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항해사 맹골수도 첫 운항
해난구조대 대원이 기울어진 갑판에서 승객을 구조하고 있다. 사진제공=해양경찰청
이번 세월호 침몰 사건의 가장 큰 원인은 ‘사람’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무리 좋은 배도 사람의 능력이 닿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물론 수사과정에서 침몰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겠지만 일단 배를 운용하는 승무원들의 자질과 위기관리 능력 등이 먼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침몰을 일으킨 1차 장본인은 3등 항해사로 보인다. 세월호 침몰 당시 선장이 아닌 3등 항해사가 조타실을 지킨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 사고 당시 3등 항해사는 운항경력 1년, 세월호 승선 경력이 불과 5개월여에 불과한 25세 여성 초보 항해사 박 아무개 씨로 알려지면서 조타실을 비운 선장에 대한 비난도 거세지고 있다. 특히 초보 항해사 박 씨가 위험하기로 소문난 침몰지역 맹골수도 운항이 사고날이 처음이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합동수사본부는 사고 무렵 선장 이준석 씨가 조타실에 없었던 것을 확인했다. 이 선장의 부재에 따라 3등 항해사 박 씨와 조타수 조 아무개 씨가 선박을 운항하며 변침을 하다가 사고가 났다는 의미다. 특히 ▲선장 이 씨가 당시 근무에서 제외된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여부 ▲무리한 변침을 시도한 이유 ▲선장 이 씨가 직접 조타를 지휘하지 않은 배경 ▲조타수 조 씨가 단독으로 조타 중 사고를 냈는지의 여부 등이 ‘사람’이 침몰 원인 제공자라는 점에서 중요한 규명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구조 소식을 기다리며 슬퍼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이번 사건에서 선박 전문가들은 무리한 ‘변침’의 배경이 도대체 모르겠다며 상당히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수사 당국도 키를 잡은 사람이 운항 중 뱃머리를 급격히 틀어 사고가 났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세월호가 침몰에 앞서 변침지점인 맹골수도에서 통상적인 변침각도보다 훨씬 급하게 오른쪽으로 튼 것으로 조사됐다.
세월호는 당시 오른쪽으로 110도가량을 급하게 꺾었다고 한다. 완만하게 항로를 변경해야 하지만 급격하게 뱃머리를 돌리면서 배가 왼쪽으로 기우뚱한 것으로 추정된다. 선박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5~10도 정도 꺾으면 되는 구간에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급하게 많이 꺾어야 하는 이유가 뭔지 정말 궁금하다”며 의아해한다.
전방에 배를 급격하게 돌릴 만한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사고 당시 근처를 지나던 어선에 대한 진술이나 조사결과는 아직 나오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합동수사본부는 “변침해야 할 위치는 맞다. 급박한 선회였는지 통상적 선회였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무리하게 ‘턴’ 하는 과정에서 선박의 무게 중심이 원심력 때문에 바깥쪽으로 쏠리면서 전복됐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쾅’ 하는 소리는 세월호에 선적된 컨테이너 등 화물이 갑작스레 쏠리면서 선체에 부딪히며 난 소리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 이것이 해경과 합수부가 유력하게 보고 있는 이번 침몰 사건의 원인이다.
안산 단원고 교정에 붙어있는 ‘실종자 구조 기원’ 메시지. 임준선 기자
현재 세월호 침몰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선박에 외부충격은 없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사고 직전 ‘쿵’ 하는 소리가 났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이어지면서 사고발생 직후 제기된 암초와의 충돌 등은 사고 원인에서 배제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쿵’ 소리의 실체는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선장 등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렇게 수사결과는 선박에 외부충격이 없었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 수사중간발표를 전후해 여전히 외부충격설이 더 신빙성이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세월호가 무리한 변침에 의한 것이 아니라 2시간 늦게 출항한 것을 만회하기 위해 정상항로를 이탈해 수심이 얕은 지름길로 가다가 선미가 해저에 ‘긁혀’ 침수가 발행해 생긴 사고라는 것이다. 이는 향후 ‘쿵’ 소리의 명확한 규명과 함께 사고원인이 변침과 외부충격의 복합변수에 의해 일어났을 가능성도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천안함 민군합동조사위 민간위원을 지낸 신상철 전위원의 주장 요지는 이렇다. 자동차의 경우 핸들을 확 틀 경우 한쪽으로 급격하게 쏠릴 수 있지만 길이가 145m에 이르는 세월호의 경우 갑자기 턴을 한다고 해도 한쪽으로 급속하게 쏠리는 것이 아니라 직진을 유지하면서 꼬리가 틀리면서 서서히 돌아간다는 것이다. 즉 회전반경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급격한 쏠림 현상도 자동차에 비해 훨씬 덜하다는 것이다. 이는 무리한 변침에 의해 배가 침몰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급선회에 의해 화물이 쏠렸다는 것도 의아스럽다는 것이다. 화물을 실어 나르는 여객선의 경우 높은 파도나 태풍 등에 대비해 그 결박력(락킹)을 매우 높게 하기 때문에 그 정도의 급선회로 화물이 쏠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유력하게 제시되고 있는 변침과 화물쏠림에 의한 침몰이 모두 부정되고 있는 것이다. 신 전 위원은 일단 이번 사건의 주요원인을 ‘항로이탈’로 보고 있다. 암초 등이 많은 육지 가까이 운항하면 거리는 단축되지만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 안개 때문에 지연출항한 세월호가 그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섬과 섬 사이를 관통하는 무리한 뱃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지난 18일 안산 단원고에 안산시민들이 모여 실종자들의 구조를 기원하는 촛불 기도회를 하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그리고 ‘정상항로’를 이탈한 세월호가 결국 수심이 얕은 섬 가까이를 지나다가 배밑이 해저에 ‘긁혀’ 침수가 됐고 배가 오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오전 8시경 일부 섬 주민들이 하얀 배가 멈춰 서 있는 것을 의아해 했다는 증언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자동차가 운행하다가 작은 돌멩이 등에 의해 외관이 긁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월호도 암초가 아니라 해저의 돌멩이나 자갈 등에 의해 배 밑바닥에 ‘작은 흠’이 발생해 ‘미세한 침수’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선장 등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또는 인지한 뒤 배의 복원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다가 결국 급격하게 기울어지면서 물이 순식간에 들어오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선장 등이 계속 승객들에게 별일 아닌 듯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방송을 반복한 것도 배를 복원시키기 위해 ‘과도한 움직임’을 없애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해석해볼 수 있다. 앞서의 신 전 위원은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선장과 회사 측이 선박 복원과 승객 구조 등에 관해 모종의 ‘협의’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 19일 구속된 세월호 조타수 조 아무개 씨(55)는 “평소보다 조타 회전을 많이 한 내 잘못도 있지만 돌린 것보다 유난히 빨리 돌았다”고 밝혔다. 이는 배의 ‘긁힘에 의한 침수’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유력한 가설인 급선회한 여파로 침몰했다는 의혹의 연장선상에 있다. 선박의 키가 평소와 다르게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선박의 결함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운항미숙의 책임을 선박 결함으로 몰고 가려는 선원의 변명일 수 있다.
그런데 배의 결함도 문제가 됐다. 세월호가 화물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적재했을 가능성에 더해 리모델링을 통해 객실 시설을 확장한 것이 선박 침몰에 영향을 줬을 것이란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인천지방해양항만청에 따르면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지난 2012년 10월 일본에서 세월호를 도입한 직후 이듬해 3월까지 전남 목포에서 객실 증설 공사를 진행했다. 3층 56명, 4층 114명, 5층 11명 등 총 181명을 더 수용할 수 있는 객실 증설 공사였다. 이로 인해 도입 당시 6586톤이던 총톤수는 6825톤으로 늘었다. 해운업계에서는 여객선 상부인 3∼5층에 객실이 추가로 들어섬으로써 무게중심이 기존보다 높아져 침몰 사고 당시 쉽게 기울어졌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객실을 확장하는 리모델링 공사로 선체 복원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급격한 변침이 결박된 화물들을 넘어뜨리면서 선체에 파손이 생겼고 이로 인해 침몰 사고를 불러일으켰다는 분석이다.
여기에다 침몰 뒤 승무원들의 구조 시스템도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선장은 배 침몰 약 1시간 전에 이미 탈출한 상태였고 승무원 가운데 일부는 객실을 지나면서도 조용히 대기하고 있던 학생들에게 ‘피하라’는 말도 하지 않고 갑판으로 올라가 태연히 구명정에 올라타는 이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런 총체적 부실을 관리해야 하는 정부의 안전관리 시스템도 실격, 그 자체였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