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미소 뒤 악마의 잔혹함 있었나
살인교사 혐의를 받고 있는 김형식 서울시의원은 운동권 출신에 주변의 평가도 좋았다고 한다. 지난 3일 구속된 김 의원이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는 과정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충남 서천에서 태어난 김형식 서울시의원은 한신대학교 철학과 90학번으로 입학해 제46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했다. 학창 시절부터 리더십을 인정받은 그는 동문들 사이에서 상당히 좋은 평가를 얻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김 의원의 한 동문은 “형식이는 학교생활에 굉장히 충실했다. 당시는 운동권이 대세였던 시기라 형식이가 직접 앞에 나서서 정의로운 면모를 보였다. 그런 사람이었기에 최근 청부살인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소식에 동문회 내부가 발칵 뒤집혔다. 어떻게 형식이가 그럴 수 있느냐는 의견이 대다수인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동문은 “그 김형식이가 저 김형식이냐? 이름이 같은 줄만 알았는데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다”라고 전했다. 학창 시절 김형식과 현재 살인교사 혐의를 받고 있는 김형식은 너무나 다른 ‘두 얼굴’이라는 점에서 동문들은 상당히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이후 김 의원은 신기남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의 보좌관을 10년간 지냈다. 또 노무현 후보 캠프 기획위원, 열린우리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최연소 부대변인을 맡는 등 나이에 비해 화려한 경력을 쌓게 된다. 당시 김 의원을 알고 있었다는 한 인사는 “김 의원이 착실한 능력 하나는 크게 인정받았다. 생긴 것도 깔끔하지 않나. 젊은 나이에 꽤 잘 나갈 수 있었던 이유”라고 전했다.
하지만 당시는 김 의원이 훗날 ‘악연’이 될 수천억대 재력가 송 아무개 씨(67)와 인연을 맺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김 의원은 신기남 의원의 보좌관 시절인 지난 2000년, 지인의 소개로 송 씨와 연을 처음 맺었다. 당시 송 씨는 8촌 인척인 재일교포 이 아무개 씨의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다. 이 씨는 강서구 일대에 ‘1000억 원’에 육박하는 부동산을 보유한 재력가였다. 이후 송 씨는 이 씨의 부동산을 매입해 재산을 불리게 되지만, 김 의원과 인연을 맺을 당시에는 단지 이 씨의 ‘재산관리인’에 불과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송 씨가 장차 강서 일대 부동산을 대거 사들일 것을 대비해 김 의원과 친분을 쌓았고, 부동산을 매입하며 지속적으로 김 의원의 ‘스폰서’ 역할을 시작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김 의원은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강서2 지역구에 도전해 제8대 시의원에 당선됐다. 송 씨와 김 의원의 관계는 이때부터 더욱 밀착된 것으로 파악된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송 씨 입장에서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스폰을 했던 김 의원이 당선되자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간 게 아니겠느냐”며 “김 의원이 아무리 착실하다 해도 자신에게 지원을 해주고 강서 지역에서 막대한 재산을 가진 송 씨를 외면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찰은 2011년과 2012년에 송 씨가 김 의원에게 ‘5억 2000만 원’을 건넨 것으로 파악한 바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갔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송 씨는 지난 1992년부터 만난 이들의 이름과 입출 내용을 상세하게 적은 ‘매일기록부’를 금고에 넣어 놨는데, 기록부에는 김 의원의 이름이 20여 차례 적혀있으며 송 씨가 김 의원에게 건넸다고 쓴 금액은 약 ‘5억 9000만 원’으로 알려졌다. 알려진 5억 2000만 원보다 약 ‘7000만 원’이 높은 액수다. 이런 정황은 두 사람 사이의 ‘돈 거래’가 알려진 금액보다 훨씬 더 클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렇듯 여러 증언들을 종합하면 착실했던 김 의원이 본격적으로 ‘검은 돈’을 받았던 시기는 시의원 선거운동을 하던 때인 2009년부터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 의원은 송 씨뿐만 아니라 철도 레일체결장치 납품업체인 AVT 이 아무개 대표로부터 ‘3000만 원’을 건네받은 정황이 포착됐다. 또 2012년 초에는 이 대표로부터 추가로 1000여 만 원을 건네받았다. 김 의원은 지방선거 출마 전까지 6개월가량 AVT 고문직을 맡으며 월급도 받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뇌물수수가 ‘일상화’되다시피 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다.
서울시의회 한 관계자는 “김 의원은 똑똑하고 의정활동을 착실하게 잘 하기로 주변 의원들 사이에서 평이 상당히 좋다. 그런 그가 대체 왜 돈을 그렇게 받았는지 의문스럽다. 재산이 부족한 것도 아닐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지난 3월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김 의원의 재산은 총 ‘6억 8619만 원’에 달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재산 역시 ‘스폰’을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김 의원은 시의원에 당선된 후인 2012년 집을 샀는데, 송 씨에게서 5억 2000만 원을 받은 시기와 비슷하다. 하지만 정확한 자금 흐름은 확인되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이렇듯 김 의원이 돈을 ‘거둬들인’ 여러 정황에 갖가지 의문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 의원이 시의원이 되기 전 과거 ‘끼니’를 거를 정도로 가난했다”라는 전언이 나오고 있다. 자금난을 겪다가 시의원이 되자마자 ‘한풀이’하듯 돈을 긁어모은 것이라는 분석이다. 사실여부는 향후 수사과정에서 철저하게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현재까지 유력하게 제기되는 김 의원의 수뢰 의혹 핵심은 ‘송 씨’와의 관계에서부터 출발한다. 김 의원이 자금을 거둬들인 이유에 송 씨와의 관계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송 씨가 김 의원의 ‘스폰서’ 역할을 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김 의원이 송 씨에게 꼼짝도 하지 못하는 이른바 ‘주-종 관계’(박스기사 참조)였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결국 김 의원은 송 씨의 막대한 지원 자금을 받으며 여러 ‘명령’을 따르다 활동이 여의치 않자 청부 살인을 주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현재 김 의원은 살인교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돼 조사를 받고 있다. 잘나가던 시의원에서 살인교사 주범으로 굴러 떨어진 김 의원의 행적은 미스터리 투성이다. 그것을 밝혀내는 첫 번째 열쇠는 김 의원과 송 씨의 드러나지 않은 비밀 관계를 밝히는 데서부터 출발할 것으로 보인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