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 여인과 불에 탄 남자…그들에게 무슨 일이?
화재가 난 후 두 남녀의 시신이 발견된 양평의 한 설비공장을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경기도 양평군의 한 설비공장에서 불이 난 것은 지난 12일 새벽. 사무실 뒤편 창고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길은 순식간에 건축자재 판매장과 건너편 창고까지 뒤덮었다. 주택들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동네였지만 시커멓게 뒤덮인 연기와 건축자재들이 타들어가는 소리에 동네주민들은 긴장했다.
불은 1320㎡ 규모의 건축자재 판매장과 창고, 트럭 1대를 완전히 태운 뒤 40여 분 만에 진화됐다. 이날 화재로 소방당국 추산 2억 2000만 원의 재산 피해가 났고, 50대 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기자는 지난 17일 화재현장을 찾았다. 폴리스라인 안으로 보이는 화재현장에는 타다 남은 건축자재와 뼈대만 남은 집기들이 매캐한 냄새를 풍기며 널브러져 있었다.
화재현장 인근에서 마주한 마을주민 장 아무개 씨(59)는 “큰 불이 났다는데 새벽이라 사람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느냐”며 “거기 직원들이 남아있는 집기들이랑 자재들 챙겨서 조용히 영업정상화하고 있다”며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라 덧붙였다. 화재현장에서 마주한 직원들도 참담한 표정으로 연소되지 않은 집기들을 트럭으로 옮기며 “어떻게든 영업을 재개하려고 하고 있다”고 언급한 뒤 입을 닫았다.
그러나 화재현장에서 불길에 심하게 훼손된 남성의 시신과 알몸상태로 질식사한 여성의 시신이 동시에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인근일대가 다시 떠들썩해졌다. 신원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소사체로 발견된 남성은 국과수의 DNA 검사결과 설비공장 대표 김 아무개 씨(55)로 밝혀졌다. 그리고 알몸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된 여성은 설비공장 여직원이 아닌, 공장에서 멀지 않은 읍내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던 여 아무개 씨(52)였다. 이 때문에 이들의 사망원인에 대해 여러 의혹들이 제기됐다.
치정에 얽힌 타살가능성도 그 중 하나였다. 김 씨의 시신이 신원확인이 어려울 정도로 불에 타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던 반면, 여 씨는 화상이 심하지 않아 화재 진화 직후 신원확인이 가능했다. 또 김 씨는 사장실과 인접한 주방에서 발견됐고, 여 씨는 옷을 벗은 채 문이 잠겨있지 않았던 출입구 근처에서 앉아서 발견된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탈출도 가능한 거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평경찰서 관계자는 “화재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모든 경우의 수를 두고 수사를 진행할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경찰 관계자는 “실제로 범인이 김 씨를 살해하고 경찰에 자수했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수한 적은 없으며 참고인 조사 중이다. 부검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돌았던 이야기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유독 김 씨의 시신만 심하게 훼손된 탓에 김 씨가 이미 다른 곳에서 살해된 후 설비공장으로 옮겨졌고, 이후 시신이 훼손됐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제기됐다. 그러나 이 또한 가능성이 적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이미 다른 곳에서 살해된 후 시신이 옮겨졌다면 화재현장에서 숨을 쉴 때 생기는 그을음이 식도나 기도에서 발견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러나 부검결과 두 사람 모두 식도와 기도에서 그을음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적어도 화재가 날 때만 해도 두 사람이 숨을 쉬고 있었다는 분석이다.
둘 사이의 다툼이나 실수로 화재가 났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서로 가정이 있었던 두 사람이 내연관계로 발전하면서 갈등이 일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결국 다툼 끝에 한 사람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
하지만 사망한 두 사람의 지인들은 두 사람이 금전문제로 갈등을 일으키거나 채무관계로 얽혀있는 사이도 아니었고, 비교적 둘 사이가 원만했다고 경찰조사에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이 또한 신빙성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의 부주의나 건물자체의 문제로 화재가 났을 가능성도 주목하고 있다. 소방당국은 건축자재 판매장 내 사장실 뒤편 창고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인근의 집기류를 국립수사연구원에 보내 인화성 물질 검출 여부 조사와 현장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 또한 이번 화재의 정확한 원인 파악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부검결과 두 사람 모두 혈액에서 치사량 이상의 일산화탄소가 검출돼 1차적으로는 화재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본래 화재사건은 실수든 방화든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한다. 억측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정확한 경위와 결과는 수사 중이다”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