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A:사법연수원 성적 50등 이내에 든 검사여야 하구요. 출신학교는 서울대 또는 연·고대 출신이고, 외모는 쌍꺼풀이 있고 얼굴이 좀 작아야 해요. 키는 178cm 이상에 약간 마르고, 종교는 기독교….
고객 B:미국 MBA 출신. 연봉은 2억원이 넘어야하고, 외국에서 살겠다는 남자면….
고객 C:무조건 치과의사여야 한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한 결혼정보회사. 이곳은 여성 회원 수만도 1천3백∼1천4백 명에 이를 정도로 업계에서는 명성이 높다. 이 회사의 회원들 중 가입비가 3백만∼5백만원대인 플래티넘 회원들은 무척이나 까다롭고 눈이 높기로 소문나 있었다. 여성 회원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외국계 회사 비서, 영어 학원 강사, 디자이너, 스튜어디스 등이 많으며 심지어 CF모델이나 탤런트, 지방 미스코리아 출신 여성들도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이들 중에는 어머니가 몰래 가입한 회원도 상당수 있다. 국회의원이나 장관급 등 고위 관료들의 딸은 가입비가 1천만원에 이르고, 이들에 대해서는 이 회사 사장이 따로 특별 관리한다.
여성 회원들의 나이는 대체로 27~32세. 25세 미만의 여대생들도 상당수 있다. 직업은 다양하지만 집안의 권력이나 재력은 한결같이 최상급이다. 부모 대부분이 수십억에서 수백억원대 재산을 보유한 고소득 자영업자나 정치인, 의사, 검사, 대기업 및 언론사 간부 등이었다.
또 플래티넘 남성 회원 역시 검사, 판사, 변호사, 의사, 공인회계사, 미국 MBA 출신 회사원 등 잘 나간다는 사람들이다. 나이는 30~35세.
지방 모 대학 의예과에 재학중인 J씨(27). 모 방송사 간부의 외동딸인 J씨는 오로지 의사 남성을 원한다. 그 중에서도 서울대, 연·고대 출신만 원한다. 그러나 올 들어서는 서울 중상위권 대학까지 고개를 끄덕인다고 한다. 커플 매니저들이 법조인들을 가끔씩 추천했지만 J씨는 매번 고개를 돌린다.
이곳에서 가장 어린 여성 회원이라는 K씨(23). 서울 모 대학 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중이다. K씨의 유일한 관심 대상은 치과의사. 치과의사 중에서도 무조건 서울대 출신 개업의만을 고집한다고.
외동딸인 K씨는 현재 58평 강남 아파트와 고급 벤츠 승용차가 자신의 명의로 되어 있을 정도로 부모가 상당한 재력가다. 귀여운 외모에 재력가 집안의 외동딸이면서, 게다가 대학생이라는 프리미엄 때문에 남성 회원들의 집중적인 러브콜을 받고 있지만 치과의사만 만나겠다는 황소고집은 절대 꺾지 않고 있다. K씨는 현재 30대 중반의 서울대 출신 치과 개업의사와 교제중이다.
이밖에도 최근 여성 회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상대는 바로 미국 유명 대학 MBA를 받은 남성. 연봉도 억대이고 외국어 실력까지 출중한 데다, 유학파에 대한 호감어린 선입견 때문에 여성 회원들의 선호도가 상당히 높다. 그렇다고 여성 회원들이 모든 MBA 출신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 내에서도 톱10 안에 드는 대학 출신 학위 소유자만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변호사의 인기가 추락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실제 이곳에서도 검사, 판사와 변호사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사법연수원 졸업 성적이 2백위권 안에 들어 검사나 판사로 임용된 회원들은 여성들의 미팅 제안 건수가 늘어나는 반면, 성적이 하위권으로 밀려나 어쩔 수 없이 변호사 개업을 한 회원들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 커플 매니저는 “실제 법조인들을 소개받기 원하는 여성 회원들은 상대방의 사법연수원 성적부터 묻는다”며 “변호사 개업을 했다고 하면 사법연수원 졸업 성적이 좋지 않아서 검사, 판사 임용은 물론, 로펌에도 취업하지 못한 것으로 여기고 소개받기를 꺼려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여성 회원들은 대부분 사법연수원 성적을 능력의 잣대로 판단하고 있다. 여성 회원 Y씨(28)는 “성적은 그 사람이 얼마나 성실하게 수련 과정을 이수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돈의 문제가 아닌 남자의 진정한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들의 이 같은 생각에 변호사 회원들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다. 회원으로 가입한 변호사 C씨(32)는 “뜻이 있어 변호사를 지원한 경우도 많다. 더욱이 성적으로 사람의 성실성을 판단하는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다”고 분개했다.
이처럼 고품격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한 여성 회원들이 말하는 남성상은 그야말로 누가 보아도 우러러볼 만한 존재들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집안 좋고 경제적 능력이 있으면서 자신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남성인 것이다.
이 같은 결혼문화에 대해 일각에서는 상향지향주의자들의 맹목적인 집착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들이 최고의 남성만을 찾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주장도 있다. 최고의 배우자를 찾는다는 자체는 20년 이상을 경제적 어려움 없이 지내온 이들이 자신의 테두리를 뺏기지 않으려는 일종의 본능을 자연스럽게 발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이유야 어찌됐건 결혼정보회사 직원들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실제 하루 절반 이상을 최고 신랑감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한 커플 매니저는 “요즘처럼 전문직 남성들이 귀하게 보일 때가 없다”며 “총각 의사나 검사들을 알게 되면 무조건 친구들을 소개시켜 달라고 읍소할 정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