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체의 남친 죽이고 그녀는 왜 그 뒤 따랐나
지난 5월 27일 오후 9시 38분, 늦은 시간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김 아무개 씨는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김 씨는 아무 인기척이 없어 들여다 본 방에서 흉기에 찔린 채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있는 아들 김 아무개 씨(29)를 발견했다.
당시 아들 김 씨는 나체 상태로 침대에 팔다리가 묶여 있는 상태였다. 아들 김 씨의 목과 옆구리, 가슴 등에는 예리한 흉기로 40여 차례 찔린 상처들이 발견됐다. 처참하게 살해된 김 씨의 시신 옆에는 누군가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예리한 흉기가 놓여 있었다. 아버지 김 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유력한 용의자는 숨진 김 씨의 여자친구 정 아무개 씨(21)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폐쇄회로(CC)TV를 확인하고 이날 오후 2시 43분께 정 씨가 김 씨의 집에 들어간 사실을 확인했다.
수원 남부경찰서 박훈희 경감은 “당시 김 씨는 부모님이 출근하고 혼자 집에 있던 상황이었다. 김 씨 집을 방문한 정 씨는 6시간가량 김 씨 집에 머무르다 오후 9시께 김 씨의 집을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이에 경찰은 여자친구 정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여기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어 박 경감은 “이 사이 범행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아파트 자체가 이웃과의 왕래가 많은 아파트가 아니다. 큰 다툼소리나 김 씨의 비명소리를 들었다는 주민은 아직 없다. 정확한 사망 추정 시각은 차후 부검을 통해 밝힐 것”이라고 덧 붙였다.
그런데 김 씨의 시신이 발견된 지 1시간 10분 후인 오후 10시 48분께 인근의 또 다른 아파트 15층에서 한 여성이 투신해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여성은 유력한 용의자였던 김 씨의 여자친구 정 씨였다. 정 씨는 남자친구 김 씨의 집에서 나온 직후 500m가량 떨어진 자신의 아파트로 이동한 것으로 밝혀졌다. CCTV에서 정 씨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시각은 9시 21분경. 정 씨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 12층에서 잠시 머무르다 15층으로 이동해 스스로 몸을 던졌다. 먼저 사망한 김 씨는 물론 자살한 정 씨 모두 유서가 발견되지 않아 경찰도 정확한 사인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숨진 김 씨와 정 씨는 6개월간 교제해온 연인사이였다. 그러나 김 씨와 정 씨는 주변인들도 거의 눈치를 못 챌 정도로 조용히 만났다고 한다. 6개월 전 김 씨의 어머니가 잠시 외출을 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김 씨와 정 씨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한 차례 인사를 나눈 것이 전부였다. 김 씨의 아버지는 물론 정 씨의 부모님도 이번 참극이 벌어지고 나서야 두 사람이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 씨는 3개월 전 잠시 회사를 다녔던 것 외에는 특별한 직업은 없는 상태였다. 이 때문인지 김 씨는 외출도 거의 하지 않았다. 수원 남부경찰서 박 경감은 “1차적으로 김 씨의 통화내역을 확인했을 때는 통화내역이 많지 않았다. 통화내역도 주로 여자친구 정 씨와 통화를 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거의 집에만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적어도 김 씨와 여자친구 정 씨 사이에 제3자로 인한 심각한 문제가 얽혀 있을 가능성은 낮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김 씨가 살던 아파트 주민들은 사건 소식을 듣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주민 A 씨는 김 씨의 사망 소식에 대해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라며 “(숨진 김 씨는) 경비원도 얼굴 한 번 제대로 본적도, 얘기를 나눠 본 적도 없을 만큼 조용했던 사람이라고 들었다. 누구한테 원한 살 만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B 씨도 무언가를 말 하려다 옆에 있던 주민이 눈치를 주자 끝내 입을 닫아버렸다.
여자친구 정 씨 또한 김 씨와 마찬가지로 무직인 상태였다. 정 씨는 대부분의 또래들처럼 학교를 다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전과기록이나 사리분별이 어려울 정도의 정신 병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자친구 정 씨는 무엇 때문에 연인이었던 김 씨를 40여 차례나 칼로 찔러 끔찍하게 살해한 것일까.
앞서의 박 경감은 “향후 더 조사해 봐야겠지만 평소 정 씨가 우울증을 앓았다는 참고인 진술이 있었다”면서도 “두 사람 모두 유서를 남기지 않은데다 피의자까지 사망해 정확한 사인이나 범행동기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박 경감은 “김 씨의 방 안은 다투거나 술을 마신 흔적은 없었고 잘 정돈된 상태였다. 추가 참고인 조사와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건경위와 사인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사망한 두 사람의 평소 행적이 복잡하지 않아 치정이나 원한 등에 의한 사건일 가능성이 낮고, 이웃에서도 비교적 ‘조용하게’ 지낸 두 사람을 크게 주목하지 않았고, 사건 당일에도 다투는 소리를 듣지 못했던 점 등은 40여 차례나 칼에 찔린 살인사건 치고는 주변정황이 너무나 미스터리한 면이 많다. 더구나 당사자 2명은 이미 사망해 이번 사건의 실체는 어쩌면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