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주 전 은신 별장서 몸관리 받으며 작품 활동까지…
감식반이 유병언 전 회장이 타고 도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은색 쏘나타 차량을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유병언 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될 움직임을 보였던 지난 4월 말. 유 전 회장의 측근 이재옥 헤마토센트릭라이프재단 이사장(49)은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의 본산으로 불리는 경기도 안성 ‘금수원’에서 핵심 측근들을 불러 모은다. 이들은 유 전 회장을 향해 점점 좁혀 오는 포위망과 관련해 대책을 논의한다. 일단 여론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금수원에서 유 전 회장을 빠져나오게 하는 게 최우선. 도피처로는 구원파가 다수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전남 지역이 꼽혔다. 그리고 유 전 회장을 숨길 장소로 전남 순천시 서면 학구리에 위치한 고급 별장이 지목됐다. 유 전 회장의 기나긴 ‘황제 도피’의 시작이 결정된 셈이다.
해당 별장은 일명 ‘숲속의 추억’으로 불리는 곳으로 전남 지역의 신도인 변 아무개 씨 부부가 관리하고 있던 곳이었다. 변 씨 부부는 별장 인근 ‘송치재휴게소’에서 염소탕 식당도 운영하고 있었다. 전남 지역 신도 대표격인 추 아무개 씨(60)는 변 씨 부부에게 별장 리모델링을 지시한다. 변 씨 부부와 함께 설계업자와 목수 직업을 가진 구원파 신도 두 명이 리모델링에 동원됐다. 별장은 창문 곳곳을 가리고 출입문 잠금장치를 새로 만드는 등 마치 ‘요새’처럼 대대적인 수리 과정을 거친다.
이윽고 5월 3일, 유 전 회장은 고가의 벤틀리 승용차에 몸을 싣고 금수원을 유유히 빠져나온다. 유 전 회장 곁에는 여비서인 신 아무개 씨(33)도 함께 탔다. 이후 순천 별장에 도착한 시점은 다음날인 4일. 검찰은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유 전 회장이 금수원에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강제 진입 방법에 골똘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순천 별장에 남기고 간 유 전 회장의 흔적들. 왼쪽부터 미네랄생수와 유기농 음식, 장 세척기, 고급 화장품.
“유 전 회장은 어디에 있습니까?”
“금수원 작업실에 지금도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크게 소리를 지르면 혹시 나오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번 외쳐보실래요?”
황제도피를 기획한 이재옥 이사장은 지난 18일 금수원 내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태연스럽게 답했다. 이에 기자들의 추가 질문이 이어지자 이재옥 이사장은 “유 전 회장이 있는 곳은 모른다. 저도 헷갈린다”며 당황한 듯 말을 번복하는 모습을 보여 의구심을 자아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일간지 기자는 “당시에는 이 이사장이 실언을 한 것으로 파악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완벽한 연기였다. 한마디로 연막작전이었던 셈”이라고 전했다. 이 이사장의 발언으로 유 전 회장이 금수원에 있을 것이라는 여론의 기대감은 높아졌지만, 그 시각 유 전 회장은 금수원에서 250km가량 떨어진 순천 소재 고급 별장에 은신하며 측근들로부터 대포폰을 통해 검찰과 여론 동향을 은밀하게 보고 받고 있었다.
그렇다면 유 전 회장이 머무른 고급 별장의 내부 모습은 어땠을까. 순천시 학구리에 있는 해당 별장은 2층 규모로, 40평 남짓한 크기에 커다란 거실, 방 3개, 부엌 등으로 이뤄져 있다. 기자가 직접 파악한 별장 내부에는 유 전 회장이 당국의 감시망을 벗어나 별장에 여유롭게 머물며 황제도피를 했다는 여러 정황이 포착됐다. 금수원에서 직접 공수해 왔다는 ‘미네랄워터’는 박스째 쌓여 있고, 유기농 간식거리를 포함, 부엌에는 각종 음식재료들이 냉장고에 보관돼 있었다.
특히 유 전 회장이 지낸 방 내부에는 유 전 회장 일가의 계열사인 ‘다판다’에서 판매하는 ‘세모 스쿠알렌’, ‘유기농 홍삼정’ 등 각종 영양제가 쌓여 있었다. 도피 중임에도 건강관리에 철저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셈이다. 방 옆에 딸려 있는 화장실에는 유 전 회장 일가 계열사에서 판매하는 시가 500여만 원짜리 장 청소기(내클리어)가 준비돼 있다. 유 전 회장이 장 청소를 위해 틈틈이 직접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주의 한 장례식장 CCTV에 찍힌 유 전 회장 추정 인물(오른쪽). 연합뉴스
그렇게 별장에서 머문 지 3주쯤 지나 유 전 회장은 황급히 도주를 감행한다. 첩보를 입수한 검찰이 지난 25일 오후 9시경 송치재휴게소를 찾아 변 씨 부부의 염소탕 식당을 급습한 것이다. 검찰이 식당을 급습할 동안 유 전 회장은 측근과 함께 그대로 도주한다. 검찰이 별장에까지 들이닥치자 여비서 신 씨는 한국말을 모르는 척 영어를 쓰며 검찰과 30분가량 실랑이를 벌여 유 전 회장의 도주 시간을 벌어줬다. 검찰이 별장에 들어간 순간에는 유 전 회장이 미처 챙기지 못한 여행가방과 각종 물품 등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후 유 전 회장의 행적은 베일에 가려졌다. 일각에서는 중국, 일본 등 밀항설이 돌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확인되지는 않았다. 검찰은 현재까지 유 전 회장이 전남 일대에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확실치 않다. 최근에는 유 전 회장이 타고 도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은색 쏘나타 차량이 전북 전주시 송천동의 한 장례식장에서 발견돼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장례식장 인근 CCTV에는 유 전 회장과 비슷한 체형의 남성과 검은 상복을 입은 여성이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검찰 관계자는 “유 전 회장이 현재 순천과 그 인근 지역에 은신 중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충분한 경찰 인력과 함께 외곽을 차단하고 점차 수색을 좁혀가고 있다”라고 전했다.
전남 순천=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예상되는 도피 경로 굴 속에 숨었거나, 중국 밀항 가능성 유병언 전 회장이 3주가량 머물렀던 별장에는 그가 차후 도피를 위해 상당히 치밀한 준비를 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별장 거실에는 미처 챙기지 못한 전남 일대 지역 도면 수십 장이 뭉터기로 발견됐다. 순천 별장 거실에서 뭉터기로 발견된 전남지역 세부 도면 일부와 도피 경로 중 하나로 추정되는 폐기차터널. 해당 도면은 순천을 중심으로 보성, 화순, 광주, 장흥 등이 구획별로 나눠져 있으며, 해당 지역의 땅을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 구원파 신도들로 추정되는 이름이 적혀 있다. 이밖에 국가 소유의 땅은 따로 표시를 해두고 특정 경로는 형광펜을 그려 눈에 띄게 표시했다. 도피 경로가 아닌지 의혹을 사는 대목이다. 이제까지 유 전 회장의 도피 경로는 두 가지 정도로 예상돼 왔다. 우선 순천 별장 인근에 위치한 폐기차터널을 지나 지리산을 타고 구례 방향으로 은둔했을 가능성이다. 일명 ‘빨치산루트’로 불리는 이 루트는 6·25 당시 남부군 대장이던 이현상이 순천에서 반란군과 합류해 이동했던 이동로와 일치한다. 기자가 직접 들어가 본 폐기차터널 끝에는 ‘송치재 마을’이 위치해 있었다. 마을 관계자는 “최근 경찰이 이곳 수색을 많이 하고 현상금 사냥꾼으로 추정되는 일반인들도 몇 명 왔다”며 “일단 이쪽에는 곳곳에 은신할 수 있는 굴도 많고 산 쪽으로 이동할 도주로가 많아 이쪽으로 온다면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두 번째는 ‘밀항 가능성’이다. 순천 일대에는 순천만뿐만 아니라 여수항, 화포, 대대, 별량, 우명항 등 항구가 밀집되어 있다. 특히 여수항 쪽에는 ‘청해진해운 여수본부’가 있어 밀항브로커들을 쉽게 접촉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돼 왔다. 여수항 항만보안센터 관계자는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만 잘 알려진 여수항보다는 여수 일대 화양면, 돌섬 등 작은 규모의 항구에서 밀항할 가능성이 크다. 어선에 들어가 그물에라도 숨어버리면 사실상 밀항을 적발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라고 전했다. 남해 지역 항구는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고 있기에 서해 쪽 항구로 밀항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밀항 브로커는 “지금 하도 들쑤시고 다녀서 밀항 점조직들이 다 숨은 상황이다. 그나마 수도권에선 최근엔 화성 쪽에 항구들이 있는데 그 쪽이 밀입국자들이 많이 들어오고 나가곤 한다”라고 전했다. 특히 화성 궁평항은 2012년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밀항을 시도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기자가 궁평항에서 만난 한 어선 관계자는 “최근 이쪽 단속이 강화된 모습은 딱히 모르겠다. 아무래도 남해보다는 서해 쪽이 중국 밀항에 훨씬 용이한 측면이 있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궁평항 관계자는 “밀항 브로커는 이쪽에 여전히 있다. 암암리에 거래를 계속하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이처럼 여러 도주 경로에 대한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유 전 회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최근 전북 전주에서 발견돼 눈길을 모으고 있다. 검찰은 아직까지 유 전 회장이 전라도 일대를 빠져나가지 못했을 것으로 보고 추격을 이어가는 중이다. [환] |
도피 조력자들은 누구 “현재 또 다른 여성이 수행중” 30일 현재까지 유 전 회장의 도피를 도운 조력자들은 8명으로 밝혀져 있으며 검찰은 이들 대부분을 구속했다. 도피를 총괄한 이재옥 헤마토센트릭라이프 이사장, 별장을 관리한 변 씨 부부, 유 전 회장과 함께 금수원에서 도피한 여비서 신 씨 등이다. 이들은 모두 유 전 회장의 신변에 관해 진술을 철저히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 순천 별장 내부. 별장 관리 변 씨 부부는 이곳이 유 전 회장의 도피처로 결정되자 창문 곳곳을 가리고 출입문 잠금장치를 새로 만드는 등 요새처럼 리모델링했다. 특히 검찰은 30대 여비서 신 씨에 대해 조사 강도를 높이는 모습이다. 신 씨가 유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서 순천 별장에서도 함께 지낸 사실이 파악됐기 때문이다. 신 씨는 자기 명의의 휴대폰을 유 전 회장에게 주고 옷을 챙기거나 운전을 해주는 등 각종 심부름을 도맡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씨는 유 전 회장의 도피를 위해 도피자금 800만 원을 현금으로 들고 다니고 각종 도청방지장치를 소지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를 종합해 검찰은 두 사람이 ‘단순한 관계’가 아닌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유 전 회장이 머물렀던 별장에서 유 전 회장의 체액이 묻은 것으로 추정되는 휴지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일요신문> 취재 결과 유 전 회장의 방에서는 여성이 사용한 흔적이 보이는 ‘위생용품’이 발견되기도 했다. 검찰은 체액이 묻은 휴지에 대해 DNA 검사를 의뢰했다. 검찰 관계자는 “(두 사람의) 구체적 관계는 사생활 측면을 고려해 밝히기 어렵다”며 아직까지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편 구원파의 핵심 모임 중 하나인 ‘어머니회’가 도피를 조력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어머니회는 구원파 초기부터 설립된 모임으로 유 전 회장의 최측근이자 사채 모집책인 송재화 씨가 주축이 돼 활동한 모임으로도 알려져 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염소탕 식당과 별장을 운영하던 변 씨의 부인 정 아무개 씨가 어머니회에 소속된 것으로 밝혀졌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정 씨의 일기장에 따르면 정 씨는 인천 지역 구원파 교회에서 활동하다가 윗선의 지시로 순천으로 파견돼 휴게소와 별장, 염소 목장 등을 운영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밖에도 정 씨는 유 전 회장을 ‘사업가’, ‘지도자’로 생각한다고 적었으며, 도피를 총괄한 이재옥 이사장이 주선하는 ‘해마토센트릭 리더교육’에도 참석하는 등 이재옥 이사장과도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유 전 회장 곁에는 또 다른 여성 한 명이 비서 역할을 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전 구원파 관계자는 “유 전 회장 곁에는 항상 심부름을 해주고 챙겨주는 여자가 있을 것”이라며 “유 전 회장을 절대적 지도자로 모시고 충성을 바치는 구원파 신도가 있는 한 유 전 회장은 쉽사리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