버랜드 내 패션부문을 떼어내서 제일모직이라는 이름을 되살릴 가능성이 점쳐진다.
재계 일각에서는 제일기획도 이서현 사장 몫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꽤 있다. 시댁이 동아일보 쪽 이어서다. 만약 이서현 사장이 삼성SDS 지분을 바탕으로 삼성물산이 보유한 제일기획 지분 12.6%까지 인수한다면 제일모직과 합쳐 ‘제일그룹’이 탄생할 수도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