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박근혜 의원, 남경필 의원, 원희룡 의원 | ||
최 대표 낙마 이후 한나라당엔 완전히 새로운 주도세력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권력을 잃어가는 측과 새로이 권력을 획득해가는 세력 간의 역전현상은 권력게임 고유의 재미를 보여주는 동시에 정치의 무상함도 느끼게 만들고 있다.
이번 한나라당의 ‘혁명’ 주도세력은 원래 반대세력이라기보다 최병렬 지지세력 내부에서 이탈한 세력이 주축이었다는 점에서 더욱더 정치의 비정함을 보여주고 있다.
최 대표 체제 붕괴 이후 떠오른 주도세력은 누구이고, 몰락한 그룹은 누구일까.
최 대표 체제 이후와 관련해 가장 주목을 받게 된 인물은 후임 대표에 거론되는 박근혜, 오세훈 의원이다. 한나라당이 전당대회를 치를 경우 일단 박 의원의 대표 당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이번 전당대회는 세력간의 대결이기보다 차기 총선에서 득표에 가장 도움이 되는 대표를 뽑는 성격을 지닌다. 이른바 국민지지도가 대표 선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소장파들도 여론조사를 통한 대표 선출을 검토하고 있다.
<문화일보>가 2월16일자로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차세대 리더 중 한나라당 출신으론 박근혜 의원이 지지율 17.4%였으며, 이명박 서울시장 12.9%, 홍사덕 총무 8.2%, 손학규 경기지사 7.4%, 최병렬 대표 7.2% 순이었다.
이 시장과 손 지사는 이미 한나라당 대표경선에 출마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에선 ‘박근혜 대표’ 가능성이 높아진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대구에서 라이벌인 강재섭 의원조차 이미 “박근혜 의원을 대표로 밀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상당수 소장파들도 내심 박 의원을 밀고 있다. 박 의원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보수세력과 개혁세력으로부터 동시에 지지를 받고 있는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
그러나 최근 박 의원의 급부상에 대한 반작용 때문인지 당내 일각에서 박 의원 주변과 관련된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돌고 있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남아 있는 상황이다.
▲ 왼쪽부터 맹형규 의원, 김무성 의원, 강재섭 의원 | ||
소장파는 박근혜 의원과 오세훈 의원 간의 경선매치를 이상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오 의원은 이미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마당이라 대표직에 나서는 게 이상하다며 거절하고 있다.
박 의원과 오 의원이 ‘거사’의 과실을 따먹게 되는 경우라면 거사의 직접적 주도세력은 누가 뭐래도 남경필, 원희룡 의원 등을 들 수 있다.
남 의원은 이번 거사의 사실상 주동자였으며, 싸워야 할 때와 타협해야 할 때를 잘 판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원래 최 대표의 지지세력이던 남 의원이 최 대표 퇴진을 모질게 밀어붙일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남 의원은 최 대표가 퇴진을 거부하는 순간 최 대표를 더욱더 퇴진쪽으로 몰아붙이는 데 앞장섰다.
원희룡 의원도 상임운영위원직을 던지며 소장파의 거사에 선봉장 역할을 했다. 원 의원은 원로의원들 틈에서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어린애’ 취급을 받아왔으나 이번에 이미지를 완전히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 소장파와 함께 ‘혁명군’의 또 다른 주도세력으론 맹형규, 김무성 의원이 꼽힌다. 초반에 수도권 초·재선 모임을 가진 뒤 최 대표에게 ‘퇴진’ 의사를 전달하러 간 장본인들이다.
거사의 성공에 막판 쐐기를 박은 인물로 강재섭 의원이 꼽힌다. 강 의원은 영남권 의원들이 최병렬 지지모임을 가지면서 팽팽한 균형을 이루던 때 최 대표 퇴진을 요구하면서 소장파에 가세했다. 강 의원은 평소 최 대표를 지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의 돌연한 행동이 주목받았다.
강 의원의 예상 밖 행보로 영남권 의원들도 급속히 소장파 지지쪽으로 쏠렸다. 벌써부터 당내에선 새 체제가 형성되면 강 의원이 가장 큰 발언권을 행사할 것이란 추측이 나돌고 있다. 강 의원은 개인적으로 최 대표의 독선적 당무운영 때문에 마찰을 빚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진 중에선 양정규 의원이 초기에 신속하게 소장파 지지를 선언, 대세가 최 대표 퇴진으로 흘러가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거사에는 이재오 의원이 커다란 몫을 했지만 당내에 견제가 심해 전면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 의원은 총장시절 워낙 고집스럽게 당을 운영한 탓에 당내에 많은 의원들과 등을 졌다. 이 때문에 이 의원은 최 대표 낙마가 현실화된 이후에도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 지난 22일 최병렬 대표가 전당대회 후 대표직 사퇴와 백의종군 의사를 밝혔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최 대표는 제1당의 대표로서 정국운영에 막강 권한을 가진 동시에 총선 이후 개헌을 통해 내각을 쥐는 방안까지 검토하는 등 다양한 그림을 그리다가 일격을 당한 셈이다.
당내에선 최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 이후 대권 욕심을 갖게 된 것을 결정적인 낙마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최 대표는 이미 공천심사위로부터 국회의원 불출마 결정을 받은 상태인 만큼 국회의원직과 대표직을 동시에 잃게 될 운명에 처했다. 하지만 최 대표가 마지막에 살신성인의 자세를 보일 경우 비례대표로 예우받게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최 대표의 좌우 날개는 홍준표 의원과 김문수 의원이다. 이들도 최 대표 몰락과 함께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홍 의원의 경우 특유의 독설적 어법 때문에 당내에 비토세력을 많이 갖고 있다.
벌써부터 소장파들은 최 대표뿐 아니라 홍준표 의원을 지목, 당직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홍 의원은 최 대표가 위기에 몰릴 때 끝까지 최 대표를 옹호했다.
김문수 의원 역시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김 의원은 상대적으로 당무에 관여한 적이 없기 때문에 홍 의원만큼 비토세력을 많이 만들진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 최 대표 낙마사태의 근본원인 중에는 공천 반발도 있는 만큼 김 의원도 입지에 영향을 받게 됐다. 김 의원은 한때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당내 위상은 급격히 축소될 전망이다.
임태희 대표비서실장 역시 어렵게 됐다. 이방호 김용갑 의원 등 최 대표를 적극 지원했던 의원들도 입지 축소가 예상되고 있다. 최 대표 퇴진은 개인의 무능력보다 시대적 요구에 굴복한 측면이 크다. 그런 점에서 연령이 높고 다선인 의원들은 최 대표 퇴진 국면에서 향후 입지를 보장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에서 당 대표 얼굴 변화뿐 아니라 그야말로 ‘주도세력의 전면교체’라는 거대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