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영월·평창과 태백·정선이 한 개의 지역구로 합쳐지는 등 총 17개 선거구가 인근 선거구와 통·폐합돼 해당 지역구 의원들 간에 ‘부담스러운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반면 분구가 확정된 지역에서 출마 채비를 갖춰온 인사들은 거물급 인사와의 충돌을 피할 여지가 생기는 등 운신의 폭이 넓어진 상황이다. 서울 노원 등 3개 지역구는 기존의 갑·을 2개 지역에서 갑·을·병 3개 지역으로 분구됐고 서울 성동 등 21개 지역구는 갑·을 2개 지역으로 분구돼 이 지역에서 표밭을 다져온 인사들의 총선 준비에 한결 여유가 생긴 것. 이런 까닭에 정가에선 ‘이번 선거구획정이 여러 사람 살렸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다.
▲ 이번 선거구 획정에서 가장 큰 수혜를 받은 것으로 평가되는 이강철 전 상임위원(왼쪽)과 염동연 전 특보. | ||
노 대통령 핵심측근인 열린우리당 이강철 전 상임중앙위원은 대구 동 지역이 분구돼 상대적으로 부담이 줄어들었다.
이 지역 출마를 준비해온 한나라당 박창달 의원이 동 을 지역에 나서게 되면서 이 전 위원은 동갑 출마를 결정한 상태. 이 전 위원으로선 현역의원과의 맞대결 부담을 덜고 대구·경북(TK) 지역 열린우리당 바람몰이에 나설 수 있는 여유를 되찾게 된 셈이다.
노 대통령 핵심측근인 염동연 전 특보도 선거구 분구의 ‘수혜자’로 거론된다. 염 전 특보는 당초 광주 북 갑에서 출마해 민주당 중진 김상현 의원과 맞붙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광주 서 지역이 분구되면서 서 갑 지역으로 방향을 틀었다.
염 전 특보는 이 지역에서 민주당의 이정일 전 구청장과 대결을 벌이게 되고, 서구의 기존 지역구 의원인 열린우리당 정동채 의원은 서 을 지역에 출마할 예정이다. 두 사람이 시너지효과를 발휘해 서구에서 ‘노풍’을 재점화한다는 구상.
2개 지역으로 분구가 된 부산 남 지역에선 현 지역구 의원인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이 남 을 지역에 출마할 것으로 보여 공천 경합을 벌이던 열린우리당 후보들이 상대적으로 숨통이 트인 상태.
열린우리당에선 김용철 전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박재호 전 청와대 정무2비서관이 공천을 신청한 상태인데 김씨가 갑 지역에, 박 전 비서관이 을 지역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박범계 전 법무비서관, 권오갑 전 과기부 차관 등 열린우리당에서 ‘올인’전략 차원으로 영입한 정부관료 출신 인사들이 경선에 패하는 이변이 벌어진 것과는 대조적으로 박재호 전 비서관은 치열한 ‘내부 전쟁’을 피하고 본선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호기를 맞게 됐다.
수원지역 출마 준비를 해왔으면서도 지역구를 정하지 못했던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는 수원 영통 지역구가 신설되면서 이 지역에 나서게 돼 역시 현역의원과 맞붙는 부담을 덜게 됐다.
지난해 노무현 정부 출범에 맞춰 경기 의정부 지역구 의원직을 떠나 청와대로 들어갔던 문희상 전 비서실장은 1년 만에 다시 의정부로 돌아와 출격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이 지역이 분구가 되면서 현 지역구 의원인 홍문종 의원과의 대결을 피할 수도 있게 됐지만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문 전 실장이 가능성 있는 신인에게 신설 지역구를 내주고 자신은 홍 의원과 맞붙을 전망”이라고 밝힌다.
한편 지역구 분구로 인한 ‘웃음소리’는 한나라당에서도 들려온다. 특히 최근 당내 공천 심사 과정에서 ‘친 이회창계’ 전력 탓에 공천 탈락설까지 나돌았던 일부 인사들의 ‘운신의 폭’이 넓어질 전망이다.
노원 지역은 기존의 갑·을 선거구가 갑·을·병으로 3분할되면서 권영진 전 이회창 후보 보좌역이 ‘혜택’을 받게 됐다. 현 지역구 의원인 민주당 함승희 의원과 열린우리당 임채정 의원이 각각 노원 갑 지역과 병 지역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져 한나라당 노원 을 지역 공천을 받은 권 전 보좌역은 ‘강적’과 맞붙는 불운을 피할 수 있게 된 상황이다.
김기배 나오연 의원 등 이른바 ‘창(昌) 사람들’이 공천에서 탈락하면서 당내에서 공천배제설까지 나돌았던 이 전 총재의 핵심측근인 하순봉 의원도 분구의 덕을 볼 것 같다. 하 의원 지역구인 경남 진주가 분구되면서 현지에서 높은 경쟁력을 지닌 하 의원의 입지가 다시금 넓어지고 있는 것. 진주 을 지역엔 이미 최구식 국회의장 공보수석이 공천을 받았으며 하 의원은 진주 갑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 송파 지역도 기존 2개 지역구가 3개로 늘어났다. 지난해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서 서청원 전 대표를 지원했던 맹형규 의원의 경우 현 지역구(송파 을) 수성 전망이 밝아졌다.
이회창 전 총재 측근이었으며 맹 의원과 마찬가지로 대표경선 당시 서 전 대표를 지원했던 비례대표 이원창 의원이 송파 병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박계동 전 의원도 이 지역 출마를 원하고 있다. 송파 을의 민주당 김성순 의원과의 대결을 피해 누가 송파 병 공천을 차지할 것인가가 관심사다.
분구로 인해 치열한 당내 분쟁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는 곳도 있다. 전북 익산 지역의 경우 민주당에선 현 지역구 의원인 이협 의원과 이 지역에서 지역구 의원을 지낸 전력의 비례대표 최재승 의원 간의 내부경쟁이 불가피했지만 분구 덕에 교통정리가 가능해졌다. 열린우리당에서도 조배숙 전 의원이 단수 후보로 선정되자 공천경합자들이 ‘낙하산 공천’ 운운하며 집단 반발 움직임을 보였지만 분구로 인해 내부 잡음이 수그러들었다.
전주 완산 지역 역시 비슷한 사정. 민주당에서 총선용으로 영입한 이무영 전 경찰청장이 이 지역 단수 후보로 확정되자 경합을 벌였던 유철갑 전 도의회의장이 “무소속 출마 불사”를 선언해 경색 국면이 벌어졌다. 그러나 분구가 되면서 두 사람이 선거구를 나눠 가질 수 있게 됐다. 이젠 ‘밥그릇 싸움’ 대신 완산 지역 현 지역구 의원인 열린우리당 장영달 의원과 누가 맞붙을 것인가를 두고 ‘눈치 싸움’이 벌어질 전망.
이번 선거구 조정으로 분구가 된 대구 달서 지역에선 공천에서 탈락한 한나라당 대구·경북(TK)권 인사들의 무소속 도전 여부가 관심사다. 박시균 박세환 박승국 의원 등 한나라당 TK권 공천 탈락자들이 중심이 된 ‘무소속 연대’ 결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이들 중 신설 지역구인 달서 을에 도전할 인사가 나올 가능성이 지역 정가에서 점쳐지고 있는 것.
한나라당 공천탈락 인사들과의 무소속연대 여부를 검토중인 박철언 전 장관과 이의익 전 대구시장 등 옛 자민련 인사들의 달서 을 지역 도전 가능성도 거론된다. 분구로 인해 ‘무(無)공천파’ 인사들의 ‘전의’가 더욱 불타오르고 있는 셈이다.
분구 덕분에 부담스러운 상대를 피할 수 있게 된 케이스는 민주당에도 있다. 경기 안산 을 지역에선 민영삼 부대변인이 당지도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분당 주역’인 열린우리당 천정배 의원과의 맞상대를 준비해왔다. 그러나 안산 을 지역이 분구됨에 따라 민 부대변인은 굳이 부담스러운 천 의원과 맞상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됐다.
인천 계양 출마를 준비해온 민주당 비례대표 박상희 의원도 분구로 인해 기존 지역구 의원인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과의 맞상대를 피할 수 있게 됐다.
이렇듯 지역구 분구로 기쁨을 누리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지역구 통·폐합으로 인해 얼굴을 찌푸리게 된 의원들도 있다. 강원도 영월·평창 지역은 인근의 태백·정선과 한 지역구로 묶이게 됐다.
영월·평창 지역구 의원인 한나라당 김용학 의원과 태백·정선 지역구 의원인 열린우리당 김택기 의원이 ‘둘에서 하나로’ 줄어든 지역구 의원직을 놓고 혈전을 벌이게 된 것.
충남 청양·홍성 선거구는 인근 지역구 2곳과 합쳐져 청양·부여 선거구와 홍성·예산 2개 선거구로 재편성됐다. 현재 청양·홍성 지역구 의원은 한나라당 이완구 의원이고 부여 지역구 의원은 자민련 김학원 의원, 예산 지역구 의원은 자민련 소속이었다가 무소속이 된 오장섭 의원이다. 지난 대선 당시 자민련에서 한나라당으로 옮겨온 이완구 의원은 ‘옛 동지’인 두 현역의원 중 한 명과 대결을 벌여야 하는 입장이 됐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