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잘나간 말’ 다시 보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황금탑은 총 8전을 치른 경주마다. 지난 연말에 ‘새해에 두각을 나타낼 기대주’로 소개했을 정도로 데뷔 초엔 연승을 달려온 마필이다. 지난해 4월 이상혁 기수가 기승해 주행검사를 받았고 데뷔전에선 유미라 기수가 기승해 7위를 했지만 이후엔 내리 3연승을 올렸다. 1300, 1300, 1400미터 순으로 출전했고 기록도 좋았다. 특히 3연승의 마지막 경주였던 지난해 11월 경주에선 문세영 기수가 기승해 걸출한 선행마인 허스트캠프(현재 국2)와 문학스피드(외2)를 외곽선입으로 압도하면서 큰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그후 좌후제염이라는 질병으로 컨디션이 저하돼 3개월간의 휴양을 했다. 그러다 올 2월에 복귀전을 치렀지만 빠른 페이스에 말려 14두 중 8위를 했고, 이후 3월, 4월 두 차례 더 경주에 출전했지만 하위권에 그쳤다.
그런데 이번 5월 11일 경주에선 예전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1위를 했다. 앞선에 가세한 이후 외곽선입으로 앞서가던 말을 압박하고 제압하는 예전의 그 와일드한 스타일 그대로였다.
그렇다면 황금탑이 그동안 부진했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여러 가지 원인이 제기되고 있지만 필자가 보기엔 너무 빠르고 강한 상대를 만났던 데에 원인이 있었다. 자신보다 빠른 상대들이 많은 편성을 번번이 만나 앞선에 가세하기가 쉽지 않았고, 또 그 말들의 중속 또한 뛰어났기 때문에 중간에 따라잡기도 수월치 않았다. 물론 황금탑 자신도 예전만큼 빠르게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승부포기로 의심할 만한 구석도 없지 않았지만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 필자의 분석이다.
그런데 이번 경주는 달랐다. 다이샨이라는 마필과 킹덤마인드가 빨랐지만 황금탑도 그 정도는 됐고 출발 후 페이스만 유지하면 선입권은 유력했고, 막판의 파워 또한 밀릴 게 없었다. 그동안 황금탑이 순위에선 많이 처졌지만 기록이나 마필 능력면에선 안정적인 면모를 보여왔기 때문에 이 정도 전개가 나오는 흐름이라면 충분하다는 평가를 했다. 새벽조교 때의 컨디션 또한 좋았다. 한마디로 강적 틈을 벗어난 마필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편성을 만나 일군 ‘예고된 이변’이었다는 것이 필자의 분석이다. 황금탑은 이날 복승식 30.2배, 쌍승식 56.1배의 배당을 터트렸다.
5월 11일 열린 렛츠런파크 서울 경주에서 추입작전으로 우승한 황금탑(왼쪽)과 선행작전으로 우승한 금강불패. 한국마사회 동영상 캡처.
금강불패는 근성이 살아난 케이스다. 16전2/3/0/1/4의 전적이 말해주듯 예전엔 곧잘 뛰었지만 근래엔 기복이 심했다. 특히 이기웅 기수가 기승해 우승한 지난해 7월 이후엔 백약이 무효할 정도로 막판에 걸음이 심하게 무뎌지는 모습을 보였다. 유승완, 오경환, 이상혁, 문세영 등 내로라하는 일류기수들을 태웠지만 살아날 기미가 없었다. 게다가 이번 경주는 1800미터로 거리가 다시 늘어 쉽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였다. 하지만 금강불패는 1위를 차지했다.
혹자는 ‘그동안 댕겨놨다가 이번에 때려먹었다’고 악평을 했지만 필자가 보기엔 선행찬스와 살아난 투지 두 가지가 상승작용을 한 것으로 읽혔다.
사실 이 경주는 금강불패 외엔 빠른 말이 없었다. 스마트퀸이라는 말이 순발력이 비슷해 초반에 경쟁할 가능성도 있었지만 이 말은 원래 선행마가 아닌 데다 복귀전을 치르는 휴양마라 의도적으로 고춧가루를 뿌릴 이유가 없었다는 점에서 금강불패의 편한 선행이 예상됐었다.
게다가 금강불패는 그 어느 때보다 새벽훈련에 공을 들였다. 무려 14일간 훈련을 하면서 강약을 조절하며 정성을 들였다. 그 결과 다른 때보다 집중력을 보였고 스스로 뛰려는 투지도 좋아졌다. 필자는 이 마필의 새벽훈련을 보면서 입상을 자신할 수는 없었지만 기수가 마음만 먹는다면 ‘무조건 선행은 갈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을 받았다.
실전에서도 금강불패는 경주 초반부터 맨 앞에 서서 단 한번도 추월을 허락하지 않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김시용 프리랜서
현장 컨디션과 경기력 ‘상태’ 안 좋아도 ‘기본’ 하는 말 있다 지난 10일 렛츠런 파크 서울 토요경마에서 압도적 인기를 모았지만 상태가 공히 저조했던 불안한 인기마가 두 마리 있었다. 1경주의 6번 영웅포스와 2경주의 택티컬레이가 그 주인공인데, 영웅포스는 부진했고 택티컬레이는 멋진추입으로 1위를 차지했다. 베팅을 했던 현장전문가들이 아예 지우거나 뒤로 돌렸던 말들인데 왜 이런 판이한 결과가 나왔을까. 정말로 한 마리는 승부를 회피했고, 한 마리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일까. 현장에서 20년 가까이 경주마의 컨디션을 살펴온 필자의 생각으로는 개개 마체의 특성과 과거의 컨디션을 꼭 알아야만 의문을 풀 수 있다는 결론이다. 영웅포스는 새벽훈련 때부터 직전과는 판이하게 컨디션이 나빠보였다. 활기도 없었고 걸음도 밋밋했다. 경주로에 출장하는 모습도 영 매가리가 없어 보였다. 직전에는 활기차고 씩씩했기 때문에 컨디션 저하가 분명해보였다. 게다가 직전보다 훈련량이 적고 훈련강도가 약했음에도 체중이 4kg 줄었다. 마체중-4kg 자체는 문제가 안되지만 훈련이 약했는데 빠졌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봐주기 어려웠다. 결과를 떠나서 이런 말에 힘을 싣는 베팅은 무보해 보였다. 반면에 택티컬레이는 달랐다. 똑같이 컨디션이 저조해 보였지만 새로운 현상이 아니었던 것. 데뷔 이후 한 번도 좋아보였던 적이 없는 말이고, 활기가 부족한 상태에서도 꾸준하고 안정적인 경주력을 보여왔다. 상태가 나빠도 지금까지의 경주력을 발휘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반증이었다. 그리고 이번 경주의 상대마들은 지금까지 겨뤘던 말들에 비해 상당히 약했다. 실전에서도 택티컬레이는 딱 예전만큼 뛰면서 상대들을 제압했다. 필자가 이 두 마리의 경주마들을 언급하는 것은 다음에 또 속지 말라는 취지에서다. 영웅포스는 이번에 비록 부진했지만 컨디션이 회복되면 언제든지 예전기량을 발휘할 수 있고, 택티컬레이는 컨디션에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물론 영웅포스가 다음에 또 이번처럼 컨디션이 저조하다면 무조건 지워야 할 것이다. 택티컬레이의 경우는 기본기량이 좋아 아직 힘이 덜 찬 상황에서도 잘 뛰어주고 있는 만큼 활기가 생기고 걸음에 힘이 붙는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상향평가를 해야 할 것이다. 두 마리 모두 아직 어리기 때문에 컨디션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