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볼판정, 더 이상은 못참아!”
‘1억 3000만 달러 사나이’ 추신수는 현지 언론으로부터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은 선수”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추신수와 인터뷰를 할 즈음 텍사스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3연전을 치르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3연전 동안 추신수는 주심의 스트라이크 판정에 조금씩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명백한 볼인데 스트라이크를 선언하는 바람에 볼넷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삼진아웃으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문제는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심판 판정에 대한 얘기를 시작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심판 판정에 대해 격한 표현을 써가며 불만을 제기했다. 기자도 현장에서 지켜봤지만, 확연히 빠진 공들을 스트라이크로 선언하더라.
“내가 알기로는 홈에서 치른 5경기에서 10개 이상의 삼진이 나왔고, 그중 대여섯 개는 볼넷 될 게 삼진으로 판정되었다. 투 스트라이크 이전의 애매한 판정은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는 볼을 스트라이크로 콜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물론 심판이 일부러 그럴 리는 없겠지만, 잘못된 판정이 계속 이어진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솔직히 짜증났었다.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 컨디션을 만들고 있고, 뭐라도 만들어보려고 노력 중인데 그런 볼 판정이 나오면 허무하고, 내가 기울인 노력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된다. 지금까지 메이저리그 데뷔 이래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한 번만 더 말도 안 되는 판정을 내릴 경우, 퇴장을 각오하고 항의할 것이다.”
몇 차례 불리한 볼 판정으로 불만을 품던 추신수가 지난 15일 심판하게 항의하는 모습.
―이전에도 가끔 심판의 볼 판정에 대해 가벼운 항의를 한 적은 있었다.
“그때와는 다르다. 지금은 출루율이 아메리칸리그 1위다. 그 기록은 존중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일부 심판들은 마치 내가 메이저리그에 방금 올라온 신인 선수처럼 판정을 내린다. 그런 판정들이 승패에 영향을 미친다면 잘못된 거 아닌가.”
―혹시 동양 선수라서 판정에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나.
“그런 부분이 없진 않을 것이다. 외국인선수가 한국에서 ‘용병’으로 활약할 때를 떠올리면 된다. 그건 내가 안고 가면 된다. 그러나 기록이나 경력은 존중해줘야 한다. 심판들도 나이가 어리거나 이제 막 데뷔한 신인 심판들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무시한다면 그들 또한 선수들 상대하기가 힘들지 않겠나. 1억 3000만 달러의 FA 계약을 맺고 출루율과 타율에서 기록을 올리고 있는 선수한테 어이없는 볼 판정을 내린다는 건 그들이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심판이 애매한 판정을 계속 할 경우 볼을 기다리지 못하고 무조건 쳐야 한다. 좋은 공이든, 나쁜 공이든 심판의 콜 때문에 일단은 치고 본다.”
―심판들이 볼을 스트라이크로 선언할 때도 있지만, 스트라이크를 볼이라고 부른 적도 있지 않았나.
“물론 그런 콜로 인해 볼넷으로 나간 적은 있었지만, 스트라이크 오심에 비하면 그건 터무니없이 부족한 횟수다. 하늘과 땅 차이다. 야구에서 제일 중요한 건 심판의 볼 판정이다.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에 따라 투수의 공도 달라지고 경기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분위기를 바꿔 보자. 보스턴 레드삭스전에서 반가운 얼굴을 봤을 것 같다. 클리블랜드 시절 절친으로 유명했던 그래디 사이즈모어(4회 연속 20홈런-20도루 기록 달성,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3회 연속 출전, 2회 골드글러브 수상, 1회 실버슬러거 수상)가 보스턴 소속으로 활약하고 있지 않나.
“4월 보스턴 원정 경기 때 먼저 인사를 나눴다. 그동안 숱한 부상과 수술로 인해 선수생활이 끝나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와 줘 진심으로 고맙고 기뻤다. 메이저리그 루키나 다름없었던 클리블랜드 시절, 내 눈에 비친 사이즈모어는 최고의 타자였다. 그는 팀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고 있었고, 그에 걸맞은 활약을 펼쳤다. 당연히 그는 나의 롤모델로 부각됐었다. 그랬던 그가 2009년부터 부상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졌고, 클리블랜드에서 방출됐으며 2년여 동안 메이저리그는 물론 마이너리그에서 사라졌다가 올 시즌 보스턴 유니폼을 입었다. 그가 4년간 총 7차례의 수술을 받고 재기했다는 건 기적이나 다름없다.”
―지금은 사이즈모어가 추신수 선수의 입지를 부러워할 것만 같다.
“인생은 돌고 도는 거 아닌가. 사이즈모어의 나이가 많지 않기 때문에 몸만 건강하다면 곧 이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나도 사이즈모어를 부러워한 적이 많았다.
-돌이켜보면 신시내티 레즈 시절 더스티 베이커 감독이 추신수 선수에게 ‘1번 타자’를 맡겼던 부분이 ‘신의 한 수’였던 게 아닌가 싶다. 지금은 ‘추신수=1번타자’라는 공식이 성립되지 않았나. 다른 타순의 추신수는 언뜻 떠올려지지 않는다.
“신시내티에서 생활할 때 내가 가장 듣기 좋아했던 말이 있다.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이 모여서 항상 이렇게 외쳤다. ‘추가 가면 우리도 간다!’라고. 즉 1번타자가 출루를 하면 자신들도 그 뒤를 따르겠다는 다짐이었다. 선수들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으면 정말 행복했다. 더스티 베이커 감독에 대한 고마움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야구보다는 야구 외적인 부분에 많은 영향을 미치신 분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감독 복이 있는 것 같다.”
추신수가 끝내기 볼넷을 성공시킨 후 동료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댈러스에 와서 보니까 프린스 필더의 두 아들과 추신수 선수의 아들 무빈 군이 야구장에서 게임을 하며 즐겁게 어울려 놀더라. 세 명의 아이들이 선수들의 훈련 전 야구장에서 뛰어 노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선 상상도 못하는 장면이다.
“그렇게 세 명과 다르빗슈 유랑 종종 야구놀이를 한다. 다르빗슈가 공을 던지면 필더의 두 아들과 무빈이가 타자로 나선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우리 팀 에이스가 다른 선수의 아이들을 챙기는 모습에 감동한 적도 있었다. 아이를 야구장에 데려오는 건 늘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행여 다른 선수들에게 불편을 초래할까 싶어 자주 주의를 주기도 한다. 그런데 필더 아이들을 보니까 우리 무빈이는 정말 얌전하더라(웃음). 신시내티에서는 베이커 감독의 배려에 의해 무빈이와 함께 더그아웃에 앉아 있기도 했지만, 텍사스에선 그게 여의치 않아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다르빗슈와 추신수 선수의 활약으로 인해 레인저스에는 한일 투타 선수들 덕분에 먹고 산다는 농담도 나돈다.
“나도 그런 얘길 들은 적이 있다. 글쎄, 둘 다 못한다는 소리보다는 둘 다 잘한다고 해서 다행이다. 다르빗슈를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투수들 중 가장 먼저 출근해서 통역과 함께 꼭 달리기를 하며 체력 훈련을 보완한다. 성실하고 실력이 뛰어나고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들 중 넘버원이다. 동양 선수가 팀의 에이스가 된다? 그건 정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르빗슈는 다른 동양 선수들과는 달리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더 친근감이 생겼다. 다르빗슈는 자신의 언행에 책임을 지기 위해 더욱 열심히, 치열하게 훈련하고 준비하고 마운드에 오른다. 같은 운동선수로서 참으로 매력적인 선수이다.”
―그렇다면 둘이 많이 친해진 건가.
“타자와 투수의 훈련 스케줄이 다르다보니 서로 부딪힐 일이 없다. 그런데 지난 번 발목 부상으로 벤치만 달구고 있을 때 다르빗슈랑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때 원정 가면 서로 시간 내서 식사하자는 약속도 했다. 다르빗슈가 한국 음식을 꽤 좋아한다고 말하더라.”
―지난 번 발목 부상을 당했는데, 아직 부상에서 낫지 않았다고 들었다. 지금 어떤 상태인가.
“썩 좋지 않다. 경기 내내 통증을 느끼면서 뛰고 있다. 제대로 쉬어야 통증이 회복되는데 팀 사정상 지금 전력에서 빠질 수가 없다. 그렇다보니 발목 통증이 나아지질 않는다. 요즘 도루도 못한다. 웬만하면 안타 치고 달려 나갈 때 한 베이스라도 더 뛰려고 노력하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자제하는 편이다. 더 악화되면 아예 경기에 나가지도 못하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을 하는 중이다.”
다르빗슈
―지난 시즌에는 원정 경기보다 홈 성적이 더 좋았다. 그런데 올시즌에는 그 반대의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2014년 5월 16일 현재 홈-2할3푼8리, 원정-4할2푼3리).
“아직 30여 경기밖에 치르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지난 시즌과의 성적을 비교한다는 건 시기상조 아닌가. 좌투수를 상대로 타율이 높은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는데(좌투수-3할7푼5리, 우투수-2할7푼5리) 그 또한 시즌 중반 넘어서나 할 수 있는 얘기다. 4~5월까지는 팀들마다 시즌에 적응하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성적을 갖고 얘기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추신수는 2011년 클리블랜드 시절 샌프란시스코와의 경기에서 상대 투수 조나단 산체스로부터 엄지손가락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은 바 있다. 그 후부터 좌투수 트라우마가 존재했고, 좌투수를 상대로 저조한 성적을 냈었다. 그러나 올해는 확 달라졌다. 지금은 ‘좌투수 킬러’라는 말이 붙을 정도다. 그는 그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빈볼을 맞은 후 그에 대한 심적 공포가 컸었던 모양이다. 좌투수 상대로 타석에 들어서면 집중이 안 되고 이상하게 산만해졌다. 그런데 올 시즌부터는 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공 맞는 데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건 연습 때문인 것 같다. 스프링캠프 동안 좌투수를 상대로 숱한 연습을 반복하면서 나도 모르게 자신감이 생겨난 모양이다. 문제는 오른손 투수를 상대로 타율이 저조하다는 것이다. 신은 사람에게 모든 걸 다 주지 않는 것 같다(웃음).”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위상은 라커룸의 크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팀의 핵심 멤버들한테는 1개가 아닌 2개의 라커가 배정된다. LA 다저스의 커쇼도 가장 좋은 위치에 2개의 라커를 붙여 사용한다. 그런데 추신수가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처음으로 2개의 라커를 할당받았다. 원정 경기 때의 선수단 숙소도 추신수는 일반 선수들과 달리 스위트룸을 이용한다. 몸값에 걸맞은 활약을 펼치며 텍사스 레인저스의 1번타자로 자리를 잡은 추신수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미국 댈러스=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삼성 출신 저스틴 저마노 텍사스서 방출 추 “한국팬 트위터글 해석 부탁했었는데…” 저마노는 삼성 안지만의 안부를 궁금해하며 기자에게 안지만의 연락처를 아느냐고 물었다. 서로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한국에 있는 동안 자신을 가장 많이 웃게 했던 동료였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저마노는 추신수와도 깊은 인연이 있었다. 마이너리그 시절 추신수를 상대로 공을 던진 적도 있었고, 클리블랜드에서는 함께 뛰었다. 그런 저마노가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추신수와 해후를 했으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그러나 그 시간은 짧아도 너무 짧았다. 빅리그 복귀 4일 만에 방출됐으니 말이다. 추신수는 “얼마 전 한국 팬이 트위터에 한국어로 인사를 남겼다며 내게 해석을 부탁했었다”면서 “그가 오랫동안 이 팀에 있기를 바랐는데, 참으로 운이 없는 선수인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