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용씨 ‘승계’ 부진·서현씨 ‘독립’ 묘수 보인다
삼성SDS ICT 수원센터 전경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그동안 삼성의 주력은 삼성전자로 대표되는 하드웨어였다. 하지만 미래 ICT 시장에서는 모바일과 클라우드, 빅데이터, IoT(사물인터넷), 보안은 물론 통신, 리테일, 헬스케어, 교육 등 소프트웨어 분야가 더 유망하다. 바로 삼성SDS의 사업영역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공을 들이고 있는 차세대 모바일 운영체제(OS)인 ‘타이젠(Tizen)’, 그리고 기업간거래(B2B) 시장에서 삼성SDS와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삼성SDS의 사업확장을 위해서는 자금조달, 자본제휴 등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상장이 필수다. 삼성SDS도 IPO 계획을 밝히면서 이 점을 거듭 강조했다.
삼성SDS가 ICT부문 유망업체라는 점은 이재용 부회장이 개인 최대주주라는 점과 맞물려 자연스레 삼성 후계구도와 연결된다. 삼성 후계구도의 아킬레스건은 오너 일가가 사실상 지주회사인 삼성에버랜드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주력 계열사를 지배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삼성SDS가 상장해 기업가치가 높아지면, 이 부회장 등의 지분가치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삼성그룹 지배구조에서 삼성SDS가 직접 다른 기업을 지배하지는 않지만, 이 부회장 등의 지분가치가 높아지면 후계구도 과정에서 다른 주력 계열사의 지배력을 높일 수 있는 ‘실탄’이 된다.
장외가격 15만 원 기준으로 이 부회장 등의 삼성SDS 지분가치는 약 2조 2000억 원이다. 상장이 되면 이 가치는 더 높아지고, 향후 삼성SDS가 ICT부문에서 성과를 낸다면 더욱 그 가치는 빠르게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SDS의 주당순자산가치(BPS)는 5만 187원, 주당세전이익(EPS)은 6423원이다. SK그룹에서 삼성SDS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SK C&C의 BPS와 EPS는 각각 4만 5610원, 5032원이고 현 주가는 15만 원선이다. 삼성SDS의 주당 기본가치가 SK C&C보다 더 높고, 미래도 더 유망하다는 점에서 상장 후 주가가 20만 원은 너끈히 넘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상장 시 삼성SDS의 시가총액은 최소 15조 원에 달하면서 삼성전자, 삼성생명에 이어 그룹 내 3위 규모로 단숨에 올라서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18조 원대에 머무르고 있는 삼성생명을 앞지를 가능성도 있다.
삼성SDS가 상장 방식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 부회장 등의 지분율이 떨어지는 신주발행보다는 구주매출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소액주주 지분율이 30%를 넘는 만큼 주식 분산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굳이 주식을 더 발행할 필요성도 낮다. 구주매출이 이뤄진다면 17.08%를 보유한 삼성물산, 7.88%를 가진 삼성전기의 물량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재용 부회장 남매는 지분가치를 좀 더 높이기 위해, 삼성전자는 사업상 협력을 위해 보유지분을 유지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이 부회장 남매는 가치가 높아진 삼성SDS 지분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대목에서 주목할 곳이 삼성물산이다. 상장 후 삼성SDS 주가가 20만 원까지 올라 3조 원대 자금을 만든다고 해도 시가총액이 200조 원에 달하는 삼성전자 지분율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에 비해 시가총액 10조 원대인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기에는 충분하다. 삼성물산 주주구성은 삼성SDI 7.18%, 삼성생명 4.65%, 이건희 회장 1.37% 등으로 삼성의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14%에 불과하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06%를 가진 주요주주며, 삼성엔지니어링, 제일기획, 삼성종합화학, 삼성석유화학 등의 최대주주다.
이는 지난 8일 삼성SDS 상장 추진 발표 이후 삼성물산 주가가 유달리 급등한 데서도 확인된다. 현재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전기 등 삼성SDS 법인주주들은 보유지분 가치를 주당 6만 9307원으로 평가하고 있다. 상장이 이뤄지면 엄청난 차익을 거두게 된다. 그런데 삼성물산의 주가 상승폭이 삼성전기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삼성SDS 주가가 20만 원까지 오르면 이 부회장은 1조 7400억 원, 이부진 이서현 사장은 각각 6000억 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하게 된다. 차입까지 할 경우 삼남매 가운데 누구든 삼성SDI의 삼성물산 지분을 매입할 만한 재력을 갖추는 셈이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삼성전자는 이미 삼성생명 등이 지배하고 있고, 10%가 넘는 자사주도 보유하고 있어 다양한 방법으로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다. 반면 오너 일가가 삼성물산 직접 지배력 강화에 나선다면 ‘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효과도 있다”고 풀이했다.
이부진 이서현 사장은 각자 자신들의 몫인 호텔·유통과 패션·서비스 부문의 지배력을 확보할 실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이부진 사장은 호텔신라 최고경영자이지만, 보유지분이 없다. 삼성 관계사의 호텔신라 지분율은 17.1%로 그 가치는 5600억 원이 조금 넘는다.
이서현 사장도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자산이 약 1조 원인 점을 감안, 30%의 지배력을 확보하려면 3000억 원이면 족하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제일기획 지분 12%의 가치도 3340억 원 정도다. 두 자매 모두 삼성SDS 지분가치로 현재 맡은 사업부문 지배력을 사기에 충분하다.
일각에서는 이번 상장을 통해 불린 재산으로 5조 원대로 추정되는 상속세를 충당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는다.
증권업계에서는 이번 상장 주관사를 누가 맡을지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 단위의 주식매출이 이뤄지는 만큼 수백억 원의 수수료 수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증권사들에게는 가뭄의 단비가 될 수 있는 ‘빅딜’인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미 삼성카드, 삼성생명 등의 상장을 도맡았던 한국투자증권이 국내 부문을 대표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해외에서는 골드만삭스가 유력하다. 삼성SDS는 5월 중 대표주관사를 설정하고 구체적인 기업공개 일정도 밝힐 예정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