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대우 해준다더니 현대가는 약속 어겼다”
# 대선후보 정주영
정주영 회장은 대선 출마를 앞두고 김 씨와 만났다. 김 씨는 벼르고 있던 아이들 호적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다. 김 씨는 아이들이 사춘기이고 학교 문제도 있어 더 늦지 않게 호적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회장은 “대통령만 되면 네가 원하는 것은 모두 해주겠다”고 했지만 김 씨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김 씨가 계속 다그치자 정 회장은 “좀 기다리면 될 텐데 왜 그렇게 괴롭히냐”며 “사업이 중요하지 니가 중요해?”라고 역정을 냈다. 본래 정 회장의 기에 눌려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던 김 씨였다. 평소라면 “예” 하고 말았겠지만 그날은 달랐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정 회장은 김 씨를 피하기 시작했다. 김 씨는 “당시 아빠가 호적 문제 때문에 골치가 아팠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대선이 끝나고 김 씨는 정 회장과 한두 번 만난 후 통 만날 수 없었다. 아이들을 입적시키는 문제를 꺼낸 후 당시 정 회장의 변호사가 둘 사이를 오갔다고 한다. 그때부터 정 회장의 변호사가 둘 사이를 막는 듯했다. 김 씨는 “변호사를 통해 만나자는 말을 넣어도 변호사는 ‘정주영 회장이 많이 아프다’, ‘사람도 못 알아본다’, ‘눈이 안 좋다’ 등의 말로 만남을 훼방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어쩌면 둘 사이의 일이 그때부터 가족들 귀에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고도 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평생 꿈도 안 꾸던 그녀가 꿈을 꿨다. 정 회장이 꿈속에서 “경희야, 경희야, 경희야!”하고 간절하게 외쳤다고 한다. 뭔가 불길해 알아보니 정 회장이 병원에 실려가 중태라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또 얼마 안 있어, 2001년 3월 21일 정 회장은 영면에 들었다.
# 친자확인소송
김경희 씨는 “정주영 회장의 기일에 미국에 사는 두 딸도 ‘아빠 제사에 참석하겠다’며 고국으로 날아왔지만 푸대접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2001년 고 정주영 회장 빈소가 마련된 청운동 자택. 일요신문 DB
두 딸의 친자확인을 위해 현대 측의 협조가 필요했다. 소송을 지켜본 김 씨의 지인은 “현대가 설마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협조해 준 것 같다”고 당시 분위기를 설명했다. 김 씨는 자신과 두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갔고, 현대 측에서는 정 회장의 아들들과 부인 변중석 씨(작고)가 나왔다.
여섯 명의 피를 뽑아 친자 확인 과정을 거쳐 99.9% 친자가 맞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날로 두 딸은 정주영 회장의 딸들로 법적으로 인정받았다. 김 씨는 “설혹 내가 죽더라도 이복형제일망정 오빠들은 있으니 안심할 수 있었다”며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했다.
정주영 회장의 친딸로 인정받은 만큼 당연히 상속의 권리도 생겼다. 당시 유산 상속 과정에서 정주영 회장의 재산은 약 800억 원, 부채는 약 130억 원으로 계산해 분할됐다고 한다. 김 씨의 두 딸은 각각 28억 원(세후), 모두 56억 원을 받았다. 김 씨는 이 돈이 두 딸의 상속분 중 부동산을 팔아 생긴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이는 주식을 처분해 받은 돈으로 기록돼 있다. 소송이 끝나고 나서 ‘아이들이 어리니 유산으로 받은 주식은 현대 측에 맡겨두자’는 지인의 말을 듣고 서류에 서명한 탓이다.
# 가족 같은 대우
이에 김 씨는 두 번째 소송을 진행한다. ‘상속재산분할협의계약의변경’에 대한 조정신청. 그녀가 만난 변호사들은 몇 조 원이 되더라도 찾을 수 있으니 염려 말라고 안심시켰다고 한다. 그 때쯤 상대방 변호사가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고 한다. 앞으로는 ‘가족 같은 대우’를 해주겠다며 합의를 하자는 것. 김 씨가 가장 바라던 조건이었다.
김 씨는 현대 측의 제안에 다시는 소송을 하지 않겠다는 서류에 서명했다. 그 서류에는 몇 가지 조항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정주영 회장의 제사에 현대 측이 날짜를 미리 통보하고 김 씨와 두 딸이 참석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김 씨는 소송 포기 대가로 40억 원을 더 받았다.
‘가족 같은 대우’를 합의하고 처음 돌아온 정주영 회장의 기일, 변호사는 날짜를 알려줬다. 미국에 사는 두 딸도 ‘아빠 제사에 참석하겠다’며 고국으로 날아왔다. 하지만 정 회장의 자택을 찾은 두 딸들을 문 앞에서 보안 요원이 가로 막았고, 어찌어찌해서 겨우 집안으로 들어가고 보니 벌써 제사는 다 끝나 있었다.
그 후 직원이 나와서는 두 딸에게 수위 방으로 들어가라고 해서 가 보니 그 곳에 제사상이 따로 차려져 있고 그곳에 인사하고 돌아가라고 했다. 막내딸은 집으로 돌아와 김 씨 앞에서 밤새도록 울었다. 그들은 현대가 사람들에 대해 “Devil(악마)”이라고 외치다 혼절해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그 후 두 딸은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는다.
# 먼지처럼 사라진 유산
김 씨는 유산 상속을 통해 56억 원, 두 번째 소송에서 40억 원을 받았다. 100억 원에 달하는 큰돈이다. 하지만 김 씨가 이 돈을 받기 전 그녀의 재산은 이미 700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김 씨의 어머니가 큰 부자인데다가 어머니가 사둔 땅값이 올라 그 만큼의 재산이 되었다고 한다. 도합 800억 원의 돈을 가졌던 김 씨는 현재 빈털터리가 되었다.
반평생 정주영 회장의 그늘 아래 숨어 산, ‘세상물정 모르는’ 여인에게 큰돈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사기꾼만 찾아왔다고 한다. 지인들은 “김 씨는 사람을 너무 잘 믿는 것이 탈이다. 사기꾼이라고 상종하지 말라고 해도, 돈 좀 꿔달라는 말에 어떻게든 꿔준다. 그러다 이렇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현재 거액의 빚만 있는 신세다.
# 마지막 소송
“이제 합의는 없다. 소송이 어떻게 되든 끝까지 해볼 것이다.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김 씨는 세 번째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제삿날 찾아가보면 직원들조차 나를 무시한다. 평생 무시당하는 팔자인가보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아빠만은 그렇게 안했는데 다른 사람 다 무시해도…. 우리 딸들은 그래도 반은 정주영 회장 피가 섞였는데 왜 그렇게 벌레 보듯이 하는지….”
김 씨는 유언장이 꼭 보고 싶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정주영 회장의 유언장은 언론에도 그 존재에 대해 수 없이 많은 추측성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정주영 회장이 속일 사람이 아니다. 아빠가 ‘아무려면 내 새끼 살 길도 마련해놓지 않겠어요? 변호사와 상의해서 어머니(김 씨의 어머니)와 경희, 아이들까지 배려해놓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몇 번이고 말했다.”
김 씨는 정주영 회장이 미국에 와서 짧은 시간 만날 때도 아이들이 어떻게 학교에 다니는지, 어떤 친구들을 만나는지 까지 체크했다고 한다. 김 씨는 그렇게 꼼꼼한 사람이 딸들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한다.
“회장님의 유언장을 읽고 싶은 것은 아빠가 나에게 한 말이 거짓말이 아니란 것을, 회장님은 결코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