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유럽’ 자체 프로기사들 탄생
유럽바둑문화센터에서 벌어진 메인 토너먼트 전경, 작은 사진은 대회 후 유종수 7단을 Euro GO TV에서 특별인터뷰 하는 모습.
올해 5월 하순부터 6월 하순까지, 약 한 달 사이에 유럽에서는 4개의 바둑대회가 열렸다. ▲5월 24~25일, 프랑스 ‘제6회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슈트라스부르크) 대회’ ▲5월 29일~6월 1일, 네덜란드 ‘2014암 암스테르담 오픈’ ▲6월 13~15일, 스위스 ‘2014 제노바 토너먼트’ ▲6월 20~22일 오스트리아 ‘2014 비엔나 플러스’인데, 스트라스부르 암스테르담 비엔나 대회가 유럽 최초의 ‘프로 입단대회’를 겸했고, ‘유럽 프로기사’ 2명을 탄생시켰다. 유럽바둑협회가 마침내 프로기사 제도를 도입한 것.
유7단과 김 대표는 암스테르담 오픈에 참가하면서, 9번기 당시의 관계자들을 만났다. 유럽 각지에서 온 선수들은 25년 전에 돌아갔다가, 온다는 얘기도 없이 불쑥 찾아온 왕년의 ‘마이스터’ 유 7단을 보고 모두 깜짝 놀랐다. “정말 너무 반갑고 고맙다”면서 얼싸안았다. 대회본부는 대회 기간 내내 유 7단을 특별대우했다. 대회장에서는 1번 테이블을 배정했고, 유 7단의 대국은 인터넷 방송으로 중계했으며 대회가 끝나서는 유 7단과 김 대표를 따로 인터뷰했다.
9번기의 기획자가 누구였는지도 비로소 확실히 알게 되었다. 현재 ‘유럽바둑협회’가 들어와 있는 ‘유럽바둑문화센터(EGCC, European GO Culture Center)’ 재정이사로 있는 해리((Harry van der Krogt, 60) 2단이었다. 해리는 유 7단과 김 대표에게 자신이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 9번기의 기보와 사진을 보여 주었으며, 대회 일정이 끝난 후에는 두 사람을 9번기가 순회했던 세 도시, 리우바르덴(Leeuwarden) 아른헴(Arnhem) 틸부르크(Tilburg) 가운데 대국장으로 이용되었던 호텔이 그대로 남아 있는 아른헴까지 안내해 주었다. 말도 별로 없던 유 7단이 환하게 웃었다.
“올 때부터 긴가민가했어요. 25년이나 지났고, 그리고 이제는 그때의 내가 아니니,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요. 그런데 여기 와 보니까 설레네요. 이번에 대회에 참가해보니 여기도 젊은 친구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더군요. 지금은 아마 3단부터, 4단, 5단은 우리와 엇비슷한 것 같습니다. 묘하네요. 유럽 친구들이 늘었다고 느낌이 오니까,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몇 번이나 더 올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유럽도 언제부터인지 중국의 젊은 기사들이 활발한데요, 이번 암스테르담 대회도 중국의 젊은 프로 자오바올롱(趙寶龍) 2단이 6라운드 전승으로 우승했습니다, 저도 졌는데, 그 친구하고 복기를 할 때 기분이 그렇게 좋은 겁니다, 그러면서 그래, 이제는 중국 프로들하고 한번 붙어보자, 그런 투지도 생기더라구요. 게다가 메인 대회 전에 ‘스페셜 이벤트’라는 게 있었습니다. 그게 말하자면 입단대회 3~4라운드였어요. 스트라스부르 대회가 1~2라운드였고요. 전부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 연구생들이나 연구생 출신들한테는 물론 아직 안 되겠지만, 우리 시니어 7단들하고는 백중할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서 열아홉 살 먹은 체코 청년 리시 파볼(Lisy Pavol)이 1착으로 입단했지요. 그 친구 입단하고 다시 메인 대회에 나와서 자오바올롱에게 졌습니다. 그 친구들하고도 승부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럽 입단대회에서 1, 2번째로 프로기사가 된 파볼(오른쪽)과 자바린.
파볼에 이어 비엔나 대회 스페셜 이벤트 5~6라운드에서 이스라엘의 알리 자바린(Ali Jabarin, 20)이 두 번째로 테이프를 끊었다. 유럽입단대회는 유럽바둑협회 랭킹 상위자, ‘2013 유럽 바둑 콩그레스’ 상위 입상자, ‘2013 세계아마바둑선수권 성적 우수자’ 등 16명이 출전했다. 룰과 덤 7집반은 중국식, 초읽기는 캐나다식을 채택했고 초시계와 바둑알은 일본 것을 사용한 명실상부 ‘글로벌 비빔밥 입단대회’였다.
유럽이 프로기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68년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원생수업을 하다가 97년에 일본기원 프로가 된 독일인 한스 피치(Hans Pietsch)가 있었다. 입단 첫 해 제2회 LG배 세계대회 본선 24강전에서 일본의 간판급 스타 요다 노리모토 9단(48)을 꺾어 세계 바둑계를 기염을 토했고, 빠른 속도로 4단까지 승단했는데, 2003년 중미 과테말라에 바둑보급 여행을 갔다가 무장강도를 만나 35세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또 한 사람 일본기원 소속 유럽인은 1997년에 입단한 루마니아의 카탈린 타라누 5단(41). 얼마 전에 루마니아로 돌아와 지금은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다. 일본기원의 마이클 레드먼드(Michael Redmond, 1963년생, 1981년 입단) 9단은 미국인이다.
한국에서 바둑유학하고 2002년에 한국기원의 배려로 특별입단한, 1980년생 동갑내기 디너쉬타인 알렉산드(Dinerchtein Alexande) 3단과 쉭시나 스베틀라나(Shikshina Svetlana) 3단은 러시아 사람이고, 4년 전에 한국에 와서 2008년에 한국기원에서 특별입단한 마리아 자카르첸코(Mariya Zakharchenko) 초단은 우크라이나 출신의 열아홉 살 아가씨. 세 사람은 모두 한국기원의 러시아통 천풍조 9단(67)의 제자다. 역시 한국에 와서 공부해 2008년에 특별입단한 코제기 디아나(Koszeki Diana, 31) 초단은 헝가리. 그러나 유럽에서 자생한 프로기사로는 파볼과 자바린이 최초라는 것, 그 의미가 크다.
“유럽 프로의 출범을 현장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도 이번 여행의 큰 보람”이었다. 미국에서도 유럽에 앞서 프로가 생겼으니 바야흐로 서구의 바둑이 한 단계 도약하는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물론 유럽바둑협회 마틴 스티아스니(Martin Stiassny, 64)의 말처럼 “정작 지금부터가 중요하며 프로기전을 만드는 것이 시급한 과제”인 것으로 보인다. “프로기전이 없으면 발전을 기약할 수 없고,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어 과거와 크게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유 7단 개인으로서는 또 다른 수확도 있었다. 9번기의 상대 로널드 슐렘퍼(Ronald Schlemper)의 동향을 전해들은 것. 슐렘퍼는 9번기 후 몇 년 있다가 바둑계를 떠나 원래 그의 길이었던 의사가 되었고 현재 일본 도쿄에서 ‘클리닉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귀국 후 김 대표는 슐렘퍼 원장에게 “9번기에 대한 책을 만들려고 한다”고 메일을 보냈다. “도쿄로 오면 협조하겠다”는 답이 왔다. 뭔가 톱니바퀴가 제대로 맞물리고 있는 느낌이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