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해고 35억 배상소송’ ‘짐승 차장’ 성추행이 발단
우리은행 뉴욕지점에서 대형 성추문 사건이 터졌지만 사측은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원안 사진은 우리은행 뉴욕지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우리은행 뉴욕지점 성추행 사건은 지난 2012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뉴욕지점 직원 20여 명은 뉴욕 맨해튼 시내에 있는 한식당에서 회식을 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고소장에 따르면 “당시 회식자리에서 유 차장은 옆에 앉아 있던 여직원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 껴안았다. 또 다른 여직원의 치마 속에 손을 넣어 허벅지를 만지기도 했다”고 기록돼 있다. 겁에 질린 여직원들은 동료 남직원을 불러 유 차장을 말려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유 차장은 다른 직원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피하는 여직원을 쫓아 자리를 옮겨 다니며 성추행을 이어갔다. 소장에서는 “본사에서 발령받아 온 부지점장, 본부장 등이 함께 배석했지만 유 차장의 행동을 모르는 척했다”고 당시 상황을 적었다.
사건 직후 여직원들은 뉴욕지점의 총괄책임자인 나 아무개 본부장에게 유 차장을 징계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 같은 여직원들의 움직임을 알게 된 부지점장들은 직원들 입단속에 먼저 나섰던 것으로 전해진다. 소송을 맡고 있는 현지 법무법인 김앤배(Kim&Bae, 대표 김봉준, 배문경 변호사)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전 아무개 부지점장은 직원 개별 면담 등을 통해 이 사건을 한국 본사에 절대 알리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후 유 차장에 대한 징계는 따로 없었다. 윗선에서 사건을 유야무야 넘기면서 직원들은 2차 피해를 입었다. 고소인 이 씨가 본사에 보낸 탄원서에 따르면 사건 한 달 후 홍 아무개 부지점장은 피해여성에게 “내가 널 만지고 성추행할 테니 은행을 상대로 고소 좀 해줘. 그래서 보상금 받으면 우리 반씩 나눠가지자”고 말했다. 또한 “이 아무개 부지점장은 결혼을 두 달여 앞둔 피해 여성에게 ‘신랑이 알면 좋을 게 뭐가 있겠냐’며 설득했다”고 했다. 매니저급 직원들의 이런 대처에 직원들은 더 이상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사건 3개월 후, 유 차장은 고소인 신 씨와 직원 정 아무개 씨를 따로 불렀다. 이 자리에서도 유 차장은 남직원 신 씨와 정 씨를 성추행했다. 고소인들은 소장에서 “유 차장이 노래방에서 신 씨와 정 씨의 엉덩이를 만지고 강제로 입을 맞췄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정 씨를 소파에 눕힌 뒤 그 위에 올라가 성행위를 연상하게 하는 동작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고소인 이 씨는 앞서의 탄원서에서 “유 차장이 정 씨에게 ‘내가 사정을 할 테니 입으로 받아먹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언급했다.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도 유 차장의 성추행은 그치지 않았다. 택시 뒷좌석에서 신 씨와 정 씨의 사이에 앉은 유 차장은 두 사람의 성기를 만졌다. 신 씨와 정 씨는 그만하라고 계속해서 말렸지만 유 차장은 막무가내였다.
다음날 두 사람은 직원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유 차장에 대해 아무런 징계 조치가 내려지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고소장에 따르면 “성추행 사건을 전해들은 관리자급 주재원들은 이를 소재로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참다못한 이 씨는 2013년 3월 한국 본사 인사담당자와 이순우 행장에게 이메일을 보내 피해사실을 알렸다. 불이익이 있을까 염려했던 이 씨는 익명의 메일계정을 개설해 이용했다.
이메일을 보낸 얼마 후 진상 규명을 위해 인사부, 국제부 직원을 포함한 3명이 뉴욕으로 파견 왔다. 법무법인 김앤배 관계자는 “이들은 진상규명 대신 이메일을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데만 급급했다”고 말했다. 기자는 사실 확인을 위해 당시 파견을 나왔던 직원 두 명에게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조사가 끝난 후 유 차장은 본사로 소환돼 대기발령을 받았다. 우리은행 측은 이 사건으로 뉴욕지점 폐쇄까지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에도 신 씨와 이 씨의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본사의 조사과정에서 탄원서를 넣은 게 이 씨라는 사실이 뉴욕지점 전체에 알려졌다. 매니저급 주재원들은 이 씨에게 말도 걸지 않고 인사조차 받지 않는 등 투명인간 취급했다. 지점 책임자인 나 본부장은 직원들 앞에서 “이 씨 얼굴도 보기 싫다”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했다고 소장에서 주장했다. 기자는 당시 정황을 확인하려 뉴욕지점 직원 두 명에게 이메일을 보냈으나 끝내 답을 받지 못했다.
이후 이 씨와 신 씨는 본래 맡고 있던 업무와 전혀 다른 일들을 할 것을 요구받았다. 앞서의 김앤배 관계자는 “고소인들은 사건 전까지는 업무능력을 인정받으며 일해 온 직원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씨는 2012년 4월 온라인 송금 담당부서에서 근무했고, 입사 3개월 만에 여신업무 관리자로 승진하기도 했다.
은행은 지난 2월, 이 씨를 변제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로 발령했다. 이곳에서 이 씨가 맡은 업무는 데이터 입력 등의 단순작업이었다. 지난 4월 7일 그는 직장에서 해고당했다. 신 씨 역시 2013년 3월, 담당 업무와 전혀 관계없는 부서로 발령받았다. 한 달여 후 신 씨 역시 해고당했다. 이 같은 부당해고 의혹에 대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유 차장이 성추행을 저지른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부서배치는 정상적인 절차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씨와 신 씨는 지각을 상습적으로 하고 업무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피해가 컸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해고했다. 부당해고 여부에 대해선 소송을 통해 가릴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소송을 제기한 이 씨와 신 씨를 인터뷰하기 위해 김앤배 측에 문의했으나 관계자는 “소송이 진행 중이라 언론과의 접촉은 불가하다”고 답변했다. 성추행을 저지른 유 차장은 현재까지 대기발령 상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월급도 일체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성추행 사건 무마를 주도했던 네 명의 간부급 직원들은 모두 별다른 징계를 받지 않았다. 나 본부장은 3년의 뉴욕주재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친 후 2013년 10월 귀임했으며, 현재 퇴사상태다. 이 부지점장은 2013년 금융투자분야 유공자 기재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 역시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 부지점장은 뉴욕지점에서 아직 근무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김앤배의 윤원기 부장은 “피해자들이 내부적으로 피해 받은 사실을 알려 구제받으려 했으나 은행 조직에 의해 피해를 입게 된 사건이다”라며 “해외 주재원 파견 과정에서 은행은 현지 문화, 법체계, 윤리 교육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
은행 해외지점 사건사고 원인은 본사서 온 간부들 ‘절대권력’ 최근 은행가에 비상이 걸렸다. 해외지점에서 터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국민은행 도쿄지점의 부당대출과 비자금 의혹이 불거진 데 이어 올해 초 또다시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의 도쿄지점에서 수백억 원대 불법대출이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돼 일본 금융청이 직접 조사에 나서는 등 파문이 커지고 있다. 이번 우리은행 뉴욕지점의 성추행 파문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것이다. 우리은행을 고소한 이 아무개 씨는 탄원서에서 이번 성추행 사건의 원인을 “본부장의 유일무이한 권력집중”으로 꼽았다. 고소장에는 “관리직 주재원들이 개인적 심부름, 애완동물 돌보기까지 시키기도 했다”고 적었다. 현지 직원의 고용, 해고, 연봉 및 보너스 지급까지 모두 현지 주재원이 담당하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해외지점은 실제로 관리직만 본사에서 보내고 나머지 직원은 현지에서 채용한다. 때문에 현지 직원은 본사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지난 4월 우리은행과 국민은행 도쿄지점에서 직원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금감원은 관행처럼 방치됐던 은행 해외지점의 실태를 감사하겠다고 뒤늦게 나서기도 했다. 기자가 해외지점 인력 운용에 대해 국민, 신한, 하나은행 등에 문의해본 결과 현지 채용자는 해당 지점장 혹은 본부장이 채용·관리한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하나은행 홍보팀 관계자는 “현지 채용 인력에 대해 지점장이 관리하는 건 맞지만 본사 측에서 매년 1회씩 해외 지점에 대해 감사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 감사 내용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신한은행 역시 “본사에서 현지상황을 알 수 없기에 지점에 일임한다”고 답했다. 본사의 정기 감사 여부를 묻는 질문에 “정해진 주기가 있는 건 아니지만 감사를 한다”고 말했다. 현지 채용 인력에 대해선 본사와 차이를 두고 있었다. 앞서의 하나은행 관계자는 현지 채용 인력 처우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본사 직원들과는 다른 처우를 받고 있다. 정규직으로 뽑는 경우도 거의 없다” 말했다. 신한은행은 “현지 채용 인력 처우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며 즉답을 피했다. 다만 “현지 상황과 법을 고려하여 처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각국의 한인커뮤니티에는 현지 채용 처우에 대해 성토하는 글을 흔히 찾아볼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한인 커뮤니티 ‘인도웹’에 한 네티즌은 “현지 채용 직원은 한국어가 가능한 현지인으로 본다. 주재원들 골프 치는데 불러 통역을 시키기도 한다고 들었다”고 적었다. 독일, 유럽 한인 커뮤니티 ‘베를린리포트’에서는 “주재원이 자체적으로 채용하는 시스템이라 급여 지급 체계가 투명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