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중국 란싱그룹이 실제로 쌍용차를 인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일고 있다. 사진은 ‘뉴체어맨’ | ||
쌍용차의 소진관 사장은 최근 뉴 렉스턴 발표회장에서 이번 매각과 관련해 “최선은 아니고, 차선이라고 생각된다”며 알듯말듯한 발언을 해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지난 16일 쌍용차 매각주간사인 삼일회계법인과 조흥은행은 “여러 상황을 검토한 결과 중국 란싱그룹을 추천했다”며 “지난 22일 채권단 회의를 거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조흥은행에 따르면 란싱그룹은 채권단의 지분을 일괄 인수하고, 인수가격을 주당 1만1천원으로 하며, 오는 2010년까지 10억달러(한국에 7억달러, 중국에 3억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쌍용차 임직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기존의 경영진을 유임시키겠다는 등이 주요 내용이다.
특히 란싱그룹은 인수 후에도 이사회를 통해 주주자격으로 경영상 주요 의사결정만 참여하고, 세부적인 사안은 쌍용차측이 알아서 운영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채권단의 입장에서는 ‘호조건’이다. 실제 업계 관계자는 “그 같은 조건이 사실이면 채권단의 100% 동의가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상황은 바뀌고 있다. 쌍용차 노조 이영호 교육선전실장은 “채권단이 워크아웃 졸업을 눈앞에 둔 쌍용차를 빨리 팔기 위해 서두른 것으로 보인다”며 ‘졸속매각’ 의혹을 제기했다.
졸속매각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그동안 채권단은 쌍용차를 공개입찰이 아닌 비밀리에 매각하기로 해놓고 돌연 매각 방식을 공개입찰로 바꾼 부분도 있다.
게다가 지난 11월10일 공개입찰로 매각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정한 뒤 9일이 지난 시점인 19일에 인수희망자로부터 인수의향서를 접수받아 불과 한 달도 안된 시점에 인수자를 정했으니 지나치게 서두른 감이 없지 않다는 것.
업계 관계자들 역시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GM대우, 르노삼성 등이 쌍용차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공개입찰을 선언하자마자 갑자기 국내외 기업 8곳이 입찰에 참여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채권단이 서둘러 매각하기 위해 입찰조건을 바꾼 것이 아니냐는 얘기들이 많다”고 전했다.
▲ 소진관 쌍용차 사장 | ||
그러나 채권단의 이 같은 해명에도 여전히 의문점은 남는다. 특히 업계에서는 란싱그룹이 제시한 인수조건에 대해 ‘황당무계하다’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란싱그룹이 제시한 인수조건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 만큼 호조건이라는 얘기.
그렇다면 채권단은 전문가들조차 ‘불가능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호조건을 내건 란싱그룹의 제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조흥은행 김상현 부부장은 “계량적인 부분과 비계량적인 부분을 종합한 결과 란싱그룹이 인수희망자들 가운데 제일 점수가 높았다고 (매각주간사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업계 관계자는 “란싱그룹은 연간 매출액이 1조5천억원 정도에 불과한데, 쌍용자동차에만 향후 6~7년 동안에 1조2천억원의 거금을 투자하겠다는 것은 도저히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쌍용차 노조 관계자는 “채권단측이 란싱그룹이 인수할 경우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도대체 자동차회사와 화학회사가 결합해 어떤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인지 궁금하다”며 “인수업체 평가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국내기업의 중국투자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 김익수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란싱그룹이 2010년까지 쌍용차에 1조2천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은 대단히 야심찬 플랜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투자계획을 보면 연차적으로 1조2천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것이어서 비현실적이라고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중국 기업의 특성 등을 고려해 보건대 실제 제시조건의 절반 정도가 투자될 것이라고 보면 맞는 생각”이라고 분석했다.
모든 업계 관계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내용을 채권단은 순진하게 그대로 믿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업계에서는 채권단이 당초부터 란싱그룹을 염두에 두고 입찰을 시작했다는 얘기도 돌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란싱그룹이 인수가로 제안한 주당 1만1천원이 당초 채권단이 적정 매각주가로 밝힌 1만1천원과 정확히 일치하는 데다, 란싱그룹이 M&A의 기본 원칙이라 할 수 있는 비밀원칙을 지키지 않고 입찰참여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부분 등이 뭔가 석연치 않다는 시선이다.
게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란싱그룹이 실제로 쌍용차를 인수하기 힘든 상황으로 바뀌고 있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영기업인 란싱그룹이 쌍용차를 인수하려면 국가개발개혁위원회라는 곳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 그러나 현재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 위원회는 “란싱그룹은 자동차 회사를 인수할 자격이 없다”며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채권단이 란싱그룹과 MOU를 체결했지만, 만약 이 계획이 무산되면 매각을 성사시켜 한몫보려 했던 채권단은 국제적인 망신살이 뻗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은 인수자의 속사정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서류상 드러난 조건만 보고 매각을 서둘렀다는 비난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