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규…통곡…분노… 얼마나 더 울어야 합니까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4월18일 오후 12시 30분. 북적북적한 진도 팽목항 상황본부가 갑자기 격노의 음성으로 휩싸였다. 선체 내부에 공기주입 작업을 받던 세월호가 ‘완전 침수’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 학부모와 가족들은 상황본부에 있던 경찰 관계자에게 반말과 욕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어 TV속보를 통해 시신 2구가 추가로 발견된 소식이 전해지자 가족들의 항의는 더욱 거칠어졌다. 가족들이 경찰 관계자를 향해 손가락을 뻗으며 외쳤다. “야 이 XX야. 너는 살인마야!” 절규에 가까운 음성은 항구를 가득 울렸다.
가족들의 폭발적인 분노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이보다 하루 전인 17일 저녁. 가족들은 사고 발생 하루 만에 피해 가족 앞에 나타난 경찰 책임자에게 분노했다. 오후 9시 30분쯤 팽목항 상황본부에 나타난 김수현 서해해경청장은 의자에 올라가면서까지 인사를 했지만 “목소리가 작다”라는 핀잔만 들어야만 했다. “우리 경찰청장 얼굴 참 보기 힘들지요?”라는 학부모 대표의 말에 가족들은 일제히 “옳소”를 외쳤다.
구조 상황은 김 청장의 작은 목소리만큼 가족들에게 답답해 보였다. 결국 참다못한 가족들은 스피커를 준비해 마이크를 김 청장에게 갖다 댔다. 김 청장이 오기 전에 정부는 가족들에게 두 가지 약속을 했다. 어두운 수색 장소를 밝히기 위한 ‘조명탄 발사’, 해양경찰과 민간 잠수부를 동원한 ‘세월호 수색’이다. 하지만 가족들이 보기에 두 가지 모두 제대로 지켜진 것은 없었다.
더디기만 한 구조작업에 실종자 가족들이 분노하고 있다. 위의 사진은 서해해경청장과의 대화.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아빠 무서워 빨리 와.”
오전에만 해도 딸의 문자를 받았다며 한숨을 쉬는 유 아무개 씨의 한숨이 깊게 울려 퍼졌다. 한숨은 곧이어 분노로 변했다. “오늘도 정부가 하루 종일 한 게 없어. 여기저기 우왕좌왕 대체 뭐하자는 거야. 이대로 죽으라는 거야? 언론이 제대로만 보도했어도 이런 문제 안 생겨.” 아버지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침몰 이틀째 되던 날 파도의 높이가 심상치 않다는 잠수부들의 증언이 나오면서다. 거세지는 비바람은 파도와 어우러져 더욱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국구조연합회 정동남 회장은 “파도가 2m, 유속은 10km가 넘는다. 일단 배가 고정이 안 되니까 배로 진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서치라이트를 계속 비추고 주변을 수색할 수밖에 없다”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상황본부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당장 조명탄부터 켜요. 늦으면 다 죽는다고요. 제발.” 김 청장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학부모도 있었다. 박 아무개 씨(여·58)는 “오전 10시에 딸에게 문자가 왔다. 친구 3명과 함께 있는데 3명이 다 오늘 저녁 못 넘길 것 같다더라. 오늘 저녁에 못 구하면 끝이다. 그렇게만 알아둬라”고 못 박았다.
“어디 갈 생각 말고 여기서 전화하고 지시하세요.”
가족들이 김 청장을 둘러쌌다. 김 청장과 함께 있던 경찰 관계자들도 가족들에게 둘러싸였다. 김 청장은 “여기서 제가 지시를 내리겠습니다”라고 정중히 답했다. 해경 상황실에 전화를 걸어 조명탄을 최소 40발에서 400발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김포공항과 여수공항 양 쪽에서 비행기를 이륙시켜 번갈아가며 공백 없이 조명탄을 쏜다는 계획이었다. 30~40분만 기다리면 세월호를 비추는 조명탄이 투하될 터였다.
민간 잠수부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조명탄이 준비되자 잠수부를 투입시키는 일만 남았다. 가족 측은 해양경찰뿐만 아니라 민간 잠수부까지 장비 지원을 해 함께 수색해야 한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폈다. 바다가 환해질수록, 잠수부가 많을수록 구조 작업에 탄력을 받는다는 희망이다. 17일 밤은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물러서지 말아야 할 ‘배수진’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지체하면 상상만으로도 정말 끔찍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로 가슴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수십 분 후 갑자기 상황본부에 등장한 한 민간 잠수부의 모습에 눈길이 집중됐다. 군복을 입은 잠수부는 스쿠버 장비를 내려놓으며 “방금 세월호 근처에 다녀왔다”고 운을 뗐다. “어떻던가요?”라고 묻는 질문에 잠수부는 “주변에 아무 것도 없어요. 아무도 없어”라고 답했다. 순간 가족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인력을 동원해 인근을 수색하겠다던 경찰이 거짓말을 했다며 분노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면 전문가니까 잘 아시겠네요. 솔직히 지금 아이들 구조할 수 있습니까? 정말 정직하게, 터놓고 말해주세요.”
다소 격앙된 얼굴로 가족 중 한 명이 또 다시 질문을 던졌다. 잠수부는 어렵게 입을 떼며 답했다. “기적도 없고 힘도 없습니다.” 할 말을 잃고 적막에 휩싸인 가족들 사이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침몰해역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안타까운 뒷모습.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사건 발생 사흘째인 18일 오전 시간은 다소 잔잔해진 물살로 구조 작업에 탄력을 받을 수도 있었다. 대한인명구조협회 황장복 지부장은 “기상상황과 물살이 어제보다 괜찮아져 안전줄만 있다면 충분히 잠수가 가능한 상황”이라며 “장담은 할 순 없지만 좋은 효과를 기대해도 괜찮다”라고 전했다. 해경은 이날 오전 민간 잠수부들의 대대적인 투입을 허가했다. 하지만 성과는 생각만큼 그리 크진 않았다. 빠른 내부 물살과 짧은 가시거리가 선체 입성에 걸림돌이 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신 인양이 한동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부가 시신 인양을 계속해서 미룬 게 아니냐는 주장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한 가족은 직접 상황본부를 찾아와 경찰 관계자에게 “내가 방금 전화 받았는데 잠수부가 선체 유리를 들여다보니 다 시신밖에 없더래, 이거 어떡할 거야”며 강력하게 항의한 일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부모는 “결론이 이미 나와 있는데 정부가 자꾸 시간을 끌고 진실을 감추려 하고 있다. 맨날 구해준다 해놓고 이게 몇 번째냐. 차라리 못한다고 솔직히 인정하는 게 더 낫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유가족들이 정부의 조치를 얼마나 믿지 못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시간이 흘러 19일 오전 12시 무렵. 하루 종일 가슴을 졸이던 어머니들이 들고 일어섰다. 지지부진한 구조 상황을 두고 희망을 마냥 저버릴 순 없었다. 상황본부 앞에 담요를 깔고 자리를 잡은 실종자 어머니들 30여 명은 자식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울부짖었다.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은 어머니는 마지막 간절한 바람을 목 놓아 외쳤다.
“아기야 얼마나 차갑니. 엄마가 따뜻한 물 한 컵도 못주고 미안해.”
바다를 등지고 주변을 통제하던 의경도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감췄다.
전남 진도=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숙식해결 어떻게 2000여 명 교대로 봉사활동 실종자 가족들은 보통 팽목항과 진도 실내체육관으로 나눠져 있다. 팽목항에는 19일 현재 약 100여 명의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중이다. 천막으로 된 텐트와 자원봉사자들의 손길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진도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에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원안 사진은 밥차.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진도에는 사고가 발생한 직후 자원봉사자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봉사활동에 참여한 이들만 2000여 명이 넘는다. ‘대한적십자사’, ‘한국구세군’,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현대상호중공업’ 등이 식사 및 간식을 제공하며 식사 메뉴가 매번 바뀐다. 대학약사회는 의료품을 무료로 제공하며 한국전력은 직원이 직접 급파돼 휴대폰, 노트북 충전 및 전기 설치 등을 보조한다. 이밖에도 무료 휴대폰 충전소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휴대폰 충전을 도와준다. 보건소 및 상황실 등도 설치되어 있다. 세면도구 역시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다. 직접 현장을 찾지 못하는 시민들이 보낸 모금 및 구호물품 등도 속속 현장에 도착하고 있다. 쌀과 라면, 음료 등 식음료와 기본 생필품 등 다양한 물품은 도착 즉시 실종자 가족들에게 전달된다. 진도군 주민복지과 관계자는 “사고 직후 지금까지 전국에서 16만 건 이상의 물품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네티즌들은 구호물품을 보내며 주의사항 등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진도군청 주민복지과 관계자는 “아직 날씨가 쌀쌀해 담요, 수건, 모포 등 몸을 따뜻하게 데울 수 있는 물건이 가장 긴급하게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편 국내외 기자들은 근처에 별다른 숙소가 없어 읍내의 찜질방이나, 모텔, 멀리 떨어진 곳의 펜션 등에서 숙소를 해결하고 있다. 인근 시민회관이나 팽목항 내에 있는 각종 천막들도 숙박을 해결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환] |
오보 연발 기자들 가시방석 극에 달한 불신 “기자 색출하라” 유례가 없는 참사에 현장의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하지만 기자들은 자신의 신분을 내놓기에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실종자 가족의 강한 반발 때문이다. 세월호가 잠깐 침몰했다고 알려진 18일 오후 12시 30분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가족들의 동요가 최대치에 달한 것이다. 가족 중 한 남성은 그 모습을 찍는 방송 카메라를 향해 생수병을 던졌다. 또 다른 여성 가족은 “항구로 오는 길에 세워져 있는 방송 중계차를 모두 철수시켜야 한다”고 절규하며 119에 그 사실을 건의했다. 시신 운반을 위해 길을 터줘야 한다는 이유였다. 이밖에도 “기자를 색출해야 한다”며 양복을 입었거나 수첩을 들고 있는 이들을 붙잡고 멱살을 잡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실종자 가족들은 “기본적으로 언론을 믿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학부모 대표 모임의 한 관계자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해야 하는데 언론이 얘기한 것은 현실과 너무 다르다. 특히 사고 초반 ‘전원 구조’라는 것을 확인하지 않고 막 쓰는 바람에 초동 수사가 좀 늦어진 면이 있다”라고 전했다. 오보가 거듭되는 것도 가족들의 마음을 돌아서게 한 이유다. 대표적인 것이 KBS가 지난 18일 오후 4시 30분경 내보낸 “선내 엉켜있는 시신 다수 확인”이라는 오보. 팽목항을 들어오는 입구에 KBS가 자사의 뉴스를 24시간 제공하고 있는데 가족들이 그것을 보고 현 상황과 상당히 다른 내용이 많다며 불신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편 취재진이 아예 촬영을 못하도록 통제가 되는 곳도 있었다. 상황본부에서 펼쳐지는 내부 회의가 대표적이다. 시신 인양 당시 촬영을 엄격하게 통제한 것도 마찬가지다. 시신 인양 과정을 찍으려는 카메라 기자와 가족 간에 실랑이도 벌어졌다. [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